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⑨] 도미토리_배낭 여행자들의 웃음소리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7.10 19:48
  • 수정 2020.07.2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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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속으로 지나가도 바람은 걸리지 않은데,
천지간(天地間)으로 걸어가도 나는 날마다 걸린다.”
- 금강경

 

미얀마 국경이 보이는, <매싸이 게스트 하우스>

 

(아침 푸성귀를 잔뜩 매고와 오후면 돌아가는 미얀마 ‘아카족’들의 고단한 삶. 사진=윤재훈 기자)
(아침 푸성귀를 잔뜩 매고와 오후면 돌아가는 미얀마 ‘아카족’들의 고단한 삶. 촬영=윤재훈 기자)

오후 무렵이면 그 옛날 우리의 넝마주의처럼 전통복장을 입고 망태를 맨 카렌족 아낙들이 강마을을 지나간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재배한 푸성귀를 지고 새벽 타일랜드 산속 국경 검문소를 넘어와 종일 팔고 이제 돌아간다. 손에 쥔 돈은 몇 푼 안되리라. 때로는 거리를 거닐면서 팔기도 하는데, 경제력의 차이에 남의 나라까지 넘어온 소수 오지민족들의 고단함이 절절이 배어난다. 시장 입구에는 미얀마 <타질렉>으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있는데, 아침마다 수레와 트럭들이 휘어지도록 뭔가를 싣고 들어와 저녁이면 허겁지겁 국경을 넘어가는데, 언제나 미얀마인들로 넘쳐난다. 그 틈에 여행자들도 끼어 넘어간다.

특히 치앙마이나 빠이 등에 있던 여행자들이 비자 클리어(VISA clear)를 하기 위해 매일 이곳으로 온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3개월짜리 비자도장을 찍어주어 다른 나라 여행자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북쪽은 자연이 아주 아름다워 장기여행자들이 너무 많이 오니 앞으로는 제재를 한다는 말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골든 트라이 앵글 쯤에서 라오스 훼이싸이로 넘어갔다 오던지, 서쪽 국경에 있는 메솟으로 가면 된다.

(삼국의 물이 만나 화해의 춤를 추는 골든트라이앵글. 사진=윤재훈 기자)
(삼국의 물이 만나 화해의 춤을 추는 골든트라이앵글. 촬영=윤재훈 기자)

골든 트라이앵글에서는 삼국이 다 내려다 보인다. 라오스와 미얀마를 가로지르는 메콩강과 미얀마와 타일랜드를 가로지르는 루악강이 만나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장엄한 교향곡을 이루며 흘러간다. 왼쪽으로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들판을 덥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미얀마다. 그 강가에 크지 않은 허름한 나무집이 한 채 있는데, 카지노다.

메콩강 건너 오른 편으로는 궁궐 같은 집이 한 채 보이는데 라오스 카지노다. 그 옆으로도 건물이 한 채 더 있다. 미얀마와 라오스가 저 정도로 국력 차이가 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드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문득 라오스가 타국에 눈치를 더 보나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 강 아래로는 보트가 유유히 라오스를 오가는데 미얀마 쪽으로 가는 보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디쯤 한가한 여행자가 방갈로 앉아 이곳으로 흘러갔던 피의 역사들을 눈 시리도록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손님은 별로 없지만 항시 웃는 얼굴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 삶에 찌든 얼굴이 없다. 사진=윤재훈 기자)
(손님은 별로 없지만 항시 웃는 얼굴인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 삶에 찌든 얼굴이 없다. 촬영=윤재훈 기자)

루악강심을 사이에 두고 타일랜드와 미얀마의 국경이 불규칙하게 나뉜다. 그 다리 가운데는 양발이 없는 사내가 항상 뙈약볕 아래 구걸통을 놓고 맨발로 앉아있다. 가끔은 아이를 데려와 그 볕 아래 재우는 살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는 모든 것이 열악한 이 나라 어디쯤에서 지뢰를 밟았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다.

강은 꽤 넓은데 아이들은 겁도 없이 수영을 해서 오고간다. 무장한 국경의 군인들은 가끔씩 내려다보며 웃기만 할뿐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이들은 예전부터 철조망의 무용함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땅따먹기의 덧없음을.

