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62] 풍월당, ‘고향의 봄’ 음반 발매 기념 ‘연광철 한국가곡 독창회’ 열어…“민족혼 담은 어여쁜 울림과 조응하길”

천건희 기자
  • 입력 2023.12.08 15:49
  • 수정 2023.12.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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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12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이스 연광철의 <한국가곡 독창회>를 관람했다. 한국 가곡(歌曲)은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시(詩)를 노랫말로 삼아 곡을 붙인 음악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겨 있다. 연광철이 한국 가곡만으로 독창회를 하는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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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의 넓은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만 있다. 연광철은 화려한 무대 장치나 오케스트라 없이 혼자 무대 위에 섰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물 맑은 봄바다에 배 떠나간다... / 사공의 노래(홍난파 작곡, 함호영 작사)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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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철의 중후한 저음이 2천5백석 넓은 콘서트홀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피아니스트 신미정은 다양한 화성을 활용하면서도 절제된 반주로 연광철과 호흡을 맞췄다. 90여 분 동안 시대나 분위기가 비슷한 2~3곡을 한 세트씩 묶은 16곡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정겹고 익숙한 우리 가곡의 선율들은 잊고 있었던 시절로 추억 여행을 떠나게 했다. 밤하늘 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달밤’(나운영 작곡, 김태오 작사)에 이어진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그대 있음에’는 마음을 흔들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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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 그대 있음에(김순애 작곡, 김남조 작사)

노랫말에 어울린 애절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마음속에 담기는 가사의 시(詩)적 운율(韻律)들은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연광철의 절제된 피아니시모(pianissimo)는 긴 호흡 속에서 더 집중하게 만들고 감동을 준다. 앙코르 곡으로 불러준 국민 가곡 ‘그 집 앞’(현제명 작곡, 이은상 작사)과 ‘이별의 노래’(김성태 작곡, 박목월 작사)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입안에 맴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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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광철(58)은 13세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충주 시골에서 자랐다.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졸업한 후 유학을 떠나 베를린 국립 음대를 졸업했다. 30년 동안 베를린 슈타츠오퍼,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얄 오페라 등 세계 최고 극장에서 활약하며 2018년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카머쟁거(Kammersanger·궁정가수)’의 칭호를 얻었다. 1996년부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세계 최정상 바그너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사진=풍월당 제공
사진=풍월당 제공

이번 독창회는 연광철의 첫 번째 한국 가곡집 음반인 『고향의 봄』 발매 기념 공연이다. 『고향의 봄』 음반은 클래식 전문 음반 매장으로 출발해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풍월당’이 제작했다. 한국 가곡이 1990년대 들어 인기가 식고 점점 잊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풍월당 박종호(63)대표가 가곡 부활을 위해 연광철과 힘을 모은 것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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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형태로 제작된 『고향의 봄』 음반 표지는 지난 10월 14일 세상을 떠난 한국 미술계의 거장 故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이다. 박서보문화재단이 후원한 작품 ‘묘법 No.980308’로 된 음반 표지는 물감 위에 선을 긋는 화백의 스타일처럼 요철이 느껴져 고급스럽다. 가사인 시를 영어, 일어, 독일어로 번역해 담은 음반 해설 책자가 무려 160쪽이다. CD 및 디지털 음원으로 전 세계 동시 발매된 『고향의 봄』 CD는 책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동봉된 책갈피의 QR로 음원을 바로 들을 수 있다.

음반에는 1930년부터 100년간 불리고 들었던 ‘진달래꽃’, ‘비목’, ‘그리워’ 등 대표 가곡들과 함께 작곡가 김택수에게 위촉한 신곡 ‘산속에서’와 ‘산복도로’도 포함 18곡이 수록됐다. 마지막 트랙에 담긴 ‘고향의 봄’(홍난파 작곡, 이원수 작사)은 압권이다. 무반주로 나지막히 읊조리듯 담담하게 부르는 ‘고향의 봄’은 깊은 여운을 남기고 뭉클하다.

연광철 성악가(좌), 신미정 피아니스트(중), 박종호 대표(우)/사진=풍월당 제공
연광철 성악가(좌), 신미정 피아니스트(중), 박종호 대표(우)/사진=풍월당 제공

풍월당 대표 박종호(62)는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다가 풍월당을 차렸다. 오페라 평론가이자 여행 저술가인 그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불멸의 오페라」, 「가운을 벗은 의사들」 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

풍월당 20주년 파티도 좋고 행사도 좋지만 노래로 이웃을 다시 껴안는 것이 가장 좋은 축하 같았다. 형식과 취향을 떠나 한국 가곡에는 우리 민족의 영혼이 담겨 있는데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번 가곡집을 통해 ‘별’이며 ‘달무리’며 우리말의 그 어여쁜 울림과 조응하기를 기대한다
- 풍월당 대표 박종호

풍월당의 모토는 ‘공들인 음악, 품위 있는 사회이며, 진정한 예술은 공감과 연민을 일깨워 사회를 인간답게 한다고 믿는다’이다. 풍월당의 모토를 응원한다. 수익이 나지 않을 거라는 이유로 세계적인 음반사도 포기한 ‘한국 가곡 CD’를 제작하는 의미 있는 일을 뚝심 있게 이루어낸 박종호 대표의 선한 의지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또한 『고향의 봄』 CD가 마중물이 되어 한국 가곡이 다시 많이 듣고, 애창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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