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쟁기념관까지, 용산을 걷다

이순자 여행작가
  • 입력 2023.02.21 15:26
  • 수정 2023.02.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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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는 '노원50+ 여행작가교실'을 수료한, 시니어 여행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한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사람을 못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 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 사랑은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 도네.

- ‘파도’, 배호

박물관을 찾아서. 촬영=윤재훈 기자

[이순자 여행작가] 올해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서울 역사여행이 기다려졌다. 며칠 전부터 오늘 날씨를 확인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며칠간 내려갔던 기온이 다시 오르며, 미세먼지도 사라진 쾌청한 날씨라고 예보를 한다. 20여 분 빠르게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반장님과 여행 동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잠시 후에 있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동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첫째 시간에 교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였기에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은 여행이 가져오는 열린 마음과 가벼운 흥분의 에너지가 작용하여,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 역사여행을 이끌어주실 윤재훈 선생님의 오늘 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 후, 선생님의 뒤를 따라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촬영=이순자
국립한글박물관 전경.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드디어 첫 견학지인 <국립한글박물관>에 도착하니 건물 전경 계단에 ‘고마워 한글’이라는 단어와 함께 여러 색깔의 닿소리 모양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14년 한글날인 10월 9일에 개관하였다. 이곳은 한글의 문화적 우수성과 소중한 자료의 관리를 통해 한글을 보존하고 알리는 일을 한다.

전시실 입구 바닥에 떠오르는 한글 창제의 이유.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니 입구 바닥에 나타나는 화면에 닿소리 모양과 함께 한글 창제의 이유가 떠오른다. 귀한 내용이 바닥에 펼쳐져 차마 밟기가 어렵고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화면을 벽으로 옮기거나 우리가 마음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은 비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창제 당시 만들어진 스물여덟 글자. 촬영=이순자
창제 당시 만들어진 스물여덟 글자.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전시 내용은, 세종(世宗, 1397~1450) 시대에도 우리말은 중국말과 많이 달랐으나, 우리 글자가 없었기에 중국 글자인 한자(漢子)를 빌려 쓰고 있었다. 이에 세종은 글자를 몰라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불편함과 억울함을 당하는 백성들을 위해 한글 창제의 뜻을 펼치고 완성하였다. 처음 스물여덟 글자로 시작하여 잘 쓰이지 않게 된 네 글자는 사라지고 스물네 글자가 남아있다. 이러한 한글 창제의 과정과 내용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글로 쓴 교과서와 소설책과 편지, 그리고 시조들은 학창시절에 모두 배워 알고 있는 내용 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곳을 돌아보며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한글의 고마움이 더 커지는 시간이었다.

합스부르크 600년 전을 관람하기 위해 늘어선 줄. 촬영=이순자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전을 관람하기 위해 늘어선 줄.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두 번째 견학 장소는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이곳은 중앙을 중심으로 유료관과 무료관으로 나뉘어있다. 유료 관에서는 합스부르크 600년 전이 진행 중이며 사진으로 보이는 길게 선 줄이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사유의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우리는 무료 전시장을 살펴보기로 하였는데, 나는 지난달 합스부르크 전에 왔다가 다른 전시물에 대한 관람을 마쳤다. 그래서 오늘은 사유의 방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지난번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온전한 사유의 느낌을 경험할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었다.

사유의 방 입구에 쓰인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안내 글을 읽으며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어두운 조명과 깊은 심연의 소리에 불과 몇 걸음 사이에 차분함을 넘어 경건함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 길의 끝에서 방향을 바꾸어 사유의 방에 들어서니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차분하고 온화한 미소의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를 반기는 듯하다, 천천히 조용하게 걸음을 옮기어 가까이 다가가 그 미소로 보내는 에너지를 깊은 호흡으로 느껴보았다. 다행히 지난번처럼 관람객이 많지 않아 차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기증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소중한 기증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홍근 실은 한국의 토기, 기와, 금속공예, 도자기, 서화, 불교조각, 역사자료 등 4,941점이 전시되어 있다. 김종학 실에는 주로 조선 시대 목칠공예품으로 여성의 생활공간에서 사용되는 용품들과 나무인형 등 300여 점의 의례용품이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 유강열 실에는 판화 작품 650여 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여성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다듬잇돌, 인두, 다리미, 홍두깨 등 전통 살림 용품 631점을 기증한 박영숙 실의 기증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을 기증한 사람들의 정신을 본받는 것도 중요한 나라 사랑의 방법이라 여겨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견학을 마치며 시간이 너무 부족함을 느꼈다. 이곳의 전시품들을 모두 살펴보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용산도시기억전시관전경. 촬영=이순자 옛집, 국수. 촬영=이순자
용산도시기억전시관 전경.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근처에 자리한 <용산도시기억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전시관의 사정으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기에 점심시간이 되어 <옛집, 할머니 국숫집>에서 국수와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옛집, 국수. 촬영=이순자
옛집, 국수.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옛집 할머니는 가난한 청년에게 국수를 더 먹여주고, 국숫값이 없어 도망치는 청년의 등 뒤에서 “뛰지 말어, 그러다 넘어지면 다쳐, 천천히 걸어가, 배고프면 다시 오시게나” 하고 외쳤다. 그 소리에 주저앉아 울던 청년은 나중에 성공하여 할머니께 은혜를 갚으며 유명해진 국숫집이라고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준 것은 물 위에 새기고 받은 은혜는 바위 위에 새겨라.’

