[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19] 부인의 사교육비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8.26 11:06
  • 수정 2019.08.26 11: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둘째인 딸애가 대학교에 합격하던 날 명식씨는 어깨가 가벼워지다 못해 가슴속에 얹힌 묵지근한 돌덩어리가 다 떠내려간 것처럼 온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명식씨가 대학을 안 다녀서 학벌에 한이 맺혀서는 아니고, 이젠 그 지긋지긋하고 부담스러운 사교육비가 들지 않을 터라 그 점이 너무 좋았다. 첫째 아들과 둘째 딸에게 무슨 고액과외를 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시작된 태권도, 수영, 피아노 등의 특기과외비와 월급에서 최우선 지출항목이던 중고등학교에서의 학원비는 늘 벅차기만 했다. 교육열 대국에서 최소한이라도 사교육비를 대느라 뻔한 월급에서 나머지 생활은 늘 근검절약 모드로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두 애들의 학비는 회사에서 보조가 나오고 애들 용돈은 편의점이나 식당의 ‘서빙알바’를 해서라도 스스로 해결해 간다니 이제 좀 여유 있게 살아보나 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부인 금옥씨도 지난달에 그동안 고3인 딸애 뒷바라지를 하며 시간제로 일하던 옷가게 판매직을 그만 두었다. 이제 애들 학비가 안 들어가니 노후준비란 것도 시작하고 시간 나면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여행 하면서 살아가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금옥씨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여보 이제부터 한 달에 50만원 정도씩 학원비를 쓰기로 했어요.”

“왜? 애들이 또 무슨 학원비를 보태달라고 해?”

“그게 아니고 이젠 나를 위해서, 내가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분야들을 공부해 보려구요. 우선 영어회화, 사진찍기 클럽, 이런 거부터 시작하려구요.”

명식씨는 아차! 싶으면서 부인 금옥씨의 오랜 열망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럭셔리한 삶은 아닐지라도 풍요로운 삶은 살게 해주고픈 지아비의 마음도 동했다.

“대찬성이야! 아직 머리가 돌아갈 때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워. 그럼 이제 애들 사교육비는 끝났고 당신 사교육비가 한 달에 50만원쯤 드는 거네.”

명식씨는 자신이 부인 금옥씨의 전폭적인 후원자가 된 듯 호언을 했다. 그러자 금옥씨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당신, 말은 그렇게 해도 돈 걱정이 되죠? 걱정 마세요. 내가 지난달까지 옷가게에서 일하며 번 돈은 다 모아 놨어요. 그 돈으로 공부할게요.”

명식씨는 야무진 금옥씨의 준비태도에 놀라고 있었는데 더 놀라운 건 다음 말이었다.

“아, 근데 여보, 내가 꼭 학구열만 만족시키는 건 아니구요. 장래 대비도 하고 있어요.”

“뭘 또 다른 것도 배우나?”

“요즘 부인들 사이에선 산후육아도우미 자격증이랑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기본이랍니다. 앞으로 내 몸만 건강하다면 집안에서 손주도 제대로 볼 수 있고, 집밖에서 돈도 벌 수 있는 꼭 필요한 자격증들이거든요. 그것도 공부하고 실습해서 자격증 받을 예정이에요.”

명식씨는 ‘그러면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현명한 금옥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몇 달 뒤 아침 출근길에 명식씨는 짐짓 돌아서서 물었다.

“당신, 오늘은 뭐 배우러 가는 날이지?”

“어젯밤에 영어책에 코 박고 있는 모습 못 봤어요? 오늘 화요일이니까 영어회화 클래스가 있는 날이잖아요.”

명식씨는 영어회화 몇 달 하더니 수업을 클래스라고 표현하는 금옥씨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사교육 체질인가 봐.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배운 영어로는 한 마디도 입을 못 떼더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