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8년간 간절함의 결실, '국제 사회적기업 크리에이터'...이미옥 ‘퀘벡사회적경제연구회’ 공동대표

이상수 기자
  • 입력 2023.08.16 16:26
  • 수정 2023.08.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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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오두막’ 마저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
생면부지의 땅에서 8년!
그곳에서 만난 위대한 인연들!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한’
간절함과 삶에 대한 의지 ‘
'그래도...살아, 살아내야지!’
슬픔과 외로움의 점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최초’라는 굵은 선이 되다.
- 이미옥 ‘퀘벡사회적경제연구회’ 공동대표

 [이모작뉴스 이상수 기자] 지난 7월 4일에서 6일까지 3일간 국회와 성공회대에서 CIRIEC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별 발표자 사이에 독특한 이력의 이미옥씨를 만났다. 현재 그가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캐나다 퀘벡은 사회적경제가 가장 발전한 곳으로 손꼽히며, 한국의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활동가나 연구자들의 단골 견학 지역이기도 하다.

Q. CIRIEC은 어떤 단체인가?

CIRIEC은 공공, 사회, 협동조합 경제를 연구하는 국제적 연구센터이자 학회다. 본부는 벨기에 있고, 여러 나라에 센터가 있으며, 한국도 CIRIEC 코리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 CIRIEC학술대회 발표자로 참가한 이미옥씨. 왼쪽에서 두번째.  왼쪽, 오른쪽 각각끝은 마리J.부샤, 이상윤 대회 공동위원장. 사진=이미옥 제공
서울 CIRIEC학술대회 발표자로 참가한 이미옥씨. 왼쪽에서 두번째.  왼쪽, 오른쪽 각각끝은 마리J.부샤, 이상윤 대회 공동위원장. 사진=이미옥 제공

Q. CIRIEC 학술대회가 한국에서 열린 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과정을 듣고 싶다.

몬트리올 퀘벡대 마리 J.부샤 교수와 2023 CIRIEC 국제학회 공동위원장’ 성공회대 이상윤교수는 그전부터 학문적 인연이 있었다. 2021년 12월초 서울서 개최한 제33차 세계협동조합대회에서 이 교수는 마리 J.부샤 교수의 통역을 맡았고, 그녀의 저서 ‘사회적경제의 힘: 통계 방법론과 해외 사례들’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상윤교수가 CIRIEC대표인 마리 J.부샤 교수에게 최초로 학술대회를 동양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했고, 조직 내부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여 일이 진행된 것이다. 참고로 마리 J. 부샤 교수는 현재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이다.


Q. 이번 학술대회의 참가 과정과 발표주제는 무엇인가?

학술대회 참가자격은 사회적경제 관련 연구자와 석, 박사 및 교수들이다. 올해 1월말까지 연구축약본을 제출하고 심사 후 3월에 참가자를 발표했다. 이번 발표주제는 ‘퀘벡 소사업자(소상공인) 협동조합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솔직히 이 학술대회가 주목적은 아니었다. 한국에 들어간 지 오래됐고, 한국에 가고 싶던 차에 한국에서 열리는 걸 알게 되었다. 대회 주관대표가 저의 지도교수님이시고, 더군다나 발표기회도 생겼다.

어찌 보면 연속된 인연이 저를 이번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 같다. 대회 공동위원장인 이상윤 교수가 작년 안식년 동안 마리 J. 부샤 교수의 초청으로 퀘백대 연구교수로 왔다.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에 관한 얘기가 잠간 오간거로 알고있다. 그래서 공동위원장 두 분을 다 조금 더 알게 된 셈이 되었다. 이 교수는 제가 한국에 한 달 있는 동안 많은 편의도 봐주었다.

 CIRIEC대회후 기념촬영  가운데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미옥씨  
 CIRIEC대회 참가자 기념촬영. 사진=이미옥 제공

Q.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작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ISTR(International Society for Third Sector Research) 학술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서로 성격이 달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단순한 경험을 떠나 학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은 대회였다. 지도교수와 대회에 참여하는 퀘벡대 사회적연구 커뮤니티의 두 분 교수, 세 연구원과 같이 사전준비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팅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작년 대회에서는 발표에 급급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각각의 세션에서 열리는 발표에 참여했고, 다양한 국적의 발표자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사회적경제에 관한 인맥의 지평이 한층 넓어지고, 한국 내 관련 단체들이나 연구자들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어서 저에겐 뜻깊은 기회였다.