라는 말이 오늘 따라 유난히 등짝을 서늘하게 한다. 참으로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실천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국숫집이다. 담백하고 진한 국물맛이 할머니와 청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점심 식사 후, 삼각지 로터리로 이동하여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와 1948년 삼각지 일대의 전경에 대한 사진을 바라보며 회상에 젖었다. 삼각지라는 지명은 한강, 서울역, 이태원으로 나뉘는 세 갈래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노래 가사가 유난히도 절망적인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 배호는 단명하여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0시의 이별’, ‘파도’ 등을 윤재훈 선생님의 선창으로 따라서 합창하였다.

내온불이 쓸쓸하게 꺼져가는 삼거리
이별 앞에 너와 나는
한없이 울었다.
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에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밤안개가 자욱한 길 깊어가는 이 한밤
너와 나에 주고받는
인사는 슬펐다.
울기가 안타까운 잊어야할 아쉬움
원점으로 돌아가는 영시처럼
사랑아 안녕

- '0시의 이별', 배호

옛 골목길.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선생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큰길보다는 골목길을 택하였다. 시니어의 정서에 친근한 골목길, 해가 넘어갈 때까지 고샅길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길 하나 사이에 수십 년의 세월을 느끼며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골목에 취하여 다음 견학지인 전쟁기념관으로 향하였다.

전쟁기념관 전경. 촬영=이순자 전쟁기념관 앞마당 바닥. 촬영=이순자
전쟁기념관 전경.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는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전쟁기념관>은 옥외전시와 옥내전시로 구분되어 있다. 옥외 전시장은 바닥에 참전국을 새긴 돔 형식의 전시장, 남과 북으로 갈라서서 서로 총을 겨눠야만 하는 형제의 애닲음을 표현한 형제의 상, 전쟁에 참여한 각계각층을 형상화한 38인의 호국 군상, 생명 나무와 청동검을 표현한 6, 25 탑 등이 있다.

옥내전시관 앞마당에는 유엔 창설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6.25전쟁에 참전한 22개 국가에 감사하는 기념비를 설치하였다. 22개의 국기가 맑고 청명한 하늘에서 자유롭고 씩씩하게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 든든하고 감사하였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지원했던 나라는 병력지원(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트루키에,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16개국과 의료지원(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독일) 6개국으로 모두 22개의 국가이다.

옥내전시관에는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호국선열을 위한 호국 추모실,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인 면을 기록한 전쟁 역사실, 6, 25전쟁의 배경과 군사작전, 유엔 참전의 영향 등을 기록한 6, 25전쟁 실외에 해외 파병 실, 국군 발전실, 대형유물전시실 등이 있다. 옥내전시물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앞마당 바닥에 새겨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기억하라
IF YOU WANT PEACE, REMEMBER THE WAR

라는 문구를 바라보며 평화를 위해서는 나를 지켜야 할 힘을 길러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전쟁기념관 앞마당 바닥. 촬영=이순자 여행작가

대한민국은 많은 국가의 도움으로 자유를 되찾았고, 한동안 해외 원조를 받으며 자립에 노력하였다. 이처럼 성장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단 한 나라라고 세계가 인정하는 만큼, 미약한 개인일지라도 국가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어려움에 처한 이웃 나라를 도우려는 마음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여행 글쓰기에 처음으로 참여한 오늘,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 감사함을 느꼈다. 또 한 소중한 문화유산을 창작하고 보유해 온 관계자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내와 해외 장병들에게 감사함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날씨 또한 맑고 청명하며 기온도 적절하여 걷기에 참 좋았다. 이 수업을 이끌어주신 윤재훈 선생님과 함께 참여한 동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함께 했기에 가능한 시간 들이었다. 다음 시간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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