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 ㊶] 지리산 ‘화대 종주’를 꿈꾸며 24. 화엄(華嚴)의 불국토, 지리산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1.29 11:43
  • 수정 2023.12.1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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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이면 온 산을 돌아 울리는 범종 소리와
대북, 목어, 운판의 소리는 과연 이 나라가 화엄의 불국토임을,
한국민이면 알 듯하다.
그 범어 소리를 들으며 저절로 발걸음이 숙연해지고
그 발아래 벌레 한 마리라도 밟힐까 봐, 저윽이 조심스러워진다.

역사 속의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역사 속의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한반도의 아랫도리에 우뚝 솟아 오랜 세월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안겨주었던 성스러운 산,
영남과 호남의 양 지방에 걸쳐서 그 경계를 이루며,
산세가 부드럽고 산림이 울창하여
사철 산악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삼남의 여러 나라들이 오랜 세월 서로 각축을 벌였고 남쪽 바다가 멀지 않다 보니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이 있었다.

여기에 일제 치하의 해방과 남북 동란(同亂)을 거치면서 사심이 가득한 위정자들이 나라를 맡더니 정치적인 야심으로, 동서 지역갈등 유발, 학연, 지연 등을 조장하면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망국민 일부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섬진강 유로를 따라 연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가 그 도피처로서 지리산을 취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특히,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는 병화(兵火)와 흉년이 없는 피란·보신의 땅을 찾는 정감록신앙(鄭鑑錄信仰)도 지리산을 찾게 된다. 이러한 정감록 관념은 한말에 이르러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 교인들이 유민이 되어 흘러들어오고, 이들 일부가 신흥종교를 새로 세웠다.

배달 성전 삼성궁. ⓒ게티이미지뱅크
배달 성전 삼성궁. ⓒ게티이미지뱅크

지금도 지리산 계곡 도처에 흩어져 있는 사찰과 산신당 이외에 이러한 민족종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산간 마을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소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갱정유도(更正儒道) 신자들이다. 그들의 마을은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도인촌인데, 우리에게는 흔히 청학동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나날이 문명이 침투하여 오래된 귀한 유물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 근처에 있는 그들의 또 다른 터전인 배달 성전 삼성궁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관광지가 되어 있어 어떤 보존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묵계리를 전설상의 청학동(靑鶴洞)이라 일컬으며 댕기 머리와 상투, 바지저고리로 우리의 전통 문화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수 오동도에 있는 여순 박물관에 가면 손가락 총이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여수 오동도에 있는 여순 박물관에 가면 손가락 총이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청학동은 선조 때의 문인 조여적(趙汝籍)의 ‘청학집(靑鶴集)’에 신선에 대한 기록에서 나온 말로, 우리 민족의 이상적인 길지로 구전되어 오던 곳이다.

이런 명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사에서는 좌익·우익의 격전으로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된다. 1948년 10월의 제주 4.3 사건에 출동하여 시민들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라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해서 일어난 여순사건.

여수 오동도 ‘여순 박물관’에 가면 ‘손가락 총’이 있다. 국군이 들어와 마을 소년에게 인민군이 왔을 때, 음식물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쏘았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 심성인 이성을 잃어버린 천인무도한 동족 간의 만행이다. 그 여파로 지리산으로 숨어든 군인과 양민들.

1950년 6·25 때에도 북한군의 패잔병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하여 동족상잔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울울창창한 지리산 식생. 촬영=윤재훈 기자
울울창창한 지리산 식생. 촬영=윤재훈 기자

산은 남북에 따라 날씨나 기온, 식생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특히나 지리산처럼 큰 산에서는 그 차이들이 더욱 뚜렷하다. 지리산의 남쪽 사면은 일조시간이 긴 만큼 낮 동안 증발이 활발하여 습기가 부족하다. 그것이 식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반면 북쪽은 기온도 낮고 일사량도 적은 만큼 증발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습기가 안정되어 있다.

