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로 조그만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한사장님은 오랜만에 토요일 아침에 가족 모두 아침밥을 먹는 자리를 맞이해 기분이 흐뭇했다. 잘 자라준 두 아들을 보자 정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 어렵던 80년대의 봉제 수출의류 하청공장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대기업의 안정적인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별 위험 없이 노후까지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집 있고, 먹고 살고, 등록금 걱정이 없이 자식들을 교육 시킨 자신의 지난날이 꿈만 같다며 가끔은 고생하던 시절 친구들과 술잔을 들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갖은 고생을 한 자신과 달리 아들들은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중소기업이지만 어엿한 정규직 사원인 큰아들과 작년에 경찰공무원이 된 작은아들이 볼수록 뿌듯했다.
오늘 아침밥을 다 먹기 전까지 한사장님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적어도 아들들의 폭탄선언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처럼 느긋한 아침식사 후에 사과와 커피까지 곁들여진 후식시간이었다.
먼저 큰아들이 운을 떼었다.
“엄마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 당분간은 결혼계획이 없습니다. 결혼한다고 해도 제가 알아서 아주 늦게 할 계획입니다.”
지금 33살인데 아주 늦게라면 도대체 몇 살을 얘기하는 것인가. 한사장님의 머리가 계산으로 복잡해지려는데 30살 먹은 작은 아들이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아버지, 형이 늦게라도 결혼한다니까 저는 결혼 안 해도 되지요?”
아내는 그래도 평소에 아들들과 얘기를 좀 더 나누는 탓인지, 아니면 아들들이 세뇌공작을 하는 탓인지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라는 체념에 찬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큰아들은 미리 손 사레를 치며 한사장님의 첫 번째 질문을 봉쇄해버렸다.
“아, 뭐 정신적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구요.”
그럼 무슨 이유냐고 물어보려는데, 의외로 아내가 먼저 조건제시를 하며 거의 읍소를 했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그런 거야? 우리가 좀 보태줘도 안 되겠니?”
큰아들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결혼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제도일 뿐이지 필수관문이 아니라고도 했고, 작은 아들은 결혼만 안 하면 그 시간과 돈으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데 구태여 결혼이 왜 필요하냐는 게 아닌가. 인생을 결혼한 자와 결혼하지 않은 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사장님과 아내는 결혼의 이론에 통달한 듯한 아들들의 그 말을 다 알아들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 자식이 요즘 유행한다는 ‘비혼주의자’라는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저런 모든 쓰잘데기없는 이론을 바꿀 수 있는, 진짜 사랑하는 여성을 아직은 만나지 못해서 그럴 뿐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