Q. 한국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한국대학생협연합회'에서 일을 했다. 지금은 35개 대학에 생협이 형성되어 있지만, 일을 시작했던 1996년에는 연합회는 없었고 6개 대학의 임의조직체였다. 대학생협은 구성원들이 서로 출자해 협동조합을 만들어 비영리로 구성들을 위한 매점과 식당 등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한 운영을 목적으로 한다. 생협관련법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생협법이 만들어지고, 생협도 증가해 2011년도에 연합회가 생성되었다. 나름 대학생협의 확산과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Q. 캐나다로 훌쩍 떠난 동기가 무엇인가? 공부인가?

캐나다로 간 게 처음부터 공부는 아니었다. 한국서 20년 동안 한 조직에서 실무중심 일을 해왔다. 경력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실무에서 연구 쪽으로 커리어 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 사회적기업을 탐방하고 인터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러 후보지에서 사회적경제가 튼튼한 퀘벡을 택했다. 일단 여기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야겠다고 모질게 마음먹고 떠났다.

생협 일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여러 가지 일로 많이 지쳐있었고, 개인사적인 일도 겹쳐, 삶의 변화가 필요했다. 돌아올 구석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나에겐 작지만 소중하고 아늑했던 성북동 ‘오두막' 마저 미련 없이 정리를 맡기고 떠났다.

 번역협동조합 간담회서 강연하는 이미옥씨
 번역협동조합 간담회서 강연 모습. 사진=이미옥 제공

Q.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는데, 지금 박사과정 등 연구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캐나다 퀘벡을 택하고 언어로 영어만 준비하면 수월할 줄 알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퀘벡은 사실 불어권이었다. 불어가 아니면 사회적경제에 관한 심도있는 관찰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몬트리올 영어학원에 등록하여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학원에는 남미나 아시아에서 영어를 배우러 온 연령이 낮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린 학생들에게 맞춰진 영어교육 주제들이나 학원환경은 나에겐 적응하기도, 공부에 몰두하기에도 쉽지가 않았다

이왕이면 관련된 공부를 하며 불어를 배워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모한 생각 하나가 나를 무한 시련 속으로 집어 던질 거라곤 그땐 생각도 못 했다. 퀘벡대 사회적경제 운영전문가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나중에 보니 거의 모두 불어가 모국어였고, 그 지역에서 사회적경제관련 일를 많이 해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서 관련된 실무가 인정받아 합격은 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내가 좀 아는 공부도 하고, 불어도 공부하고. 그러나 그건 호기였다. 언어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힘든 공부를 이겨낸 거 또한 좋은 인연들 덕분이다.

내 젊음을 바쳤던 사회적경제와의 인연, 그리고 교수님들의 따뜻한 격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한층 더 어려운 박사과정을 택한 것도, 그리고 연구에 힘이 되어준 것도 다 좋은 인연들 덕분이었다. 이상윤교수는 경험과 연구를 갖춘 사람은 흔하지 않다고 등을 떠밀어 주었고, 학업계획서와 지원서를 제출했을 때, 마리 J. 부샤 교수는, 내용이 너무 좋다고 같이 연구해 보자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가다 보니 새로운 길이 생겼을 뿐이다. 


박사논문주제도, 학술대회 주제도...좋은 인연들 덕분에

박사논문의 주제는 사회적 경제 운영, 사회적 경제 조직의 조직행동에 관한 한국과 캐나다의 비교'이다. 한국서 사회적 협동조합 조직관리와 교육업무를 주로 했다. 조합의 중요성과 사명감을 교육의 중심에 두었지만, 그것만으론 인프라구축에 역부족이었다. 과학적인 비교연구가 필요했다. 과거의 경험이 공부의 방향을 알려준 셈이다.

이번 학술대회의 발표내용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협동조합기업기본법 이 생긴 이후 사회적기업이 급부상했지만 여전히 성장엔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고민하는 단체의 연구의뢰가 있었고 퀘벡의 소사업자 협동조합의 발전방향이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정한 것이다.

 2022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ISTR (International Society for Third Sector Research) 학술대회의 이미옥씨
2022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ISTR (International Society for Third Sector Research) 학술대회 발표모습. 사진=이미옥 제공

Q. 만8년째 낯선 땅에 있었다. 생명부지의 땅에서 어떻게 언어 등의 어려움을 극복했는가?

2015년 9월 캐나다로 향했다. 나이는 이미 40대 중반.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퀘벡에서 불어가 안되면 심도 있는 연구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영어권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해본 건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일밖에 없고, 공부가 아니더라도 인터뷰든 뭐든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불어를 해야 했다.

