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경의 플러스라이프] 원성진 영화감독, 자칭 ‘한물 간’ 영화인이라지만 아직도 그는 ‘현재진행형’
[박애경의 플러스라이프] 원성진 영화감독, 자칭 ‘한물 간’ 영화인이라지만 아직도 그는 ‘현재진행형’
  • 박애경 기자
  • 승인 2021.02.23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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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남기 기자)

 원성진 영화감독
자칭 ‘한물 간’ 영화인이라지만 아직도 그는 ‘현재진행형’

[이모작뉴스 박애경 기자] 영화가 없는 우리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또는 TV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채널을 통해 요즘 유행어인 ‘1일1깡’처럼 ‘1일1영화’할 만큼 영화는 우리 삶과 문화 속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영화는 우리의 눈과 귀를 확장하고, 욕망을 영상으로 구체화하고, 대리만족하게 한다. 때로는 영화를 통해 과거의 삶, 현재의 삶, 미래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만약에’라는 상상력을 펼치기도 한다. 상상력의 결과물은 ‘희로애락’이라는 감정들이 수반된다. 물론 무상무념으로 단순히 ‘타임킬러’로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유의미하거나 무의미하거나, 그 어떤 형태로든 영화는 우리들의 감정과 시간을 현재진행형으로 지배한다.

오늘은 영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원성진 영화감독을 만나 그의 지난 삶과 동년배인 5060세대들에게 들려주고픈 후반전 인생에 대해 얘기 나눌까 한다.

(영화감독 원성진. 사진=김남기 기자)

  안녕하세요? 먼저 지난해 12월에 열린 ‘제58회 영화의 날’에서 영화인공로상을 수상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한마디로 말하면 ‘한물 간 영화인’이죠.(웃음) 현재 영화연출·감독보다는 영화수입·배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제작을 위해서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광고제작일에서 시작해 영화계에 입문하셨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저의 첫 직장이 서울오디오라는 곳이었습니다. 가수 김도향씨가 사장으로, 쎄시봉의 윤형주 씨가 부사장으로 있었던 회사죠. 제가 그 두 분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CM송 제작 일을 하면서 CF감독님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도 CF감독이 되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영화연출 제의가 들어왔고, 제작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 영상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제의에 결국 영화제작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광고제작 이력이 영화제작에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요?

 커머셜 필름(Commercial Film.광고)제작에는 임팩트(Impact)한 부분이 필요하다보니 아무래도 영상미를 살리는데 있어서는 도움이 됐습니다.

  영화이야기로 다시 가볼까요? 첫 데뷔작이 1991년 <메리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데뷔작에 대한 추억담을 들려주시겠어요?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여행자유화가 가능했던 그때 당시, 광고제작을 하면서 촬영 차 해외에 많이 방문했습니다. 해외를 오가면서 한국남자와 외국여자의 러브스토리로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기회가 생겨서 로맨스영화 ‘메리제인’을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남태평양 괌을 무대로 한국 남자와 괌 아가씨가 전개해나가는 사랑이야기입니다. 괌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해 제작비가 좀 들었습니다. 노스웨스트 항공사가 스폰(협찬)을 하고, 괌에 있는 P.I.C(Pacific Island Club) 리조트에서도 스폰을 했습니다. P.I.C와는 제가 광고일을 할 때 그곳의 홍보일을 해준 인연이 있었다. 추후 부가판권을 팔 때는 LGAD후배들이 좋은 값에 팔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광고제작일로 맺은 인연들이 영화제작에 큰 도움을 준 것이죠.

