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6]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9_인류를 선의지로 이끄는 불국(佛國)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6.21 18:45
  • 수정 2021.06.22 12: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류를 선의지로 이끄는 불국(佛國)

내 일생에 언제 또 와볼지 모르는, 바간 왕국,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구경 왔지요.
함께 오니 너무 좋네요

                                        - 바간 왕국에서

(바간왕국을 샅샅이 다니는 마차. 촬영 윤재훈)
(바간왕국을 샅샅이 다니는 마차. 촬영=윤재훈)

[이모작 뉴스 윤재훈기자] 벌판에는 황토빛으로 빛바랜 수많은 탑(전탑)이 서 있지만, 몇 개의 큰 사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적이 없다. 홀로 불타의 천 년 도량을 거닐며, 삼세(三世)의 의미를 되뇌어 본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녘으로 간다.

인적이 없는 호젓한 사원을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다가와 선셋(sunset, 일몰)이 멋진 사원이 있다고 호객을 한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어디로 가려는지 마차를 모는 사람들이 급하게 달려 간다. 

마차들이 모여있는 옆에는 막 삶아 나왔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옥수수를 파는 아낙이 있다. 큰 것 3개에 1000짯이라고 한다. 남국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자란 거라 그런지, 참 맛있다.

탑들이 워낙 많다. 과연 천 불 천 탑의 나라답다. 몇 개의 탑에 들어가 보니 대부분 엇비슷하다. 수많은 권력자와 부유한 사람들이 개인적인 복덕을 위해 쌓았을 탑들, 그런 염원들이 사바에 널리 퍼져, 두고두고 인류를 장엄한 불국토로 이끈다.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세계는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지만, 또한 인류를 선의지로 이끈다.

(마치 원숭이처럼 순식간에 기어오르는 아이들. 촬영 윤재훈)
(마치 원숭이처럼 순식간에 기어오르는 아이들. 촬영=윤재훈)

9시가 넘어도 마치 백야처럼 주위가 환하다. 틸로민로 사원 앞에는 몇 대의 1톤 트럭이 서 있는데, 하나 같이 긴 장의자가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노점에서 뭔가를 사거나, 모여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먹는다.

어른들이 가자고 하는지, 아이들이 마치 원숭이 떼처럼 쇠창살을 잡고 차 지붕으로 순식간에 기어오른다. 무더운 날씨 속에 낮은 지붕의 트럭 짐칸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 있고, 지붕에는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다. 만달레이에서 바간 왕국까지 9시간이 넘은 시간 동안, 불교 유적 구경을 왔단다. 가만히 세워보니 30여 명이나 된다. 하나 같이 웃는 얼굴에 행복이 어린다.

내 일생에 언제 또 해볼지 모르는데,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구경 왔지요.
함께 오니 너무 좋네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편안하다. 촬영 윤재훈)
(아이들도 어른들도 편안하다. 촬영=윤재훈)

옆에 트럭에는 35명이 넘는다. 사원의 담에는 동자승이 앉아 있는데, 동네 아이들인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붉은 가사를 입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이, 영락없는 개구쟁이다.

(마치 투구를 쓴 건장한 로마 병사 같다. 촬영 윤재훈)
(마치 투구를 쓴 건장한 로마 병사 같다. 촬영=윤재훈)

‘탓빈뉴 파야(That Bin Nyu Phaya)’는 ‘전지전능한 부처’라는 뜻으로, ‘탓빈뉴탄양’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1144년에 건립되었으며 몬족의 영향을 받았다. 고도팔린과 마찬가지로 아래층과 윗층은 높이가 같고, 2층 위로 탑이 올라가 있다. 각 층의 테라스는 하나씩 줄어드는 모습인데, 모서리에 작고 뾰족한 첨탑들이 세워져 있다.

바간에서 가장 높은 파고다로 그 높이가 무려 61m에 이르니, 어디에서나 잘 보인다.  20층이 넘는 셈이다. 이곳에 오르면 바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1994년 이후로 탑을 보호해야 하므로 1층만 입장이 가능하다.

아만다사원 건립자인 짠지타(Kyanzitta) 왕의 손자인 ‘알라웅시투(Alaungsithu) 왕’ 때 세워졌다. 건축과정에서 매번 일만 번째 돌을 빼내어 파고다 북동쪽에 작은 파고다 만들고, 이것을 ‘텔리 파고다’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 파고다의 벽돌 수를 세어보면 탓빈뉴 파야의 전체 벽돌 수를 알 수 있다.