징기스 칸이 단번에 말을 몰아 푸른 초원의 대륙들을 넘어 유럽까지 치달려 갔지만 오랜 전쟁의 피로함과 전염병으로 사라졌고, 20대의 청년 알렉산더도 총칼을 앞세우며 인도까지 달려갔지만 단명하고 그 나라는 오합지졸들의 아전투구로 사분오열 되고, 페르시아 제국도, 오스만 제국도 다 허망하게 사라졌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흰구름이 흘러가고 미얀마쪽으로 새들이 한가롭게 넘어간다. 누가 땅 위에 금을 긋고 철조망을 쳐두었냐고,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오고 가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너희들이 지금 무엇하고 있는 짓거리냐고 웃는다.

 

“그물 속으로 지나가도 바람은 걸리지 않은데,
천지간(天地間)으로 지나가도 나는 날마다 걸린다.”
- 금강경

 

다리 하나만 건너면 양국의 풍경은 확연히 다르다. 맨 먼저 노란 조끼를 입은 오토바이 기사들이 길게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종일 뙈약볕 아래 손님도 별로 없어 짜증날 법도 한데, 종일 새처럼 지저귀면 웃는 얼굴이다.

웃음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거리, 강력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나라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모두 것이 욕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들을 오늘 하루 자연이 주는 대로 만족하며 산다. "오늘은 이 양만큼 천지의 신이 나에게 준 것이고, 운이 좋으면 내일은 좀 더 주시지 않겠냐"고 하며 웃는다.’

 

아귀가 있다.

배는 수미산만 하게 큰 데, 목구멍의 바늘구멍만 하다.

그러니 종일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다.


모든 것은 업(業)으로 귀결되는 것, 선행선과(善行善果)이고, 인과(因果)이다.


오늘 내가 베풀었던 만큼 받을 것이고 나의 욕심이 클수록 매일 화(火)와 짜증만 올리올 것이다.


그럼 세상은 화염처럼 온통 불만으로 가득찰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남자들이 입는 치마는 미얀마 전통의상 ‘론지’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남자들이 입는 치마는 미얀마 전통의상 ‘론지’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행길을 따라 길게 책상이 놓여있고 환율이 낮은 미얀마 돈다발들을 마치 은행 창구처럼 높이 쌓아놓고 환전할 손님을 기다리지만 별반 바꾸는 사람들이 없다. 미얀마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 풍경은 따뜻한데, 환경은 열악하다.

입구에는 나무로 대충 짜놓은 공중전화 박스 정도 넓이의 상자 안에 미얀마의 전통 씹은 담배<꽁야>을 팔고 있다. 빈랑열매와 석회물질 그리고 향이 있는 몇 가지 열매들을 잘게 부수어 빈랑 잎에 돌돌 말아 작은 비닐봉지 안에 넣어준다. 싸구려 화장품 로션을 씹는듯하며 몇몇 알갱이들이 혀를 톡 쏘기도 하는데, 약간의 박하향이 배어나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한없이 떫고 구역질이 날만큼 매스꺼운데, 독한지 씹으면서 계속해서 거리에 침을 찍, 찍, 뱉는 것이 보기 흉하다. 군데군데 그 국물자국들이 역려하다. 근처에는 그것을 주식처럼 씹고 있는 사내들이 몰려있고, 침착에 의해 웃을 때마다 이가 붉다. 정부에서는 가끔씩 국민 건강과 위생을 위해 꽁야를 규제하는 캠페인도 한다고 하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미얀마의 전통을 들라면 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입은 <론지(Longy)>,

성들이 얼굴에 바르는 <타나카>,
그리고 <꽁야>와 습관처럼 마시는 <짜이>를 들 수 있다.

 

(북적이는 국경시장, 피부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 그래도 지구상의 인간이란 이름으로 평화롭게 공존한다. 사진=윤재훈 기자)
(북적이는 국경시장, 피부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 그래도 지구상의 인간이란 이름으로 평화롭게 공존한다. 촬영=윤재훈 기자)

사찰 입구에는 아주머니가 앉아 조그만 광주리를 앞에 두고 있다. 약간의 김이 올라오는 그 안에는 돼지 창자, 간, 천엽 같은 것들이 이쑤시개에 꽂여 있다. 종일 먼지 속에서 불결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 앞에 쭈그려 앉아 허기를 때운다.

다리 왼쪽에는 타질렉 국경시장이 있다. 계단을 채 내려가기도 전에 목에 조그만 나무좌판을 건 청년들이 양담배를 비롯하여 비아그라 같은 것도 판다고 속삭이듯 다가온다. 저 멀리 강가 둑 아래에는 사내들이 숨어 양주를 들어 보이며 사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곳의 양주는 바로 다리 건너 타일랜드의 딱 반값이다. 그러니 이곳에 온 여행자들은 양주 한 병만 사가면 치앙마이에서 여기까지 단체로 타고 온 봉고차의 차비가 빠지는 셈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이 세상에 허접한 물건들은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K-Pop과 드라마에 관한 CD와 비디오테이프도 쌓아놓고 파는데, 아무래도 중국에서나 흉내를 내어 만들었는지 조잡하다.

