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6] 하롱베이 천 년 풍경 1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4.20 17:40
  • 수정 2023.04.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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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이, 세계 여행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비록 빈한하지만,
굳이 다른 것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
하롱베이에서

동굴 속 모습. 촬영=윤재훈 기자
동굴 속 모습.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에는 동굴들이 참 많다. 그 옛날 화산섬이어서 그럴까, 여기저기 숲속에 숨겨진 동굴들이 있어 현지인이 아니면 알기가 힘들다. 사람들을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이번에는 동그랗게 알을 품은 형상의 바위들이 나타난다. 어떻게 해서 저런 모양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 도무지 신기하기만 하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은 오랜 침묵의 공간, 바람마저 멈추고 물소리 한 점 들리지 않은 채 묵상(默想)에 잠겨 수억 년 정지해 있었을 텐데, 바라보면 볼수록 자연의 무한(無限) 앞에 숙연해진다.

여인의 망중한. 촬영=윤재훈 기자 기자
여인의 망중한. 촬영=윤재훈 기자 

패키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도무지 바쁘게 움직여서 자연의 ‘이면’을 보기가 힘들다. 눈앞에 보이는 것마저 시간에 쫓겨 눈도장 찍기에도 벅차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의 추억이 없어 글에도 물기가 묻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차표와 숙소를 내가 직접 예매하고, 가고 싶은 장소의 동선도 미리 만들다보면, 그곳의 장소 하나하나에 애정이 간다. 그리고 한 3일 정도 뙤약볕 아래 걸어 다니다 보면 거리가 낯이 익어지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현지인들도 생겨난다. 같은 음식을 먹고 눈빛을 나누다 보면 스스럼 없이 궁금한 점도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비로소 내가 그 나라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살가운 인정까지도 배어나온다. 여행의 향기가 한지에 배인 달빛처럼 은은하게 우러나온다.

실눈을 뜨고 은물결의 바다를 내려다보니 멸치만한 은피라미들이 무수히 물 밖으로 튄다.

하롱베이로 지는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로 지는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도심의 한가운데쯤이나 될까, 배가 출출하여 늦은 점심이나 먹을까 하고 할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맥주가 10,000동이고 다른 주류는 15,000동씩 한다. 반찬도 좋고 하여 맥주를 두 개나 먹으면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멸치 같은 물고기들이 물 위를 떼로 뛴다. 아스라하게 누군가를 환영하고 사라지는 듯도 하다.

천천히 거리를 걸어 호텔로 간다. 옥상으로 오르니 벌써 바다 위로 노을이 내린다. 관광도시답게 하롱시에는 ATM 기계가 넘쳐나더니, 갓바섬 안에도 24시간 ATM 불빛이 환하다. 카드만 넣으면 이국만리 먼 땅에서도 즉시 돈이 나오는 편리한 세상, 옛 시절 박지원 같은 학자는 괴나리봇짐 매고 열하를 건너 이국땅을 찾았을 텐데,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밀려온다. 항구의 분위기는 고국의 바다와 비슷하다.

“첩첩이 섬이 쌓여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니, 
세상의 파라다이스가 여기가, 아닌가?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천국이다. 
그것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마음 안에 천국과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하롱베이의 비경.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의 비경.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가 뜨고 있으니, 요즘은 그 옆 바다인 란하베이까지 뜨고 있어,  관광객들이 밀려 나온다.

저녁이 되자 해변이 요란해지더니 군인들이 나와 합창하고, 뒤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춤을 추는데, 꼭 옛날 서커스를 보는 느낌이다. 프로그램은 비교적 단조롭다.

