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3] 하롱베이,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8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3.24 14:30
  • 수정 2023.07.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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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딱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지천명을 넘어 달려온 길
잠시 한숨 돌리고 뒤돌아보게

나에게서 떠나간 사람
내가 떠나온 사람
모두 접어두고
유령처럼 딱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 '하롱(下龍)베이에서' 중에서. 윤재훈

하롱베이, 집 앞에 쌓아놓은 마른 나뭇가지들.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집 앞에 쌓아놓은 마른 나뭇가지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깟바 국립공원(葛婆國立公園)은 하롱베이의 깟바섬에 위치하며, 베트남 북부의 생물권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세계유산이다.

멀리 깟바 국립공원이 나온다. 오토바이 주차료 5,000동을 포함해서 입장료가 2만 동이다. 시청각실이라고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니 운영이 안되고 있는지, 화장실도 관리가 안 되어 있어 엉망이다. 국립공원이라고 하면서 입장료까지 받고 있는데, 이렇게 관리가 안 되고 있을까, 약간 의아해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베트남 국립공원의 현실인가 보다. 도심에서는 왕복 5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훨씬 더 걸리는 것 같다. 

입구 양쪽에는 몇 채의 집들이 있고, 집 앞에 자그마한 탁자를 내놓고, 음료수나 맥주 캔 몇 개씩을 놓고 판다. 집 앞에는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두었는데, 겨울도 없는 이 나라에서 무슨 용도일까, 궁금하다. 12월이 오면 산간지방의 날씨가 약간 쌀쌀해지는데, 그때 쓰려고 저장해두는 것일까?

깟바 국립공원 첩첩 산중, 카르스트 지형. 촬영=윤재훈 기자
깟바 국립공원 첩첩 산중, 카르스트 지형. 촬영=윤재훈 기자

새들이 맑은소리로 운다. 기분이 청아해진다. 새들의 입에서는 저렇듯 고운 소리가 나는데, 사람들의 입에서는 왜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새들은 기껏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벌레들 정도만 먹고 사는데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먹는 잡식성의 인간 세상은 전쟁과 폭력만 난무하고 있으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산속에 전망대가 있다고 하여 올라간다. 쉬엄쉬엄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여기저기 페트병들이 버려져 있다. 인간의 발자국이 난 데는 반드시 쓰레기가 쌓이니, '쓰레기을 양산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환경에 대한 인식은 비슷한 것 같다. 힘들게 이 산중에 올라와서 목마른 몸속에 달디달게 물을 마셨을 텐데, 왜 저렇게 버렸놓고 갔을까, 그럴 생각이라면 마시지도 말아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바다도 산도 인간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깊은 홧병에 걸려 있다. 환경은 이미 인간의 몸처럼 암에 걸려 4기가 넘어가고 있다지만, 세계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어느 나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여기에 핵폐기물까지 바다에 버린다고 하는 파렴치한 나라까지 생겨나고 있으니 끔찍한 일이다. 이제 생선마저 먹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된다면 인간도 더 이상 이 지구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어떡하나? 21세기 이런 몰지각한 선조들이 이 지상에 존재해서, 이대로 간다면 과학자들은 22세기에는 이 지구에 인간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한다. ‘어쩔거나, 이 지구의 운명을’

하롱베이, 굴풋한 저녁 시간.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굴풋한 저녁 시간. 촬영=윤재훈 기자

사철 더운 나라이다 보니 어느 산이나 밀림이다. 나무뿌리만 해도 우리의 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대체 어느 나무에서 흘러나오는지, 근원도 알지 못할 뿌리들이 사내의 억센 근육처럼 불끈불끈 땅 밖으로 나와 구렁이처럼 기어간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족히 5미터는 넘겠다.

멀리 철망이 보인다. 그 높이가 상당하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지, 녹이 심하게 슬었다. 올라가는데 첨탑이 위태롭고 받침대도 마음이 안 놓인다. 약간 섬찟해지기까지 한다. 꼭대기에서 보니 도대체 섬 안에 양파껍질처럼 이렇게 첩첩산중이 있을까, 빙 둘러서 산들이 계속 포개져 있다. 지리산이 생각이 난다. 꼭대기에 양철을 씌워놓은 지붕은 다 날아가고, 나무 바닥도 두 장이나 빠져 밑이 훤히 보인다. 섬뜩하다. 바람이 불면 첨탑이 약간 움직이는 듯도 하다.

