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엔딩]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후 3년, 윤리적 의사결정 회색지대 여전히 존재

이지훈 기자
  • 입력 2023.06.29 14:24
  • 수정 2023.06.2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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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코호트 연구결과,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 체계화와 역할 확대 중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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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지훈 기자] 지난 2018년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 벌써 3년의 시간을 지났다. 시행 후 의료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염명의료결정법에는 윤리적 이슈가 필수불가결적으로 동반된다. 그래서 의료현장에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통해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의 결정 및 이행의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위원회는 연명의료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심의, 자문, 교육, 상담을 하며, 의료인과 환자가 합리적인 판단 및 결정을 돕는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대병원 비롯해 50여 곳의 상급의료기관에서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임재준‧유신혜 교수 공동 연구팀은 2018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3년간 서울대병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임상윤리 지원서비스에 의뢰된 사례 총 60건을 분석한 결과,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대해 법제를 일률적으로 국한시켜 적용하지 말고, 좀 더 확대된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27일 밝혔다.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60건의 사례에서 나타난 윤리적 이슈의 빈도 / 제공=서울대 병원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60건의 사례에서 나타난 윤리적 이슈의 빈도 / 제공=서울대 병원

연구팀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3년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발생한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총 60건 사례의 특성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윤리적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후향적 코호트 연구를 시행했다.

분석 결과, 인구학적 특성에서는 의뢰 환자 중 70대가 22.8%로 가장 많았고 1세 이하 영아는 17.5%로 나타났다. 전체 표본 중 60세 이상 고령 환자가 56.1%로 고령 환자의 의뢰율이 높았다. 사회경제적 수준에서는 저소득층이 47.4%, 의료급여 환자가 21.1%의 비율을 차지했다.

의뢰 당시 임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암성질환과 뇌혈관질환이 각각 2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호흡기질환(11.7%), 신경퇴행성질환(8.3%), 심장질환(8.3%)이 그 뒤를 이었다. 전체 사례의 80%는 중환자실에서 의뢰됐다.

한편 연명의료결정법 상에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서만 연명의료를 유보 혹은 중단하는 결정이 가능한데, 의뢰 환자의 66.7%가 임종과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타났다. 이는 다수의 사례에서 임종과정 판단 기준 모호 및 의학적 불확실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임을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의사결정 관련 특성에서는 의뢰 환자 90% 이상이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된 상태였으며, 그중에서도 26.7%의 환자들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혹은 연명의료계획서 등 문서나 구두로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환자 중 40%의 경우에만 본인의 선호도나 중요시하는 가치를 표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연명의료 결정에 있어 당사자의 선호와 가치가 핵심적인 요소로 반영되어야 하는 부분이 결여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추가적으로 총 60건 사례 중 가장 빈번히 나타난 윤리적 이슈의 빈도를 분석한 결과, ‘치료 및 돌봄의 목표(78.3%)’였으며, 의사결정(75%), 관계(41.7%), 생애말기(31.7%)가 그 뒤를 이었다.

연도별 의뢰 시점에서 발견된 주요 윤리적 문제 / 제공=서울대병원
연도별 의뢰 시점에서 발견된 주요 윤리적 문제 / 제공=서울대병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첫해인 2018년에는 ‘치료 거부’와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75%를 차지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이슈의 비중은 감소하고 △의사결정 능력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 △최선의 이익 등 다양하고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이 나타났다. 이는 임상 현장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해석하는 능력이 점차 향상되고 있으며 윤리적 문제 인식과 다양한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임재준 공공부원장(전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위원장)은 “현행법 체계에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심의 결과가 권고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적절한 대리의사결정자가 없는 무연고자 등에서 환자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서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위원들이 모여 고민한 결과를 반영할 수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의 체계화와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저자인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으나 아직도 임상 현장에는 임상적 불확실성이 높고 환자의 가치를 추정하기 어려우며, 다수의 사례에서 적절한 가족이 부재해 대리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윤리적 의사결정의 회색지대가 존재한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결정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JKMS(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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