(영화메리제인 스틸컷)

[메리제인] 상업 사진 작가인 준은 휴양지 괌 섬에서 호텔의 홍보 담당으로 있는 선배의 요청으로 홍보 사진을 찍으러 간다. 준은 그곳에서 작업을 하던 중 P.I.C 호텔에서 무용수로 일하는 '메리제인'이라는 괌의 여자를 알게 된다.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마침내 결혼식을 올린다. 하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한 제인과 준은 한국으로 간다. 한국에 오게 된 제인은 톱모델로 성장하게 되지만 준은 점점 외로움에 빠진다. 그것은 일에 빠져 있는 제인과의 대화 단절에서 오는 소외감 때문이다. 그러던 중 준은 옛 애인 지원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려하고, 그것을 안 제인은 한국을 떠나게 된다. 충격 속에 제인이 한국을 떠난 뒤, 준은 자신이 제인을 절실히 사랑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며 괌으로 제인을 찾아 나선다. 수소문 끝에 제인을 만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멀어진 상태이다. 또한 스트립을 하는 클럽의 웨이츄레스로 전락한 제인을 보며, 준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제인과의 거리에서 준은 이별을 한다. 제인이 브라이언과 함께 뉴욕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접하고 준은 홀로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서 준은 제인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며 영원히 제인만을 생각하며 기다리겠다는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마침내 준의 진심을 알고 공항으로 달려 나오는 제인 -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이후에는 어떤 작품을 제작하셨습니까?

  사실 메리제인 제작 후 영화제작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수지타산도 맞지 않았고,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지인의 권유로 얼떨결에 시작한 일이라 더욱 그랬습니다. 당시 저의 관심사는 영화제작보다는 영화음악에 더 쏠려있기도 했습니다. 처음 메리제인을 제작할 때 투자자에게 저의 연출료를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세게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의 임권택 감독님이 편당 2천만 원이었던 시절에 저는 5천만 원을 받고 시작했었죠. 하지만 보통 8개월 이상 걸리는 제작시간을 대비했을 때 그리 큰돈은 아니었고,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영화는 영화하는 사람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영화제작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흐른 뒤 메리제인 제작에 투자한 지인의 권유로 또다시 제작기회가 생겼고, 차기작 <48+1>을 만들게 됐습니다.

  영화 48+1에 대해 좀 더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이 영화의 소재는 우연히 얻게 됐습니다. 당시 구정연휴 때 할 일이 없어 만화가게에서 시간을 보내 던 중 그곳에서 우연히 허영만 씨의 최초 도박소재 만화인 <48+1>을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 <타짜>가 원작자인 허영만 씨가 도박을 소재한 최초 만화인 줄 알지만, 사실은 <48+1>이 먼저 집필되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시나리오로 1995년 영화로 내놓았죠. <48+1>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작에 앞서 감독인 제가 원작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을 살 만한 여유가 없던 터라 허영만 씨를 직접 만나 막걸리 한잔 먹으면서 사정얘기를 했더니 아무 조건 없이 백지 한 장에 저작권을 위임해 주었습니다. 허영만 씨가 준 기회 덕분에 영화 <48+1>이 탄생할 수 있었죠. 이 영화로 인해 신인감독상도 받게 됐고, 중국영화제도 참가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인연으로 중국방송국 국제광고담당 부장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영화 <48+1>은 감독님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이자 열정의 시간이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죠. 당시 정말 열심을 다했습니다. 지금 다시 영화를 봐도 열심을 다한 흔적들이 영화 속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화 48+1 포스터)

[48+1] 화투의 최고수급인 정수(김명곤 분)는 서울에서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 지방 도시를 전전하며 도박 생활을 하던 중 재향(진주희 분)이라는 도박판 심부름꾼 여자를 만나 같이 서울로 올라온다. 재향은 정수에게 돈을 벌어올 것을 강요하고 사기 도박단을 조직하고 있던 옛친구 홍석(전무송 분)이 정수에게 도움을 청해온다. 자해 공갈단을 조직해 길거리에서 돈을 뜯어내는 저질 폭력배였던 강토(박상민 분)는 홍석의 아지트에서 도박을 하다 정수의 놀라운 도박솜씨에 매료된다... 화투는 모두 48장.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또 1장. 그것은 온갖 환상을 빚어대는 요술 카드. 그것만 잡으면 이 판은 내 것인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처음부터 형체가 없는 것이거늘... -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48+1’ 개봉 2년 후 발표한 작품이 <표류일기>로 알고 있다.