따라서 북사면은 산림이 울창하고 식생 피복의 영속성이 유지된다. 특히 겨울철에 북사면에는 많은 눈이 내려 겨우내 쌓여있다. 그러다 보니 따뜻한 봄철이 되어도 눈은 쉬 녹지 않고, 녹은 융설수들은 5월경까지 흘러 지리산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지리산 산기슭에 붙어사는 사람은 온 산에 꽃이 피고 고로쇠나 자작나무 수액이 나와도 쉬, 계곡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러한 지형의 차이에서 기인한 기후로 인하여 북쪽 사면의 산림은 1,300m에서 온대림과 한대림으로 나뉘는데, 따뜻한 남쪽 사면은 1,400m에서 그 경계가 형성되어 지리산의 식생 분포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석평전 철쭉. 촬영=윤재훈 기자
세석평전 철쭉. 촬영=윤재훈 기자

특히, 지나온 세석평전(細石平田)은 고기삭박면(古期削剝面)으로 신생대 제4기 빙하기의 한랭기후에서 주빙하지형 형성작용을 받아 비대칭 산릉을 이룬다. 유상구조토(瘤狀構造土)가 발달 되어 있다. 우리나라 산악지대 사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돌무더기들이 이에 해당하며, 우리말로는 ‘너덜겅’ 혹은 ‘너덜지대’라고 한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기온도 평지보다 6∼7℃가 낮아 한랭하며, 600∼700m 고지에서는 첫서리가 10월 초에 내리는데 다른 지역보다 13일 내외가 빠른 편이다.

한여름 기온의 차는 15∼20℃를 나타내는데 표고가 높아짐에 따라, 기온이 낮아져서 7월 중순 산록(山麓)에서는 36도가 넘어가도, 산정의 기온은 19∼20℃ 정도를 나타낸다.

매년 연분홍 꽃이 온 산을 덮은 5월이면,연진 낭자와 호야의 넋을 위로하듯 철쭉제가 열려, 애틋하고 슬펐던 옛사랑을 기억나게 한다.

우중,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우중,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서쪽 끝 1,500m 고도에 있는 만복대에서는 6월 초까지도 얼음을 볼 수가 있다. 산지의 영향으로 구름 낀 날이 130일가량 기록되고 있다. 연중 흐린 날씨가 많고, 산곡풍(山谷風)이나 국지풍 등이 많이 불어 안개가 자주 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형이 복잡하고 산정에 걸치는 낮은 구름과 계곡에 자주 끼는 짙은 안개 때문에 일조시간(日照時間)도 짧다. 그 구름 속에 묻혀있으면, 천지 분간을 할 수가 없어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한참이나 그렇게 구름 속에서 헤매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경건해지고 이 산에서 내려가면 정말 착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다고 한다.
다만 이 산중에 계시는데
구름이 깊어 찾을 수 없다고 한다.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 가도(賈島)

수덕사에서, 범종 타종하러 가는 스님. 촬영=윤재훈
수덕사에서, 범종 타종하러 가는 스님. 촬영=윤재훈

지리산의 동서 주 능선을 기준으로 남쪽 면을 겉지리(表智異, 外智異)라 하고 북 사면을 속지리(裏智異, 內智異)라 하는데, 민간신앙과 관계된 유적은 주로 속지리 쪽에, 그리고 불교 신앙 유적은 겉지리 쪽에 분포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지리산 자락에는 전국 31 본산(本山)의 하나이며 10대 사찰 가운데 첫째인 화엄사(華嚴寺)를 비롯하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법계사, 대원사, 벽송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국보·보물·천연기념물 등의 많은 문화재가 있어, 곳곳마다 유적지이며 향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해 질 무렵이면 온 산을 돌아 울리는 범종 소리와 
대북, 목어, 운판의 소리는 과연 이 나라가 화엄의 불국토임을,
한국민이면 알 듯하다.
그 범어 소리를 들으며 저절로 발걸음이 숙연해지고
그 발아래 벌레 한 마리라도 밟힐까 봐, 저윽이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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