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조류 800만마리 유리창 충돌...창문에 점 찍으면 되는데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1.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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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국내에서 한 해에 800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유리창에 충돌해 목숨을 잃는다. 이는 하루 평균 2만여 마리에 달한다. 야생생물법 개정으로 해당 구역의 공공기관이 관리해야 하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2018년에 발표한 ‘인공구조물에 의한 야생조류 폐사 방지 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1년에 약 800만 마리의 새가 인공구조물인 투명 유리창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도시에서는 건물 안에서 밖의 경관이 잘 보이도록 유리창으로 설계된 건물이 많다. 특히 도로의 소음을 막기 위해 투명방음벽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사용된 유리는 인간에게는 편리하지만, 새에게는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끈다.

새의 눈은 바로 앞의 물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옆이나 뒤에서 쫓아오는 천적을 빨리 보기 위해, 인간과 달리 눈이 얼굴의 측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 새는 평균 50킬로 미터의 속도로 비행하며 날기 위해서 두개골도 스펀지 구조이며, 뼈도 없다. 그래서 유리창 충돌이 발생하면 대부분 죽음에 이른다.

새친구 활동 직전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교차로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된 촉새. 사진=녹색연합 제공<br>
새친구 활동 직전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교차로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된 촉새. 사진=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2019년부터 ‘새친구 캠페인’을 시작했다. 유리의 투명성 혹은 반사성 때문에 죽어가는 새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가 유리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새가 생각하기에 ‘공간을 통과할 수 없다’고 느끼는 5cm×10cm 간격으로 창문에 점을 찍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녹색연합은 그동안 충남 서산, 태안, 경기 용인, 제주 등에서 10회 이상 도로 방음벽에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붙였다.

녹색연합은 10월 29일, 시민과 함께 충남 태안군 77번 국도 송남교차로 인근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 약 110면에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했다. 유리창 새가 충돌하는 문제를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서다. 이번 새친구 현장 활동에는 서울, 경기, 충남 등 각지에서 모인 시민 30여 명이 함께 했다. 또 교육과 현장 모니터링, 충돌 저감 스티커 부착 활동을 아우르는 캠페인을 실시했다.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교차로 방음벽에 새충돌 저감 스티커를 붙이는 참여자. 사진=녹색연합 제공.<br>
77번 국도 충남 태안 송남교차로 방음벽에 새충돌 저감 스티커를 붙이는 참여자. 사진=녹색연합 제공.

새친구 활동에 함께한 참여자 3명은 다음과 같이 참여 소감을 전했다.

활동가가 아침에 수거한 빳빳한 촉새 사체를 보여줬을 때, 얼마나 많은 새가 어이없이 죽어가는지 비로소 실감 났다. 하루만 빨리 왔더라면 이 새는 살았을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중략) 이 큰 세상에 점 하나 찍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을 쭉 해왔다. 그래도 한 마리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는 점이라면 조금은 의미가 있겠다. 정말 이 점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한 땀 한 땀 꾹꾹 눌러 붙였다.

-엄현경 씨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생 동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의 사고가 아닌 같이 살아갈 시선이 중요하다. 유리창이 있는 모든 곳에 죽음이 깔려있다. 작은 소형주택에서도, 아파트나 유리창이 많은 건물에서도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숲속에 들어가 있는 건물, 물에 떠 있는 유람선, 크루즈는 더 최악이다. 만일 부딪혀 살았더라도 이렇게 한번 부딪힌 새들은 오래 날아가지 못하여 결국 죽는다고 한다.

-이주은씨

원래 가기로 한 일정이 미뤄져서 29일에 갔는데 그사이에 충돌로 새가 죽어있었다. 미리 붙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이 저감조치가 죽음을 막는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저감조치가 된 제품으로 나왔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예산이 많이 들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존재가 목숨을 잃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동민씨

6월부터 시행된 개정 야생생물법에 따르면, 인공구조물에 부딪히거나 추락하여 죽는 생명이 없도록 공공기관이 관리하고 필요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다만 처벌 조항 등 강제성은 없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서울 시내 25개 구청을 대상으로 유리창 새 충돌 저감조치 관련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자치구가 저감조치를 시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향후 계획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구로구, 금천구, 노원구 단 3곳만이 저감조치를 시행했다. 종로구는 아직 세부 계획 수립 전이지만, 관련 법 개정 내용을 관계부서와 공유하며 향후 추진 계획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금천구는 서울시 계획이 확정되면 그에 따라 시행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서울시 기초자지단체 야생조류 충돌방지사업 시행여부 조사 응답 결과. 표=녹색연합 제공<br>
서울시 기초자지단체 야생조류 충돌방지사업 시행여부 조사 응답 결과. 표=녹색연합 제공

설문에 응답하지 않은 15곳(강남구, 강북구, 강서구, 관악구, 도봉구, 마포구, 서대문구, 서초구, 성동구, 성북구, 송파구, 양천구, 영등포구, 은평구, 중구)을 포함해, 대부분은 저감조치를 시행한 적 없으며, 앞으로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는 건축물 관련 규정에 조류 충돌 방지를 제도화하고, 가이드라인 발간하며 충돌 방지 제품 인증이 추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제도화와 충돌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부족하다.

정부와 지자체, 건설사는 건물 유리 벽과 도로의 투명방음벽으로 인한 조류의 죽음을 막기 위해, 투명 방음벽과 건물 유리벽에 조류 충돌 방지 조치 의무화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설치된 투명 유리벽에는 충돌방지 스티커를 부착하는 구체적인 노력도 민관의 협력을 통해서라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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