 당시 중국방송국에서 아모레화장품, LG전자 TV부문, 농심라면, 쌍방울, 삼보컴퓨터, 동서보리차 등 한국기업의 광고제작 뿐 아니라 광고대행 일을 맡으면서 수입이 좋을 때였습니다. 아모레화장품 광고를 제작하면서 해리작업(CG작업)을 해야 했는데, 당시 중국은 편집테크닉, 디지털 기술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CG작업을 위해 국내 비손텍이라는 업체와 일하게 되었는데, 비손텍 대표가 영화제작에 큰 관심을 보이며 투자하겠다고 하더군요. 당시 동아수출공사라는 제작사에 저의 시놉시스를 제출했지만 선택받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어드벤처 가족영화였습니다. 비손텍 대표가 그 시놉시스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적극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한 영화가 <표류일기>입니다.

 

(영화 표류일기 포스터)
(영화 표류일기 포스터)

[표류일기] 단란한 가정 속에서 자라온 10세 소녀 소연은 남태평양에서 아빠와 함께 낚시를 하던 중 사고로 애견 해피와 함께 배를 타고 표류하다 어느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무인도에 있으면 아빠가 곧 구조해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대자연 속에서 생존의 기술을 터득하며 버텨낸다. 어느 날 수많은 식인종들이 정글에 출현해 원주민들을 해치려고 하지만 소연에 의해 원주민 소년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은 친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데... -출처: 네이버 영화정보

  현재 기준 마지막 영화인 <표류일기>는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당시 우리나라는 어린이가족영화가 전무하던 때였습니다. 지금도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 정도만 제작되고 있지, 어린이영화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저의 대선배인 남기남 감독님이 만든 <영구와 땡칠이>가 어린이영화의 맥을 잇고 있었지만,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거의 7~8년 동안 우리나라 어린이영화가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표류일기가 1997년에 제작되었지만 2015년에 다시 편집해서 재개봉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의미가 큰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면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시나리오를 쓰면서 준비하고 있고, 저예산 제작자들과 많은 교류를 갖고 있습니다.

  1997년 이후로 차기작품을 제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동안 중국에서 광고관련 일을 하고 있었던 시기라 영화제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모 정치인의 권유로 유관순 열사에 관한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천안미디어센터장과 대전방송아카데미 원장으로 일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끝나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죠.

  공백기에도 영화제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셨던 거군요.

 그렇죠. 영화화 되지 않아서 그렇지 시나리오 등으로 많은 투자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CJ E&M, 롯데시네마 등과 같은 대기업에서 러브콜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투자 받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작 일을 포기하게 되었죠. 하지만 저와 다르게 제 동료들은 지금도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열정들이 대단한 것 같아 존경스럽습니다. 그들에 비해 저는 엉터리 영화감독이죠.(웃음)

  현재 감독님의 일상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지금은 영화수입·배급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는 4월에는 한국다큐멘터리 영화를 배급해 개봉할 예정입니다. 제가 어린이 만화시리즈인 <검정고무신>의 프로듀서인거 모르시죠? <검정고무신>도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코로나 시즌인데도 불구하고 7편을 배급했습니다. 그 중 후배들이 열심히 만든 우리 영화가 4편입니다. 이처럼 배급하는 일과 함께 저예산으로 제작한 후배들의 영화들이 영화관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지난해 영화 ‘졸업’을 배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060세대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명작이었죠.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OST <The sound of silence>가 더 유명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졸업시즌에 맞춰 개봉을 했습니다만, 개봉하자마자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어려움이 컸어요. 훌륭한 영화였는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코로나상황이 좋아지면 내년 2022년 졸업시즌에 재개봉을 할 생각입니다.

