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시민되다③] 학교에서 품지 못한 아이들, 마을 선배시민이 품다...‘남한산성 할매’ 신의선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5.25 11:41
  • 수정 2023.05.2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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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품지 못한 아이들을 우리 마을에서 품어주고 싶었습니다.

- 신의선 선배시민

신의선 선배시민의 별명은 ‘남한산성 할매’이다. 선배시민운동을 펼치는 중원노인복지관에서는 신의선 선배님으로 불리고 있다.

‘남한산성 할매’의 주인공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남한산성 할매’의 주인공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남한산성 할매’ 선배시민되다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된 아이는 봉사명령을 받고 중원복지관에 온다. 그러면, ‘그루터기’동아리 선배시민은 학생들에게 서예도 가르쳐 주고, 심신을 수양하는 여러 활동을 한다. ’남한산성 할매‘는 중원복지관의 ‘그루터기‘동아리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봉사활동 중 하나이다. ‘남한산성 할매’ 프로그램은 벌써 10년째, 신 선배가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할매와 함께 남한산성을 탐방한 학생 중에 성인이 되어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도 있다.

‘남한산성 할매’ 프로그램은 간단하다. 오전에 중원복지관 인근 남한산성에 신 선배와 학생 한두 명이 함께 산책로를 따라 걷고, 복지관으로 돌아오면 된다.

낯선 할매와 남한산성을 오르는 학생은 어떤 심정일까? 어색함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을 것이다.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연약한 할머니가 나를 계도한다’고, ‘뭔 잔소리를 할까.’

▶ 학교에서 품지 못한 아이들은 우리 마을에서 품어주고 싶었습니다

남한산성에 가게 된 동기는 복지관 안에 학생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죠. 그래서 학생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었어요. - 신의선 선배

아무리 좋은 소리도 닫힌 공간 안에서는 그저 공염불뿐이었다. 신 선배와 학생이 남한산성을 오를 때면, 따로따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윽고 자연이 주는 정화가 마음을 넓어지게 하고, 몸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학생과 신 선배가 산에 오를 때 모습, 말도 없고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다.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학생과 신 선배가 산에 오를 때 모습, 말도 없고 거리도 많이 떨어져 있다.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어떻게 하다가 여기 오게 됐니?”
“제가 사고를 좀 쳤어요. 친구하고 싸웠어요”
“왜 싸운 건데. 안 싸우면 안 돼.”

이렇게 조금씩 얘기를 이어갔다. 물으면 대답도 잘해주고 자신의 가정 얘기도 곧 잘한다. 마치 할머니에게 신세 한탄하는 손주처럼 말이다.

산 중턱에 올라 남한산성 할매가 준비한 물과 과자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산 중턱에 올라 남한산성 할매가 준비한 물과 과자를 함께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 '관장님~ 저는 선배시민을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어떤 중학생 아이는 자신의 꿈이 치킨집 사장이었다. 왜냐면, 부모가 치킨집을 하는데 너무 고생한다는 것이다. 이때 신 선배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 착한 아인데,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 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눈시울이 붉혀졌다.

또 늘 지각하는 학생이 있었다. 대개 학생은 부모님이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등교시키지만, 이 학생은 부모님이 일찍 출근해서 혼자 집에 남아 등교를 해야 했다. 늘 늦잠을 잔 아이는 지각을 밥 먹듯 한 것이다.

인생의 출발은 학교를 등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에 꼭 제시간에 가자’고 신신당부해요.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의 학생은 가족에 대해 불편함을 얘기해요. 학교생활의 고단함 외로움 등을 하나씩 꺼내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자신이 갖는 문제점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이렇게 얘기하죠. ‘저 절대로 이제 실수 안 할 겁니다.’ - 신의선 선배

내려올 때 모습. 어느새 신 선배의 가방이 아이 손에 들려있다.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내려올 때 모습. 어느새 신 선배의 가방이 아이 손에 들려있다.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하지만, 어떤 학생은 남한산성에 서너 차례 함께 올랐던 적이 있다. 매번 다시는 안 온다던 그 학생은 삼년 만에 남한산성을 하산하게 됐다.

너무 이쁘장하게 잘생긴 학생이었는데, 사람들이 자기 외모를 보고 잘 믿는다고 했죠. 그래서 여러 차례 거짓말과 사기로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였죠. 그 아이가 한참 뒤에 문자를 하나 보냈어요. - 신의선 선배

선생님 2021년 신축년 마무리도 잘 해내겠습니다. 이제 한 달 뒤면 제가 성인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번듯한 성인인데 사고 치지 않고 조심히 생활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올바른 어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정말 상당히 추워졌습니다. 옷 따뜻하게 챙기시고 감기 조심하십시오. 이른 아침잠이 오지 않아 선생님께 연락 한 통 남깁니다. - '남한산성 할매' 프로그램 참여한 학생

신 선배는 이 문자를 들고 아침 일찍 복지관으로 달려갔다.