하롱베이의 저녁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의 저녁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말소리가 들려 내려다보니, 젊은 서양인 세 명이 앉아있다.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하더니 위험해 보였는지 결국 올라오지 않고 그냥 내려간다. 산봉우리 위로 둥두렷이 걸려있던 해는 구름속으로. 잠시 들어가는가 싶더니 빨갛게 노을이 내리기 시작한다. 산의 저녁은 정말 빨리 찾아오는 듯하다. 저 산들 뒤로는 하롱바다가 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노을은 여우와 같다
한 번 홀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
달콤한 고행이 될 수도 있다
잘못하면 밤길을 더듬어
산을 내려와야 할 수도 있다
그 산에 가고 싶다

- ‘노을에 빠지다'. 윤재훈

그 바다로 떨어지는 노을, 고국에서 처제 친구들과 밤에 산에서 내려오다가 너무 어두워 마지막에는 생리대까지 태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해도 겨울 산행에서 뒷산 정도는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산은 달빛이 하도 밝아 기어가는 개미까지 다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국의 산에서 밤길 산행은 아무래도 두렵다.

누군가 만들어 둔 산행 지팡이들. 촬영=윤재훈 기자
누군가 만들어 둔 산행 지팡이들. 촬영=윤재훈 기자

사람들이 가지런히 지팡이들을 두고 갔다. 누가 만들어 두었을까? 산행하고 다시 그 자리에 가지런히 놓고 간 그들의 마음이 이쁘다. 내가 도움받았던 지팡이를 누군가 다시 집고 올라가기를 빌면서 말이다.

“산에 오면 사람들이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다.”

공원을 나가는 길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연약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양쪽에 북청물장수처럼 물통을 두 개나 매고 채소밭에 물을 준다. 가녀린 어깨에 나무 막대기를 맨 모습이 애처롭다. 고샅길로 나오는 그녀를 보고 마을 어른이 배시시 웃는다. 그녀도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시간, 하꼬방에서는 마을 남자들이 몇몇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고, 굴풋한 저녁 시간 어느 집에서는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따스운 저녁 밥상을 차리고 있다.

하롱베이 귀향하는 배들.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귀향하는 배들. 촬영=윤재훈 기자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한참을 달리니 바다가 보인다. 고향 냄새가 난다. 바다만 보면 까닭 모를 외로움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나 보다. 하염없이 바다를 내려다보니 시 한 편이 둥 두렷이 떠오른다.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딱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지천명을 넘어 달려온 길
잠시 한숨 돌리고 뒤돌아보게


삶의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은 것 같은데,
굴풋한 저녁 시간
밥상을 차려놓고 가족들도 기다릴 텐데


나에게서 떠나간 사람
내가 떠나온 사람
모두 접어두고
유령처럼 딱 한 달만 이 섬에서 살자


세상 사람이 나를 잊고
나도 잠깐 세상을 잊고
은물결 내리는 저 바다만
눈 시리게 바라보자


막막하게 자맥질하는 해를 바라보면서
너무 애잔해 할 것도
허전해할 것도 없는
이 이국의 저녁놀
이 섬에서 딱 한 달만 견디며 살자.

- 하룡(下龍) 베이에서

하롱베이 시골 마을 저녁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시골 마을 저녁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집 앞에 포켓볼 당구대들이 상당히 보이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즐기고 있다. 집 앞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 있고 맥주를 마시고 있다. 얼마 전까지 중국을 여행하면서 두 손으로 술잔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두 손을 모두고 받는 모습이 우리나라 어디쯤에서 본 듯 정겹다. 나도 그 옆에 앉아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맥주를 두어 병 샀다.

“씸바이”, 건배, “처리엠” 마셔라or 먹어라, 그러다 내가 먼 산이라도 볼라치면, “쩜머 짬” 잔이 비었다고 다그친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순박할까, 시골 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람도 이렇게 천진해질 수 있을까? 그 옛날 우리네 고향마을도 그랬었다. 그래서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온 천지에 팡, 팡, 꽃들이 터지는 봄날, 어린 시절의 동무들이 못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평생 이 도시 속에서 각박하게 살다가도 옛 고향 친구를 만나면, 말 한마디도 다시 순박해지고 천진불(天眞佛)이 되는지 모르겠다. 주저 없이 까까머리 시절로 돌아가 서로의 별명을 부르며, 천진난만하게 세월만 보낸 아이들이 된다. 망치, 짹짹이, 염소…, 어떻게 순명한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그렇게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서, 불렀을까, 아무런 사심이 없던 어린 시절, 왜 점점 자라나면서 인간은 이렇게나 생명이 탁해지는 것일까?

“그 시절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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