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순례] 국립중앙박물관④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전부길 기자
  • 입력 2021.09.28 10:16
  • 수정 2021.09.2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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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 시대를 지난다
가야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를 지나 조선까지
4천년 한반도의 역사가 한 곳에 모여 있다
하루하루 일상에 허덕이는 삶을 살다가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슴뛰는 조상들의 숨결을 만난다.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고(故)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2만3000여 점의 골동품, 미술품이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중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을 일반에 공개했다. 여기에는 국보와 보물 28건이 포함돼 있어 진귀한 보물들이다.

(이건희 기증 명품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금·은으로 쓰고 그린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卷) 권1-7
고려 1330년, 감지에 금은니, 국보 제234호

염색한 고급 종이에 귀한 금과 은으로 불교 경전을 정성껏 쓰는 사경(寫經)은 덕을 쌓는 일로 여겨져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묘법연화경. 촬영=전부길 기자)

사경은 대체로 접는 책 형태이며, 표지를 꽃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사경은 ‘법화경’이라고 부르는 『묘법연화경』을 은으로 쓴 것으로, 홍산군(현 부여) 행정 담당 최고직인 호장 이신기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불공견삭신변진언경(不空羂索神變眞言經) 권13
안체(安諦) 씀, 고려 1275년, 감지에 금은니, 국보 제210호

(불공견삭신변진언경. 촬영=전부길 기자)

밀교계 불공견삭 관음보살의 경전인 『불공견삭신변진언경』을 은으로 쓴 이 사경은 총 9m에 달한다.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의 명으로 사경 전담 기구에서 제작되었다. 사경 첫머리에 섬세한 금선으로 신장상이 그려져 있다. 고려 왕실 주도로 필사한 수준 높은 사경이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문경(文卿) 그림, 고려 14세기, 감지에 금니, 국보 제235호

‘화엄경’이라고 부르는 『대방광불화엄경』은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보현행원품」은 보현보살의 10가지 행원(중생 구제를 위한 마음과 실천법)을 담고 있다. 사경 첫머리에 경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섬세하고 광택이 아름다운 금선으로 불경의 내용을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촬영=전부길 기자)

범망경 보살계품
조선 14-15세기, 감지에 금은니, 보물 제1988호

『범망경』은 불교 수행자의 마음가짐과 규범이 수록된 경전이다. 화엄경과 법화경을 쓴 사경은 많지만, 계율을 전하는 범망경을 쓴 사경은 드물고 특히 그림을 갖춘 사경은 더욱 귀하다. 은가루를 아교에 섞어 글씨를 쓰고 금가루로 그림을 그렸다. 검푸르게 물들인 종이 위에 금과 은이 조화를 이루어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범망경 보살계품. 촬영=전부길 기자)

불자들은 불경 내용에 관심이 많겠지만 기자같은 비불교인은 내용이 아니라 그 글씨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종교를 떠나 조상들의 예술성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글씨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폭의 그림으로 보인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합주처럼 작은 글자그림들이 모여 이루어진 글자그림산에 마음이 빠져 버린다.

목판본 불교경전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49
고려 11세기, 종이에 목판 인쇄, 국보 제241호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부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수많은 불교 경전을 목판으로 인쇄했다. 이를 초조본 대장경이라고 하는데, 불경을 이해하고 대규모로 인쇄할 수 있었던 고려의 문화 역량과 기술력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대장경의 초기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중요하다.

(초조본 현양성교론. 촬영=전부길 기자)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
고려 11세기, 종이에 목판 인쇄, 국보 제243호

닥종이에 목판으로 찍은 『현양성교론』 15장을 이어 붙인 두루마리 형태의 대장경이다. 글자가 선명하며, 고려 11세기 초조본 대장경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어 중요하다. 특히 두루마리 앞쪽 감색 표지 부분에는 금으로 쓴 경전 제목, 끝부분의 대나무 마감이 남아 있다.

(초조본 현양성교론. 촬영=전부길 기자)

고려불화

천수관음보살도 (千手觀音菩薩圖)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보물 제2015호

고려 유일한 천수관음보살도이다. 천수관음보살은 무수히 많은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수관음보살 신앙은 『삼국유사』에 확인될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그림으로 전하는 천수관음보살도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이 천수관음보살은 11면의 얼굴과 44개의 손을 지닌 모습이다. 각각의 손에 좋은 의미를 지닌 물건이 들려 있다. 광배에 수많은 눈을 그려 ‘천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

(左:수월관음도, 右천수관음보살도. 촬영=전부길 기자)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14세기, 비단에 색

수월관음은 관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으로, 하늘의 달이 여러 곳의 맑은 물에 비치듯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수월관음도에는 지혜를 찾아 스승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가 등장하는데, 이 불화에서는 아쉽게도 아래쪽이 손상되어 선재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7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았다.

(전시장 내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불교용품

‘봉업사’가 새겨진 향로
고려 11-12세기, 청동, 보물 제1414호

향로는 불교의식에서 잡귀나 잡념을 없애려고 향을 피울 때 사용하며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규모가 매우 큰 이 향로는 문양 장식이 없어 간결하며 절제된 우아함이 독보적이다. 뚜껑에 우뚝 솟은 불길 모양 장식은 향로에 세련된 품위를 더해준다.