'관장님~ 선배시민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남한산성 할매‘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신의선 선배시민과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촬영=김남기 기자 
신의선 선배시민과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촬영=김남기 기자 

도대체 남한산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라떼는 말이야’ 하며, 일장 훈계를 한 것일까? 이 사회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힘들지, 네가 혼자서 일어나고 학교 가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이 사회 구조가 그런 거지. 어떻게 혼자 해냈노. 부모는 너를 위해 항상 기도한단다. - 신의선 선배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준 사람. ‘남한산성 할매’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준 사람. ‘남한산성 할매’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이 험한 세상에 내 편이 되어준 사람.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준 사람. ‘남한산성 할매’는 그렇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공감해 주었다. 딱딱한 교실이 아니라 자연 안에서 마음을 열어갔다.

신의선 선배는 늘 자신의 휴대폰 안에 얀테의 법칙(Jante's Law)을 담아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되뇐다. 이 법칙은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나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 북유럽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행복한 삶의 방향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얀테의 법칙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아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이들은 얀테의 법칙 10개 조항 중에서 자신에게 해당하는 게 몇 개인가 체크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달아 간다.

중원복지관 터주대감

신 선배는 중원복지관에서 활동한 지가 10년이 좀 넘었다. 그야말로 터주대감이다. 동네 선배시민과 함께 동아리, 봉사활동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복지관의 역사를 꿰차고 있어서 인지 복지관이 변모된 모습을 소상히 잘 알고 있었다. 복지관이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해서, 건물도 새로 짓고, 리모델링해서 꽤 규모가 커졌다.

또 가장 큰 변화를 직원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원복지관에서 선배시민교육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이 변화됐다. 어르신은 선배시민이 되고, 직원은 복지의 시혜자가 아니라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후배시민이 됐다.

선배시민교육 이전에는 복지관에 모임이 있으면, 그냥 한 공간에 어르신을 몰아넣었어요. 그리고 복지사는 보이지도 않고, 지금은 함께 토론하고, 발표하고, 뭔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요. 복지사도 너무 즐거워하고, ‘우리를 보고 선배님 멋있어요’ 하잖아요. 표정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어요. 예전에는 직원들이 우리한테(선배시민) 베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자신(복지사)도 선배들에게 배우며, 서로 나눔을 오고 간다고 생각해요. - 신의선 선배

 ‘중원방송(JWBC)’  선배시민기자단 활동 청년(학생)들 인터뷰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중원방송(JWBC)’  선배시민기자단 활동 청년(학생)들 인터뷰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신 선배는 대학 복지과 현장체험 학생들을 ‘중원방송(JWBC)’ 선배시민기자로 인터뷰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어르신의 부족함을 메꾸고 도와주고 간다고 생각했데요. 그런데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이 더 배울 게 많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복지과에서 청소년전공에서 노인전공으로 진로를 바꾼다고 하더군요. - 신의선 선배

‘중원방송(JWBC)’은 예전에는 선배시민만 활동했다. 이젠 청소년도 모집해서 ‘신모란여지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지역사회의 현안과 문제들을 선배시민과 청년세대가 함께 토론하고, 미디어에 담아내고 있다.

선배시민의 봉사 활동

신 선배는 청소년 봉사활동과 노노케어를 병행해서 봉사활동을 한다. 노노케어는 복지관에 오기 힘든 노인들을 복지사와 함께 찾아가 안부도 묻고, 말동무도 되어드리고, 집안을 잘 살피고 있다. 그리고, 노노케어 활동 사례를 한 달에 한 번 공유하는 사례 발표를 진행한다.

노노상담 봉사단사례 토의, 사진 맨 왼족.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노노상담 봉사단사례 토의, 사진 맨 왼족.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노노케어는 홀몸 어르신을 대상으로 주로 방문한다. 반갑게 안부를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떨 때는 문전 박대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주 찾아가서 안부를 물으면, 결국 친한 친구처럼 살갑게 대해 준다. 찾는 이 없이 외로운 분들은 늘 말동무가 그립기 마련이다. 나와 같은 동년배가 말동무를 해주니 참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먼저 건네고 있다.

야탑역 봉사활동 캠페인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야탑역 봉사활동 캠페인 모습. 사진=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신 선배는 연극 동아리에서 배우로 발표회도 갖고, 판교 도서관 사서로 노인일자리 활동도 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성가대 합창단원이다.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우울증에 많이 시달렸다. 집안에만 갇혀 있던 지난 시간을 힘겨워하면서, 지금의 모습에 무척 행복해 보였다.

선배시민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오늘도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복지관 같은 곳에서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하잖아요. 예전의 지위나 돈이 있고 없고를 내색하지 않고, 스스로 낮추고 주변을 살피고, 나누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 신의선 선배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남한산성 할매’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남한산성 할매’ 신의선 선배시민. 촬영=김남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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