다행히 늦은 나이에 그곳에서 인연을 만났다. 그는 결정적 순간마다 응원을 해주는 동반자이자 동지가 돼주었다. 유일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그러나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도, 아무리 이해심이 넓어도 모든 것을 말할 순 없었다. 자기만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작정 걸으며 울었다. 워낙 겨울이 추운 곳이라 얼굴과 머리에 눈이 내리면 언다. 그게 녹아 얼굴에 흘러내리면, 그게 눈물인지 얼음물인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나를 마음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언어적 단절, 답답함, 외로움으로 많이 울고, 무작정 걸었다.

그러나 저 살아가게 한 건 간절함이었다. 다른 이민자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마땅한 기술도 없고, 오직 해온 건 사회적경제 일뿐인데, 그중에서도 말로 사람을 설득하고 글로 자료를 만드는 일이 내 일이었다. 그 일을 여기서 하려면 불어를 원어민 못지않게 잘해야 하는데,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뭔가. 그러나 결국 내가 좋아서 해온 일, 그거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이제 사회적경제가 한국에서는 사회변혁에 대한 사명감이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생존 그 자체가 되었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하다 보니 한국에선 나도 모르는 사이 퀘벡 사회적경제하면 저를 떠올리는 일이 많이 생겼고, 퀘벡의 사회적경제에 관해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의적 해석으로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책임감이 생겼고, 더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CIRIEC 대회서 세션별 발표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미옥 제공

Q. 힘들 때 한국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생협활동은 좋았지만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야 했고, 여러 개인사로 심신도 지쳐있었다. 뭐가 되든 그냥 들어오진 말자고 마음먹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국에 있는 작은 근거지마저 없애고 돌아갈 여지를 아예 남겨두지 않았다. 여기가 마지노선이다. 내겐 돌아갈 곳이 없다. 배수진 아닌 배수진을 쳤다.

Q. 힘들었던 8년을 버티게 했던 동력, 혹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들이 있을까?

지금은 한 곳에 쉬고 계시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느 해인가 산소에 가던 날이었다. 풀이 무성해 산소까지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빠들과 낫으로 풀을 헤치며 한참을 가서야 산소를 찾을 수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가 길 인지, 사실 모를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사회적경제 일이고, 그것이 유일하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내 눈앞에 두고 낫으로 풀을 헤치면서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냐는 질문에, 거창하지 않지만, 힘들 때 자신에게 해준 몇 마디가 있다며 들려주었다.

”사실 절망스럽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땐 아무것도, 아무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저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들뿐이죠. 저는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했어요. 그래도...살아!’ 살아있으면 또 그다음에 어떤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어디로든 내 발자국이 나 있겠죠. 그래서 그저 순간순간 열심히 살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에게 힘이 되어준 또다른 말은 ’고맙습니다.’예요. 그 말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고마워지는 일이 생기더군요. 평범한 날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고맙고,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그 말이 제 하루를 충실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이 돼 주었어요.“

 이미옥씨가 즐겨 자전거 라이딩하는 몬트리올 공원. 사진=이미옥 제공
 이미옥씨가 즐겨 자전거 라이딩하는 몬트리올 공원. 사진=이미옥 제공

Q.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일단 박사과정에 집중하고 싶다. 캐나다는 학위과정이 까다롭다. 이번 학회를 계기로 돌봄서비스관련 퀘벡사례에 관한 연구의뢰가 있었다.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미옥대표는 ’그래도..살아!' 라는 말에 눈물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겨우 눈물글썽임으로 대변했다. 그가 니체을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보다 니체가 말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냈다. 앞으로 그에게 붙을 ’최초‘의 수식어는 즐비할 것 같다.

’​​한국인 최초 사회적경제 불어박사논문과 박사', ’퀘벡 사회적기업연구 최초 한국인‘,
’한국-퀘벡 사회적기업 컨설턴트', ’국제 사회적기업 크리에이터'
 등.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 발달을 세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 낙타 단계는 남의 짐을 짊어지고, 남이 가라는 방향으로 가는 단계다. 사자 단계는 자유정신의 단계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하는‘ 단계다. 하지만 사자는 초원에서 자유는 얻었으나 여전히 생존적인 삶이다. 어린아이는 ’놀이‘, ’최초의 움직임‘, ’성스러운 긍정’의 단계다. 창조의 단계다.

이대표는 낙타와 사자 단계를 넘어서 ’최초’라는 창조의 단계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적경제의 활성화는 물론, 사회적경제의 한국-캐나다 간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라도 그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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