(‘봉업사’가 새겨진 향로. 촬영=전부길 기자)

향로 표면에 새겨진 글씨로 고려 태조 어진을 모신 봉업사에서 제작된 향로임을 알 수 있다.

‘사복사’가 새겨진 향완
고려 1218년, 청동에 은입사

향완은 입구에 넓은 테두리가 달린 원통형 몸체와 높은 받침으로 구성된 향로로 고려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향완 중에는 문양을 선으로 음각하고 은실을 끼워 넣는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된 것이 많다. 이 향완의 몸체 중앙에는 범자가 있고 새롭게 등장한 여의두 무늬가 이를 에워싸고 있는데, 향완 장식 문양의 기준작으로 중요하다.

(‘사복사’가 새겨진 향완. 촬영=전부길 기자)

‘경선사’가 새겨진 청동북
고려 1218년경 청동 (구리 64.9% 주석 26.4% 납 7.1%), 보물 제2008호

청동북은 사찰에서 의식을 치르거나 시간을 알릴 때 사용된다. 청동으로 타악기를 만들때 주석의 함량을 늘리면 소리가 맑고 길어진다. 현재 이 북의 주석 함량은 26% 정도이다. 이 북 옆면에 소리를 울리게 하는 구멍이 있고 제작 정보가 담긴 글이 새겨져 있다.

(‘경선사’가 새겨진 청동북. 촬영=전부길 기자)

고려 무관들이 장수와 승진을 기원하면서 이를 제작하여 경선사에 바쳤음을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토기(土器)

붉은 간토기 항아리
청동기시대, 점토

물을 섞은 점토는 무르지만 불을 가하면 단단해져 액체와 고체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인류 도구 발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변화이다. 토기를 장식하는 방식은 지역과 시대마다 다양했다. 이 토기는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서 구웠으며 광택이 도는 붉은색이 매우 아름답다. 붉은색은 상서로움을 의미하며, 붉은 토기는 주로 부장품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左:검은 간토기 항아리, 右붉은 간토기 항아리. 촬영=전부길 기자)

검은 간토기 항아리 
초기철기시대, 점토

검은 광택이 아름다운 특별한 토기이다. 흑연과 같은 광물질을 바르고 치밀하게 표면을 문질러 구운 토기로 검은색 광택이 돈다. 붉은 간토기와 함께 우리나라 선사시대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색을 입힌 토기이다.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 많아 지배층을 위한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검은색 토기 중 옻칠로 색을 낸 것은 칠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토기 전시관. 촬영=전부길 기자)

배 모양 토기
가야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점토

배 모양 토기는 주로 낙동강과 해안가 주변에서 출토된다. 이 토기는 배 측면에 수레 바퀴를 붙였는데, 배와 수레바퀴가 결합된 토기는 매우 드물다. 배의 세부 요소를 자세히 표현했다. 뱃머리는 뾰족하게 하고 배꼬리에는 가로지른 판이 달려 있다. 고리 모양의 노걸이도 있다. 당시 배 모양을 짐작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

(배 모양 토기. 촬영=전부길 기자)

말 모양 장식 받침의 뿔잔
가야 5세기 전반, 점토

뿔잔을 말 위에 얹어 놓은 토기는 주로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다. 말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재갈을 물렸고 콧등에 얹은 굴레도 확인된다. 배 부분에는 작은 판이 보이는데, 이는 말이 달릴 때 흙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말다래이다. 말의 동그란 눈과 벌어진 콧구멍에서 씩씩한 생동감을 준다. 말과 뿔잔, 받침이 잘 어우러져 절묘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말 모양 장식 받침의 뿔잔. 촬영=전부길 기자)

뿔잔과 배 모양 받침
삼국시대 5세기 중반-6세기 중반, 점토

뿔잔을 배 모양 받침대에 올려놓은 특이한 토기이다. 한쪽 옆면만 만든 배는 여러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하트 모양 장식도 달려 있다. 배 아래쪽에 있는 타원형 구멍 3개에 뿔잔 3개를 각각 꽂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 모양 받침과 뿔잔, 굽다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조형미가 뛰어나다.

(뿔잔과 배 모양 받침. 촬영=전부길 기자)

토우 장식 그릇 받침①
삼국시대 5세기 중반, 점토

항아리를 받치는 데 사용한 받침대로 동물 모양 토우가 붙어 있다. 사슴과 말 모양의 토우 장식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에는 여러 개의 창이 뚫려 있고 전체적으로 격자무늬와 물결무늬로 장식되어 조형미가 돋보이는 토기이다. 토기 전면에 자연유약이 덮여있어 연한 광택이 난다.

