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구하는 ‘이끼’의 반전...지구환경 구원자

이상수 기자
  • 입력 2023.12.12 17:36
  • 수정 2023.12.13 00: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게티이미지<br>
ⓒ게티이미지

“너 이끼 아냐? 조용히 살어. 이끼처럼 바윙에 짝 붙어. 입 닥치고.” - 영화, ‘이끼’ 중 대사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스며들 듯 사는 거다. 천천히, 이끼처럼 들러붙어 사는 거다.” -만화 ‘이끼’ 중 대사

[이모작뉴스 이상수 기자] 영화 대사 속의 이끼는 수동적이고 기생적이다. 하지만 ‘짝 붙어서, 스며들 듯’, 대지의 ‘살아있는 피부’인 이끼가 만리장성을 침식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이끼는 건조한 지역의 토양을 정착시켜 먼지 발생을 줄여 준다. 지상의 물을 보관해 준다. 탄소를 저장해 공기정화의 역할도 한다. 인간보다 까마득히 먼저 땅 위로 올라온 이끼가 인간의 희망이 되고 있다.

12월 8일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살아있는 피부’의 정체는 이끼와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얇은 층의 바이오크러스트(biocrusts)였다. 이것이 중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을 비바람의 손상으로부터 보호해 온 것이다.

진시황에 시작해 명나라에 걸쳐 축조해 온 만리장성은 2,000여 년이나 되었다. 달에서 보이는 지구상 유일한 인공물인 만리장성이지만 현재는 많이 줄어든 규모다. 총 8851.8km에 이르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벽돌로 축조된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 볏짚과 다진 흙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총길이의 5.8%만 잘 보존되어 있다. 52.4%는 사라지거나 형태가 심하게 훼손되었다. 잘 보존된 곳은 바이오크러스트가 잘 형성된 곳과 일치했다.

&nbsp;ⓒ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중국농업대학의 토양학자 보 샤오(Bo Xiao) 와 그의 동료들은 만리장성 중 일정 구간의 구조물을 비교 연구했다. ‘살아있는 피부’로 덮인 곳이 맨땅에 비해 비어있는 공간이 적고 압축강도가 더 높았다. 이끼와 그 혼합물이 만리장성과 같은 인공 구조물의 안정화에 일등 공신인 것이다.

이 연구가 사실이라면 만리장성처럼 건조지역에 남아있는 유적지를 보전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다. 기후가 계속 더워지면 점점 얇은 이끼류만 남을 것이고 구조물 훼손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다.

이끼는 약 4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다. 물속에 살던 조류가 진화하여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육상식물 중 하나다. 풀과 나무가 등장하기 이전인 고생대 초에 등장했다. 이끼의 최대 장점은 뿌리가 없어 수분만 유지된다면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br>
ⓒ게티이미지

이끼의 물 저장 능력은 대단하다. 이끼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이끼 무게의 5배에서 많게는 25배까지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이끼의 물 저장능력은 홍수와 가뭄에 도움을 주고 토양 침식과 유실을 방지해 준다.

이끼의 토양 생태계 보존 역할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이끼가 있는 토양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유기물 분해율이 높았다. 토양 재생 역할도 뛰어나 1980년 미국 세인트헬렌스산이 폭발했을 때 가장 먼저 자라난 것이 이끼였다.

무엇보다 이끼가 지구에 주는 가장 좋은 역할은 공기정화이다. 가로 4미터, 세로 3미터의 면적이면 1년에 240톤의 이산화탄소를 정화할 수 있다. 이는 나무 275그루가 하는 역할과 같다. 뉴사우스웨일스대학 (The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의 연구팀에 의하면 이끼가 자라는 땅은 맨땅보다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64.3억 톤의 탄소를 저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간이 토지를 사용하면서 배출시키는 연간 탄소 배출량의 6배에 해당한다.

한편, 이끼는 인간을 치료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이끼는 붕대를 만드는 재료와 지혈제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자상, 화상 등의 치료에 사용되었으며, 기관지염과 심혈관 질환, 그리고 이뇨제로도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육지 식물의 먼 조상이 육지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구하고 있다. 문제는 인간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탄소배출로 그들의 도움을 막아서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지구에 스며들 듯 살아야 하는 존재는 이끼가 아니라 인간이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