여행자들은 한 시간여쯤이나 시장을 둘러보고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다시 다리를 건너오면 타일랜드 매싸이에도 국경시장이 있는데, 미얀마 보다 더 깨끗하고 규모도 훨씬 크다. 시장 뒤로는 낮으막한 산이 있고 그 꼭대기에 왓(Wat사찰)이 있다. 강 쪽으로는 건너편 미얀마 타질렉을 보며 커다란 전갈 상 하나가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있다. 그 아래 즉석 사진기를 든 사내 하나는 이따금 흥정이 맞은 내외국인들의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케논 프린터로 빼준다.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상선약수(上善若水)로 흐른다. 왼쪽이 타일랜드이고 오른쪽이 미얀마다. “자연은 욕심이 없어 보여 더욱 좋다.” 사진=윤재훈 기자)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상선약수(上善若水)'로 흐른다. 왼쪽이 타일랜드이고 오른쪽이 미얀마다. “자연은 욕심이 없어 보여 더욱 좋다.” 촬영=윤재훈 기자)

 

“물은 선(善)의 표본과 같다.”

강 길 따라 자신의 몸을 만든다. 넓으면 넓은 데로 가고, 좁은 여울을 만나면 몸을 낮춰

여울목 소리를 내며 흐르고, 소(沼)를 만나면 잠깐 아이들처럼 모여 장난질도 치며 쉰다.

저녁연기 올라오는 시간, “애들아, 밥 먹어라”하고 엄마가 부르면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이처럼

다시 길을 떠나고, 나무뿌리를 만나면 잠시 물을 적셔주며 흘러오면서 보았던

세상의 이야기를 넉넉하게 나눈다.


막 올라오는 옥수수 대에 손을 흔들며 때로는 해바라기를 만나기도 하고, 

마른 무를 뽑아먹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따라가다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고 흥에 겨워 가는 촌부처럼,

만고강산(萬古江山) 부르며 흘러간다.

 

화양면行/윤재훈

아침이면 나갔다
녁이면 돌아오던 길

평생 그 자리를 배회하며
여름 땡볕, 겨울 눈보라 맞으며
걸어 다니던 길

"밥 먹어라"

저녁나절 어머니 목소리
따스했던 길

풍경소리 들리며
이제 마지막으로 그 길을
떠나려 하네

지상은 가을볕 내리쬐고
알곡들은 여물어 가는데

이제 이 행성을 지나
어느 별로 가시려는지

 

미얀마에서 넘어와 소박한 집에서 결혼하는 타이야이족의 결혼식. 촬영=윤재훈 기자)
(타이야이족 행운의 실을 감아주고 있는 신랑 엄마. 번듯하게 못해줘서 미안한지 얼굴에 수심이 찼다. 인근에 몽족도 같은 전통이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다’, 그대 걱정하지 말고,
욕심의 양만 줄여라,
강물은 찬찬히 내 등을 두드려 주고 간다.”

 

국경시장에서 20여 분쯤이나 걸어가면 강가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고, 그 초입에도 두어 군데가. 있다. 가벼운 식사를 파는 움막 같은 집에서는 막 결혼한 26세의 타이야이족(샨족) 신부 ‘지안’이 음식을 만들어 내고 30세 신랑 ‘짠’은 그 옆에서 오토바이 수리점을 한다. 그들의 결혼식 날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그만 돌려주지 못하고 와 여태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언제 그곳을 다시 갈 수 있을까 기약은 없다.

길목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 앞에는 50대의 성격 급한 미국인 사내가 커다란 개와 함께 땅바닥에 앉아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주인과 뜻이 맞았는지 눌러 앉아 태국 여인과 십여 년이 넘도록 살며 종업원으로 있다.

대부분 여행자들은 강변에 즐비해 있는 방갈로에 숙소를 잡기 때문에 이곳은 항상 방이 비어있다. 강가에 있는 방갈로들은 우선 그 느낌부터 여행자들이 향수를 자극하며 미얀마에서 흘러내려오는 메콩강의 지류라 전망도 좋다. 만일 매싸이를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여행자들이라면 대부분 다 여기로 온다. “외롭고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늑하다.