움직이는 잡화점. 촬영=윤재훈 기자
움직이는 잡화점. 촬영=윤재훈 기자

가끔 이상한 멜이 온다. 영어를 먼저 써서 한글 변환기로 돌린 것 같은데, 낯설고 서투른 어투 때문에 금방 웃음이 나온다. 무슨 까닭으로 이런 편지를 보내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쓰는 콩글리시도 영미인들이 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쓰는 우리 말도 또한 그렇다. 모른다고 해서 무슨 큰 허물이 되겠는가? 주눅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편지에 답장해 본 적은 없지만, 혹여나 여기에 응답하면 된통 당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당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끔은 파견 나온 미군 장교라고 하면서 그럴듯한 사진까지 온다.

노상 식당. 촬영=윤재훈 기자
노상 식당.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갓빠섬)에서는 하노이행 버스가 오전 5번, 오후 4번이 있다. 근처 다른 도시로 가는 교통도 편리해서 제1의 관광지임을 느낄 수가 있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까지도 넘어갈 수 있는데, 버스 티켓은 600,000동(약 3만 원) 정도이다. 국경을 넘어가는데, 비교적 저렴하다는 느낌이 든다.

방세는 이틀 동안 쉬고 8만 동을 계산했다. 오토바이 moto bike는 170,000동 계산하고 이틀 동안 이용했다. 미리 흥정하고 탔으면 더 저렴하게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전에 현금이 없어서 그냥 탔으니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여권을 맡겨놓았으니 확실하게 흥정하고 타야 한다. 340.000동에 내고 오늘은 4시 30분에 끝났으니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흥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울에 있는 모교에서 겸임 초빙 교수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잠깐 생각해 보다가, “대부분 내정이 되어 있다고 하던데”, 괜한 들러리만 설 것 같아 못 본 걸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이, 세계 여행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비록 빈한하지만,
굳이 다른 것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는 받는 것이 아니라,
널빤지 한 장이 파도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듯,
그렇게 유쾌하게 타고 넘는 것이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무슨 근심이라도 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 6시 차로 출발하는데, 외국인은 나 혼자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행자에게 호의적이면, 청년들도 살갑게 대해준다.

놀랍게도 버스 안에는 차장이 있다. 그 옛날 우리네 버스 안에는 아가씨 차장들이 있었다. 스무 살만 되면 생활전선으로 쫓겨 나와 가난한 집안을 돕거나 동생들 학비를 대주며 가열차게 살았다. “오라이” 동전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버스 옆면을 탁, 탁, 치면 기사님은 그 소리에 맞춰 출발했다. 만원 버스 안에 가녀린 차장은 요행히 두 손으로 버티며 버스 문 밖까지 밀려 나오고, 버스는 그대로 달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조국에서는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배가 고팠다. 우리의 착한 누이들은 지금은 60대가 넘어 모두 추억 속에서 주름진 얼굴로 웃는다.

그렇게 화석처럼 잠자고 있던 옛 풍경들이 마치 꿈속에서처럼 외국으로 나오면 볼 수가 있다. 마치 영화 속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하다. 특히나 동남아나 인도, 네팔, 중국, 같은 곳을 가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웠던 옛 모습들이 어디선가 수시로 출연한다. 그런데 차장은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지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버스는 갓빠섬의 바닷가를 따라 무심하게 달린다.

섬이라 그럴까, 아침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 있다. 오토바이 타고 급히 가는 아가씨와 아줌마들이 출근이라도 하는지 안개 속으로 바쁘게들 사라진다. 누나가 울긋불긋한 가방을 멘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학교에 간다. 그 옛날 우리네 시골처럼, 젊은이들이 많다. 동남아에서 젊은 국가에 속하는 베트남, 국민의 평균 연령이 30대 후반이라고 한다. 매년 경제도 성장하고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 어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침이면 사람들은 읍내에 나가기 위해 신작로에 서서 손을 들며, 우리네 옛날처럼 버스가 와서 흙먼지를 날리며 선다.

하이퐁을 향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하이퐁을 향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바닷속에서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신기하다. 그 위로 파란 예쁜 새가 해안가를 날아간다. 이제 <하이퐁>으로 갈 것이다. ‘껌강’이 도시의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도시, 우기의 나라답게 베트남의 국토 위에는 강들이 참 많다. 풍요로운 바다 위로 작은 고기들이 연신 튄다.