  올해 상영관에 올리는 영화들, 소개 부탁합니다.

(영화 이다 포스터)
(영화 이다 포스터)

 현재 <이다>가 상영 중에 있습니다. 영화 <이다>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흑백영화로 아카데미를 포함해 68개의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슬람의 미혼모를 다룬 <아담>이라는 영화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체성을 다룬 <짱개>라는 대만영화와 살인사건에 연루된 중학생이 SNS에 올라온 악플로 인해 일상이 파괴되는 모습을 다룬 <일파만파 존덴버>라는 영화를 곧 올릴 예정입니다. 일파만파 존덴버의 원제목은 <John Denver Trending>이며, 올 여름에는 상영관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올해 추석에 맞춰 제가 가장 야심차게 준비하는 영화를 소개할까 합니다. 영화계의 거성 신상옥 감독님의 유작으로, 치매노인 이야기를 다룬 <겨울이야기>의 판권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여류작가 ‘히라바야시 다이코’가 이 영화의 원작자인데, 노인치매에 대한 중요성을 다룸으로써 일본에서 치매에 관한 법이 제정될 정도로 영향을 끼쳤던 작품입니다. 배우 신구 씨가 주인공으로 열연했는데, 제 생각에는 최고의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올해 배급할 영화는 7~10편 정도의 라인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겨울이야기 포스터)

[겨울이야기] 신상옥 감독의 유작이 된 작품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정신을 놓은 채 치매에 걸린 노인(신구)과 그를 돌보는 며느리(김지숙), 그리고 온 가족이 겪는 고통과 갈등, 회환을 그린다. 친숙한 배우 신구와 연극계 스타 김지숙이 각각 노인과 며느리로 분해 호흡을 맞췄다. 1994년 프랑스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2002년 프랑스 도빌영화제 심사위원장, 뮤지컬 총연출 등 영화 제작 외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신상옥 감독은 2002년 이 작품으로 6년여 만에 영화촬영 현장으로 복귀했다. 2004년에 제작이 완료된 이 작품은 2006년 4월 신상옥 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해 개봉되지 못한 채 유작으로 남았다. -출처: 다음 영화정보

  식상한 질문 같지만, 감독님에게 영화란 무엇인지요.

 운명입니다. 전혀 관심이 없던 저에게 운명처럼 다가 온 것이 바로 영화이기 때문이죠. 충무로 적응하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왜냐하면 조감독, 연출생활도 안 해봤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사람 사귀는 데만 꼬박 1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끈끈한 정을 나누는 충무로사람들이 많지만요.(웃음)

  영화에 담고 싶은 철학이 있다면.

 가족사랑입니다. 요즘은 가족사랑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아동학대에 대한 기사가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할 때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경시되는 것 같아 마음 아픕니다.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들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순다섯의 나이에도 영화인의 길을 묵묵히 또 활기차게 걸어가시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인생후반을 걸어가는 5060동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제 나이가 예순다섯 인지 세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세대들이 영화를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의 후반인생을 풍요롭고 즐겁게, 또 마음을 살찌우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 산업이 힘들고 위기입니다. 저 역시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질 이겨 낼 거라 생각합니다. 올해는 많은 분들이 영화관을 찾아 주길 바랍니다. 방영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영화관도 안전합니다. 코로나 영화로 이기자! 화이팅!

  원성진이라는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한물 간 영화감독입니다.(웃음)

[영화감독 원성진] 1956년생. 광고를 주로 제작하다 주위의 권유로 영화계에 입문. 그는 1백여 편이 넘는 광고연출를 통해 다져진 연출력으로 영화에서 감각적인 화면과 리듬감 있는 편집 실력을 보여주었다. 데뷔작은 <메리제인>(1991). 두 번째 작품 <48+1>(1995)으로 제6회 춘사영화예술상 신인감독상을 수상. 1997년에 <표류 일기> 발표. 제2회 서울국제가족영화제에서 우수상과 특별감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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