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㉞] 연극 ‘바퀴벌레의 운명’…“나도 청소해줘!”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01.05 11:07
  • 수정 2022.01.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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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연극반 동문 극단 ‘화동연우회’의 조화의 미덕
제30회 정기공연 ‘바퀴벌레의 운명’,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1월 9일까지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경기고 연극반 출신의 동문이 모여 매년 수준 높은 작품으로 국내 초연 무대를 여는 신화는 올해로 30년이 됐다. 지난 1월 3일 극단 <화동연우회>의 제30회 정기공연 ‘바퀴벌레의 운명’을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관람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입장을 기다리며 바라본 학전블루 소극장 건물 외벽에 설치된 동판 2개는 추억을 소환한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작가(폴커 루트비히)와 음악가(비르거 하이만)의 동판과 故김광석의 흉상 동판이다. 극단 학전에서 1994년 첫 무대를 올리고 2008년까지 이어졌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 장기 공연의 전설을 남겼다. 아울러 故김광석이 1000회 라이브 공연을 했던 이곳 학전블루에서는 지금까지 매년 ‘김광석 노래부르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극단 '화동연우회' 제공
사진=극단 '화동연우회' 제공

‘바퀴벌레의 운명’은 이집트 작가 터픽 알 하킴이 쓴 것으로 총 2막으로 구성돼 있다. 1막 무대는 바퀴벌레들이 서식하는 장소인 욕실의 일부. 단순한 무대에 바퀴벌레와 개미 배우들의 의상은 밝고 화려했고, 정교한 더듬이까지 있어 시선을 끈다. 바퀴벌레 왕국에서 장관아들이 사고로 죽었는데, 개미들이 죽은 장관아들 바퀴벌레를 끌고 간 사건에 대응하는 왕, 박사, 제사장의 모습이 우화처럼 진행된다. 작가는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숙명적 대립과 충돌을 비유해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했다고 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바퀴벌레 왕이 욕조로 굴러 떨어져 올라오지 못하면서 1막은 끝난다.

사진=극잔 '화동연우회' 제공
사진=극단 '화동연우회' 제공

2막은 이 바퀴벌레 왕국이 기생하고 있는 인간의 아파트. 무대는 침실과 욕실로 전환되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내에게 자신의 의견이 항상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남편이 있다. 아내와 충돌하다 지친 그는 욕실 안 욕조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계속해서 기어오르다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공감한다. 아내는 욕실에서 바퀴벌레를 계속 지켜보려는 남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갈등이 커지고, 왕진 온 의사는 그들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화로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바퀴벌레의 행동에 집착한 남편이 욕실을 잠깐 비운 사이, 청소부는 바퀴벌레를 간단히 죽이고는 밖에 버린다. 이에 놀란 남편이 ‘나도 청소해줘!’ 라고 소리치며 막은 내린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1991년 출범한 극단 <화동연우회>는 경기고 연극반 출신들의 모임이다. 1900년 개교한 경기고가 종로구 화동(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 세워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문배우와 아마추어의 협동 무대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연극을 통한 문화전도사가 되자는 취지에서 결성했다고 한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국 명작들을 엄선해 작품 선정, 번역, 드라마 분석 작업을 동문이 직접 실행하여 초연작으로만 공연해왔다. 생소한 작품으로는 제작이 어려운 국내 공연제작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회원들이 기꺼이 무보수로 봉사해 30년 동안 의미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바퀴벌레의 운명’에 출연한 최용민, 김인수, 이근희, 최무성, 이재준, 김명식, 엄태준 배우들은 전부 경기고 출신 선후배이다. 팸플릿 안에는 출연진 외 제작부터 진행까지 참석한 동문들의 이름과 ‘몇 해 졸업’의 숫자가 있는데, 61부터 114까지 있다. 개미로 출연한  이기용 배우는 54회, 이태식 배우는 68회 졸업이라고 하니 60년 차이가 나는 고교 동문들이 같이 연극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동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지난 30년 화동연우회가 쌓은 신기록들은 많다. 제10회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나비의 꿈’ 무대에는 경기고 동문인 백남준의 작품 총144대의 TV모니터가 설치되었다. 백남준의 작품이 연극 무대에 설치된 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또 제20회 공연인 ‘페리클래스’에서는 세익스피어 시를 판소리로 바꾸어 무대에 올렸다. <화동연우회>의 연극 공연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백 년의 전통으로 잘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생기고 소망하는 마음이다.

연극은 많은 사람이 협력해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연극은 대본, 배우, 무대, 음악 효과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어서, 수개월간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나이 차이를 잊어버리고 조화의 미덕을 깨닫는다”는 무대디자인 양영일(63회) 동문의 말은 동문 연극이 이어져온 힘이 ‘조화의 미덕’임을 느끼게 한다. 우화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연극 ‘바퀴벌레의 운명’은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1월 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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