(퇴락한 탑 사이를 누비는 미얀마 여행자들, 촬영 윤재훈)
(퇴락한 탑 사이를 누비는 미얀마인 여행자들. 촬영=윤재훈)

대부분의 파고다는 안으로 들어서면 좁고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거나 어두운데, 탓빈뉴 파야는 비교적 넓다. 1, 2층에는 승려들이 거주하고, 3층에는 불교 상징물이나 유물들을 보관하며, 그 시절에도 4층은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또한 꼭대기인 첨탑(尖塔) 안에는 성물이 있다고 한다.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미로 같다고 하며, 2층에 있는 불상이 TV 화면 속에 나오는 걸 보면, 아마도 본존인 모양이다. 여행자는 올라갈 수가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

웅장한 외관에 비해 내부는 침략자인 일본군들이 다 도굴을 해가서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웅장한 위용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입구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옛 모습과 복구장면들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흘러가고 흘러오고 천 년 영화가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덧없기만 하다. 남서쪽에는 큰 청동으로 만든 종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받침대였던 돌만 홀로 외롭다.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돌아가는 길> 문정희

(뙈약볕 아래 손님이 없어도 늘 웃는 표정이다. 촬영 윤재훈)
(뙈약볕 아래 손님이 없어도 늘 웃는 표정이다. 촬영=윤재훈)

11세기에 건립된 ‘쉐구지 파야(Shwegugyi Phaya)’는 작은 아난다 파고다로 알려진 아름다운 사원이다. 탓빈뉴 파야처럼 ‘알라웅시투(Alaungsithu) 왕’과 관련이 있다. 왕은 불교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 듯하다.

‘Alaungsithu‘는 내세의 부처’라는 뜻은 가졌는데, 왕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아들이 아버지가 병들자 왕위가 탐이나 이곳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잘못을 빌기 위해 세운 사원이 담마양지 파고다이다. 인간의 근본을 뒤돌아보게 하는 패륜의 인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은 뒤 묻힐 곳으로 선택한 곳이었지만, 그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그 위에 불탑으로 세워졌다니, 진정 한 인간이 자신의 생에서 가장 중심에 세워 두여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입구에는 티크나무로 된 문이 있으며 위에는 새의 모양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주위에 무수한 작은 탑들이 있어, 더욱 불심 속으로 젖어든다. 사원의 중앙에는 수미산 형상이 솟아있으며, 인근 동남아 국가들이나 인도, 네팔 등을 여행할 때 흔히 보았던 모습들이다. 아무래도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기념품 파는 아낙들이 자꾸 옆에 와 설명을 해주고, 물건을 팔려고 하는데 참 난감하다.

(정면에 문양들이 화려하다. 촬영=윤재훈)

바간 왕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도팔린 파야>는 후기 파고다 중에 가장 뛰어난 사원으로, ‘경의를 표하는 단’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후세인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전설이, 이라와디 강가의 바람 따라 전해온다.

1203년 ‘나라파티시투 왕(1173~1210)’이 루비를 발견한 곳에 술라마니 파토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왕이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일을 시키자, 당시 존경받던 ‘핀타구’라는 승려가 나서, ”왕이시여! 당신이 지금 하시는 행위는 공덕을 쌓은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짓입니다“ 라고 말하며, 앞으로는 왕의 보시를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왕은 ”존경하는 분이여! 내 보시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내 백성이 주는 보시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 왕국을 떠날 수밖에 없군요“하고 말한다.

화가 난 스님은 실론(스리랑카)으로 가버리고, 왕은 바로 병이 나 잘못을 뉘우친다. 그리고 여러 차례 스님을 초청하고, 마침내 돌아오자 직접 마중을 나가 영접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 후 신기하게 병은 낫자 1174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211년 그의 아들 틸로민로(나다웅미아) 왕 때 완성된다.

(고도팔린 파야 본존불. 촬영=윤재훈)

고도팔린 파야는 높이 55m로 탓빈뉴 사원에 이어 바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파고다이다. 입구 양쪽에는 사자상이 사원을 지키고 있고 뒤쪽으로는 미얀마의 젖줄 이라와디 강이 흐른다. 사원 내에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각각 다른 금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1975년 대지진 때 크게 훼손이 됐으나 1980년에 대부분 보수되었다.

똑같은 왕이 지어서인지 사원은 술라마니 사원과 거의 비슷하며, 외벽과 사방이 문은 18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후 세척과 보수 공사로 인해 스투코 장식들은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있다. 안에는 틸로민로 파토처럼 밝은 아치형의 통로가 있고, 천장에는 하나의 커다란 원 안에 다섯 개의 작은 원이 십자 모양으로 들어간 문양들이, 반복적으로 장식되어 있다.

높이가 같은 4각형 건물을 2층으로 쌓은 다음, 그 위에 탑을 올렸다. 외부에서 위로 올라가면 테라스를 통해 네 면을 모두 걸어서 둘러볼 수 있으며, 멀리 탓빈뉴가 보인다. 근처에는 바간 고고학 박물관도 있으며, 사원 앞에는 열대 과일 장수들이 몰려있고, 뒤쪽으로는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들만 한가롭다.

(옛 영화가 아스라하다. 촬영=윤재훈)

스러진 왕국, 바간을 한 바퀴 빙 돌아 어제처럼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 새새끼처럼 되돌아간다. 사방은 이미 어둑해져 무작정 '냥우' 도심 쪽으로 달린다. 멀리 `화려하게 금색으로 불을 켜놓은, 그러나 수백 년 전 이미 망해버린 왕궁의 불빛만 휘황하게 빛난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