(국경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식사를 나눈 소녀들. 촬영=윤재훈 기자)
(국경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식사를 나눈 소녀들. 촬영=윤재훈 기자)

다음날은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두 소녀를 만났다. 미얀마 만달레이가 고향인 23세의 와이와이는 임신 4개월이며 미얀마 남자는 한 번 간 뒤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키가 168cm나 되는 16세의 타일랜드 소녀는 아빠는 싱가폴 사람이고 엄마는 태국 사람이라고 하는데, 부유해 보인다. 그 후 페이스북을 보니 와이와이는 서양 남자와 살면서 아이를 벌써 두 명이나 더 나았다.

국경시장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면 현지인들만 오는 재래시장이 있다. 타이인과 미얀마인들이 어울려 오는 시장인데, 상인들은 대부분 미얀마인 이다. 그들도 하나같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친절하다.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많아 헤치고 다녀야 할 정도로 붐빈다.

밤이 되며 두 나라 간의 모습은 국경을 따라 더욱 확연해진다. 타일랜드 국경 쪽으로는 가로등이 환한데, 미얀마 쪽으로는 캄캄하다. 나는 이런 풍경을 또 한 군데서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압록강에서 본 중국과 북한 접경이다. 어쩜 그리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지, 끊어진 압록강 철교 위에 서서 바라본 양국은, 오른 쪽은 불빛들로 화려한데 왼쪽은 먹빛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극명했다. 그 속에는 북녘 동포들은 엎드려 허기진 이른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리라.

태국은 전기가 남아돌아 인근 나라로 수출도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미얀마 쪽에서 넘어온 오지 민족들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산을 따라 넘어오다 현지인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깊은 산속에서 화전(火田)을 하며 경사가 높은 산들도 가리지 않고 옥토로 만들었다.

(산모롱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마을들, 집들은 몇 채 되지 않는다. ‘매꿈뻬 깔리양 빌리지’다. 사진=윤재훈 기자)
(산모롱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마을들, 집들은 몇 채 되지 않는다. ‘매꿈뻬 깔리양 빌리지’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 덕에 타일랜드는 아시아 쌀 수출국 1위가 되었다. 산을 타고 넘어가면서 거대하게 산 벼를 심어 바람이 불때마다 파도처럼 일렁거리며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만, 그들의 고단한 일상이 묻어있어 처연하다. 특히나 이곳은 깔람삐(양배추)를 많이 심어 낮에는 수확하고 저녁이면 양쪽으로 늘어지게 미니트럭에 실고 밤새 산모롱이들을 돌아 치앙마이 새벽시장에 팔고 돌아온다.

 

깔리양족* 마을에서/윤재훈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 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도 화들짝 깨어나 생기를 찾고
몸을 흔들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 더욱 해맑아지고
가을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 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학교

(*미얀마와 태국 북쪽 산 속에 모여 사는 종족의 이름)

 

그래서 옛날에도 국경지대 검문소에서는 알고도 모른 척 하며 약간의 돈만 주면 피난민처럼 보따리를 이고지고 오는 가족들의 행렬도 슬쩍 못 본 척 해주었다고 한다. 그 산마을 안에는 우리나라 면사무소 같은 오바또가 있다. 그곳에서는 약간의 의약품과 돈을 노인들에게 지급해준다. 또한 학교도 만들어 교육하며, 마을 체육대회 같은 것도 열어 그들의 회포를 풀어주며 점차 하나의 국민으로 포용해 간다. 또한 어느 산모롱이를 돌아가던지 개척 교회가 있으며, 간간히 한국인 목사들도 만났다.

사실 이 나라는 난민을 인정하지 않지만 메솟으로 가는 길목에 보면 커다랗게 만들어진 난민촌이 있다. 그 안에 외부인들은 못 들어가지만 현지인과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정말 그 안에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어, 인간의 삶의 방식에 놀라웠다. 우연히 아주 작은 보석가게를 운영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왔던 남자와 정분이 낳고 후일을 기약했지만 몇 년 동안 한 번도 오지 않는다며,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민증이 있다. 그런데 현지인들 것과 약간 다르다.

이렇게 미얀마 난민들은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최대 명절인 송크란 등이 다가오면 그 첩첩산중을 몇 개씩 넘고 중간에 검문소에 돈까지 주면 고향을 다녀오기도 한다. 정말 고향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일까?그들을 보면 우리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북한에 고향과 부모형제들을 두고 온 이산가족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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