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 제사 물려주기? 끊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4.19 10:09
  • 수정 2019.05.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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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안방에서 달력을 쳐다보던 박여사의 표정이 급작스러울 만큼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시할아버지 제사라고 크고 붉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제사 한 번 치르려면 2주 전부터 괜스레 몸과 마음이 동동거리고 쉽게 지쳐버렸다. 김치도 새로 담그고, 생선도 미리미리 말려두어야 했다. 이런 세월이 벌써 30년째라 박여사는 이제 제사라면 조상에 대한 예의니, 친인척간 화목이니, 자손발복 이라는 등 모든 원천적인 의미들이 미사여구로만 들려왔다. 효성스런 자손 역할보다는 제사 한 번 치르고 나면 아픈 자신의 팔다리 허리를 우선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더구나 요즘은 남편의 이중적인 태도에 더 화가 났다. 이제 곧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며느릿감을 보고 오더니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이랬다.

“우리 아들한테는 제사를 물려주지 말아야겠어.”

직장에 다니는 꽃 같은 며느리는 제사 준비로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박여사는 기가 막혔다. 그럼 지금까지 제사 준비가 얼마나 힘든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르는 체 하면서 최씨 집안 며느리의 도리 운운 하며 불만을 아예 원천봉쇄하는 전법을 써왔다는 말이었다. 이참에 박여사는 집안 남자들에게 제사의 실상을 경험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 3대 제사 모시기로 효부 소리를 듣던 친구에게서 아주 효율적으로 제사 재인식 방법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실천해볼 요량이었다.

“아들 며느리한테 제사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죽을 때까지 내가 지내야 할 모양인데, 이젠 늙어가는 몸이라 당신 도움이 없으면 안 돼요. 연습도 할 겸 이번 할아버님 제사는 최씨 집안 남자들이 다 장만해서 지내보세요. 어차피 젯상에 절도 못하는 남의 자식인 나는 잠시 여행 떠날게요.”

박여사는 남편에게 이렇게 포고하듯 말했다. 박여사는 일체 자문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며, 제사 전후 2일간 친구들과 한창 꽃이 피는 남도여행을 가기로 했다.

제사를 꼭 끊어버리자는 게 아니라 어차피 며느리를 본다 해도 자신이 제사를 준비할 것이고 직장에서 퇴근한 며느리가 도리를 한답시고 부엌에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원하지 않았다. 도리나 예의가 몸과 마음에 가학행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게 박여사의 생각이었다. 남편에게서 제사의 미래에 대한 의견이 나온 지금 집안 남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조상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보면서 개선점이나 방향전환 등을 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가르쳐준 친구의 말에 의하면 “여자들이 제사지내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 우리 남자들이 지낼 테니 걱정 말라구. 그까짓 나물 몇 가지 무치고 전 한 접시 굽는 것 가지고 힘들다고 야단이야.” 이렇게 말했던 친구의 남편은 2년 동안 기제사, 명절제사 등 8번의 제사를 지내고 나더니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집도 조상 기리는 방법 좀 바꾸어야겠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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