(左:토우 장식 그릇 받침②, 右토우 장식 그릇 받침①. 촬영=전부길 기자)

토우 장식 그릇 받침②
삼국시대 4-5세기, 점토

토우는 말 탄 사람, 남성과 여성, 서있는 토끼, 뱀, 개구리 등 다양하며, 정감 어린모습이다. 그릇 받침대 전면에 덮인 자연유의 광택과 다양한 토우, 장식적인 구멍과무늬 등이 어우러져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생활 출토물

덕산 출토로 전해지는 청동 방울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보 제255호

(청동 방울. 촬영=전부길 기자)

무른 성질의 구리에 주석을 섞으면 단단한 청동이 된다. 청동이라는 신소재는 기술 발달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급사회의 출현을 증언한다. 철기시대에도 청동기는 권력층의 소유물이었다. 이 청동 방울들은 당시 최고 권력자인 제사장이 주술 의식에 사용한 귀한 도구로, 사용자의 권위와 힘을 상징한다. 종류가 다양한 방울들이 함께 전해져 가치가 더욱 높다.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
초기철기시대, 청동, 국보 제137-2호

철기가 등장한 이후에도 청동기는 차별화된 권위의 상징으로 더욱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대구 와룡산 기슭에서 발견된 이 청동기들은 무덤에 묻힌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창의 일종인 투겁창과 꺾창은 규모가 크고 날이 과장되어 있어 전투용이 아니라 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구 비산동 발견 청동기는 현재 여러 기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 촬영=전부길 기자)

쌍용무늬 둥근 고리 칼 손잡이 장식
삼국시대 5-6세기, 금·구리·유리, 보물 제776호

금은 녹이 슬지 않고 광택이 변치 않으므로 최상의 가치를 지닌 금속이었다. 또한 가공도 쉬워서 아름다운 금세공품이 많이 전해진다. 순금판으로 만든 이 손잡이 장식에는 서로 엉켜 있는 두 마리 용 문양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리 안쪽의 용은 구리에 도금한 것이다. 도금이 벗겨져 녹이 슬었지만 용의 눈에 박은 청색 유리구슬이 생동감을 더한다.

(쌍용무늬 둥근 고리 칼 손잡이 장식. 촬영=전부길 기자)

팔뚝가리개
삼국시대 5-6세기, 구리에 금도금

이 팔뚝가리개의 구리 함량은 97.7%이다. 순동은 잘 늘어나서 원하는 형태로 만들기 쉽다. 몸을 보호하면서 가볍고 착용이 편리해야 하는 팔뚝가리개의 재료로 순동이 제격이다. 팔뚝가리개 아래쪽은 팔목을 감싸는데, 옆면에 경첩이 달려 있고 뒷면에 고리가 있어 끈을 꿰어 맬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형태가 온전하게 남은 팔뚝가리개는 매우 드물다.

(팔뚝가리개. 촬영=전부길 기자)

장식장

삼층 장
조선 19세기, 나무와 금속

나뭇결을 살리고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가구이다. 옷을 종류대로 포개어 보관할 수 있도록 삼층으로 만든 장으로, 표면에 얇게 옻칠을 올렸다. 단단한 배나무 각재는 모서리를 공글러 깎았으며 느티나무 판재는 나뭇결무늬가 잘 드러나게 살렸다. 여닫이 문에는 적절한 크기의 경첩과 꽃 모양 앞바탕을 달았다. 별다른 가공 없이 나뭇결을 살린 품위 있는 안방 가구이다.

(삼층 장. 촬영=전부길 기자)

이층 책장
조선 18세기, 나무와 금속

튼튼한 소나무로 짜고 흑칠을 하여 책의 무게와 습기에 잘 견디는 장이다. 이층으로 만들었고 천판은 몸체보다 길게 하여 물건을 올려두기 좋게 하였다. 문과 문변자의 균등한 비례가 시원스럽다. 소박한 무쇠 장석과 감잡이의 양식, 비례와 만듦새를 고려하면 18세기에 제작된 가구로 추정된다.

(이층 장. 촬영=전부길 기자)

경상
조선 19세기, 나무와 금속

경상은 천판 양쪽 끝이 말려 올라간 서안이다. 두루마리가 떨어지지 않게 고안된 것으로 원래 사찰에서 사용했으나 조선시대 선비들도 애용했다. 이 경상은 서랍을 여덟 면으로 분할하고 다리에 대나무 모양을 투각해 장식하였다. 부드러운 오동나무 판재에 얕게 새긴 태극무늬가 멋스럽다.

(경상. 촬영=전부길 기자)

전시관을 나오며

고故 이건희 회장은 ‘좋은 만남이 좋은 운을 만든다’고 했다. 이번 기증 명품전은 일생에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들의 모음전이었다. 일생에 이런 전시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며 인생의 다시없는 기회이다.

(전시장 내부. 촬영=전부길 기자)

청동기에서 조선까지 대략 4천년의 역사를 한눈에 만났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여정을 느껴본다.
매일 하루하루를 허덕허덕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찰나(75분의 1초에 해당)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눈으로 보앗던 작품들은 눈에 남은 것이 아니라 가슴에 남아있다.
결국 명품은 가슴으로 본 것이다.

아쉽게도 9월 26일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전시를 마쳤다. 내년에 더 많은 작품으로 재전시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에 못 만나보신 분들은 내년에 좋은 만나보았으면 한다.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작품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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