6시 10분에 출발한 버스는 약 40여 분을 달려 갓빠를 벗어날 수 있는 배가 정박하는 항구에 도착했다. 이어 스피드 보트라고 부르는 배를 20여 분 타고 가니, 갓 하이섬Cat Hai Island이라는 작은 섬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하이퐁으로 가는 중형버스를 타고 갓 하이라는 긴 다리를 건너면 하이퐁은 멀지 않다.

촬영=윤재훈 기자
촬영=윤재훈 기자

부두에는 컨테이너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기사들도 젊다. 오토바이를 타고 아침부터 부둣가로 밀려드는 엄청난 인파들, 나도 과연 이들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하고 자성이 밀려온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뭐니 뭐니 해도 부모 품 안에 있을 때가 최고다.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그곳은 험한 파도가 세차게 때리는 창랑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가야 할 곳이다.

하이퐁은 산업, 물류도시인 듯 활기차고 엄청난 물량을 소화하는 것 같다. 부산이나 인천, 광양항 같은 도시인지, 엄청난 양의 컨테이너가 쪽 쌓여 있고 그것을 싣고 갈 컨테이너 차들도 넘쳐난다. 그러니 도시의 오염도는 하노이 못지 않다.

언젠가 모임에서 베트남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밤에 이 도시를 잠깐 경유해 간 것 같다. 아마도 그때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약간 있었을 것이다. 일부는 맛사지샵을 갔고 가기 싫은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리다, 노상에 있는 간이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면 기다렸다.

다음날 태국에 도착한 일행들은 거의 환락가 여행 같았다. 첫 코스는 뱀탕집이었고, 관광지 두어 곳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이내 물건 파는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허기를 감추다. 촬영=윤재훈 기자
허기를 감추다. 촬영=윤재훈 기자

 

기사가 오토바이로 하노이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준다. 참 고맙다. 그의 덕분에 자투리 시간이 남았다. 부부가 길가에 앉아 쌀국수를 먹고 있다. 나도 출출하여 국수를 시키고 앞에 있던 부부와 어울려 좋아하는 야채를 실컷 먹었다. 이방인이 와도 사람들은 웃으면 호의적이다. 한 그릇에 2만 동인데,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자꾸 3만 동을 받으라고 아주머니를 부추긴다..

마침내 하노이 가는 버스가 움직인다. 차비는 6만 동인데, 직통non- stop으로 간다. 이렇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것을 올 때는 로컬버스를 타기 위해 손을 들고, 휴게소 들려 점심까지 먹어가며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인적도 드문 고개에서 세워주어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세계여행 중에 이런 경우는 참 많았다. 

하롱베이로 들어갈 때는 내가 잘 아는 것처럼 일본 아가씨까지 챙겼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시간과 돈을 훨씬 더 많이 들이며 왔다. 이렇게 빨리 도착한다니 그녀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녀도 아마 다시 돌아갈 때는 느끼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많은 코스가 남았는데, 어떨 때는 팩키지가 더 저렴할 수도 있겠다, 편견을 없애고 잘 비교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다시 호안끼엠 호수에 밤 8시쯤에 도착했다. 여전히 남국의 노란, 빨간 꽃들은 피어있고 밤이 되면 여느 때처럼 길가에는 작은 노점들이 순식간에 생겼다. 호숫가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앉아 커다란 대통 안에 든 물담배를 보조개가 생기도록 쪽, 쪽, 빠는데, 한 번만 빨아도 핑, 돌 것 같다. 아마도 저런 해로운 느낌 때문에 또 피게 되는 것일까? 인간은 나쁜 것에 쉽게 물든다. 순진무구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점점 나쁜 것에 물들어 가는 것처럼. 하여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본성이 마비되어 범죄들은 더욱 극악해지는 것일까?

“성선설과 성악설이, 바람개비 두 날개에 얹혀 도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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