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17] 여보, 걱정 말아요!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8.12 11:21
  • 수정 2019.08.1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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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평일 저녁이면 대부분 그랬듯 인호씨와 민숙씨 부부는 텔레비전으로 저녁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딸은 아직 귀가 전이었다. 올해 만 58세로 몇 달 전 시중은행에서 퇴직한 인호씨는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24시간의 리듬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매일 출근하던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퇴근할 때까지의 텅 비어버린 듯한 시간이 거센 밀물처럼 차고 넘쳐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았다. 물론 다른 퇴직선배들처럼 사진찍기 등의 취미생활로 빠지거나 자본이 별로 들지 않는 창업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떠오르지가 않았다.

“은행이라는 완벽한 시스템이 갖추어진 온실에서 나온 사람이 창업을 하면 거센 야생의 세계에서 필패한다”라는 게 아내인 민숙씨의 지론이라 아직은 심중에서 요모조모 굴리고만 있는 생각이었다. 아내인 민숙씨가 그만큼 주변에 은행에서 퇴직한 선배들의 삶을 보면서 내린 경고성 충고라 타당하기도 했다.

여느 때처럼 보수적인 시각에서 나라걱정을 하면서 9시 뉴스를 보던 인호씨가 그날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보!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내 민숙씨는 나라 걱정인줄 알고 심드렁하게 대꾸를 했다.

“아, 입만 열면 저마다 나라를 위한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가 걱정한다고 뭐 달라져요?”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돈이-- 월급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고!”

인호씨는 매달 25일에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진 통장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자신이 은퇴자가 된 상태가 마치 입금 기재란이 빈칸인 통장을 보는듯하게 실감으로 후려치듯 다가왔다. 민숙씨는 저번 달 26일쯤에도 같은 행동을 보인 남편을 떠올리며 이제는 가장이란 속박에서 벗어났음을 인정하고, 퇴직을 받아들이라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아, 여보! 당신이 월급에서 떼어서 저축한 국민연금이랑 내가 들어둔 연금저축으로 충분히 살 수 있어요. 애들도 학교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을 해서 자기 앞가림은 할 거구요.”

“그런가?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도 우린 지금처럼 가끔 여행도 하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건가?”

민숙씨는 치밀한 은행원으로 30여 년을 일한 인호씨가 그런 돈 계산을 안 해 봤을 리도 없고, 노후자금이 확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안에 시달리는 이 은퇴초기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이 은행원으로 외길을 걸으며 미래를 닦아온 거잖아요!”

민숙씨의 차분한 말에 인호씨의 얼굴이 조금은 풀어지는 듯 했다. 인호씨는 다시 소파로 가서 앉으면서 깊은 숨을 내뱉었다.

“여보, 이제 당분간은 당신 건강이나 챙기고 긴장을 좀 풀어보세요. 애들이랑 아빠 퇴직파티를 정식으로 안 해서 당신이 퇴직을 실감하지 못하는가 봐요. 이번 주말엔 해방된 아빠를 축하하는 멋진 식사모임 한 번 합시다.!”

민숙씨는 그러나 다음달 26일쯤이 되면 매달 25일 월급을 받던 남편이 다시 저녁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우린 어떻게 살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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