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㉗]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10..산맥이란 무엇인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8.29 11:12
  • 수정 2023.08.3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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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더욱 파랗고 높고, 그윽하다
여름내 몰려왔던 폭염이 장마와 함께 물러나고 이제 막 살만한데,
오늘은 일본이 바다에 방사능 폐기물을 버리고 맞는, 첫날이다
그들은 지금 이 지구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스스로의 터전을 멸망시키고 말 것인가
그 하늘로 까마귀 떼가 날아간다
- ‘핵비가 내린다’, 윤재훈

산첩첩 물중중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산첩첩 물중중 지리산.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원래 우리에게는 "산맥이란 말은 없었다."고 한다. 구한말에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 1856-1935)가 1900년부터 1902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14개월 동안 한반도를 답사하였다. 그리고 1903년에 태백, 소백, 차령, 노령, 마식령 등 산맥 명칭과 분류를 명명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광물을 수탈하려고 지질 구조로 나눌 때 만든 개념이라고 한다.

“‘산경표(山經表)’는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인 신경준이 쓴 도표로 한반도 멧줄기의 발원지와 분포를 강물의 수계를 따져 가계도처럼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 특징이다. 이 땅의 산과 강을 ‘있는 그대로 그린 지도’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 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인식했다.

여기에 다시 가지처럼 뻗은 기맥을 표시하였고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 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 등을 원본대로 족보 기술식으로 정리하였다. 즉 백두대간은 등뼈를 이루는 산줄기이고, 정맥은 대간에서 갈비뼈처럼 갈라져 나온 각각의 산줄기를 일컫는 것이다.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우리나라 10대 강을 가르는 산줄기인데, 그것은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이다.”

칠선봉을 향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칠선봉을 향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에 데어워 온 햇반에서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다. 선비샘에 도착하자마자 산행 대장이 뜨거운 물을 끓이며 인스턴트 된장국을 넣은 모양이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도착하여 허기진 회원들에게 말없이, 음식을 만들어 주는 대장의 노고가 참으로 고맙다. 다행히 김치는 그런대로 넉넉하다. 서둘러 국물에 말아 허기를 숨긴다.

식사하고 나도 후미는 올 기색이 없다. 전화를 해보니 아직 오려면 먼 것 같다. 아무래도 너무 떨어져 먼저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산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저절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단체산행을 오면 모든 사람이 함께 움직였고 만약 뒷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올 때까지 망연히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산행을 통해 우정은 더욱 돈독해지고, 같이 큰 산을 한 번 갔다 온 사이라면 두고두고 서로 친근한 사이가 된다. 새삼 그 시절의 산행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리산 고사목,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고사목, 촬영=윤재훈 기자

칠선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대략 한 시간 반 정도는 가야 할 것 같다. 조망이 뛰어난 그곳에 가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의신계곡과 대성계곡의 원시수해(原始樹海)를 바라보면, 지금까지의 피로가 싹 사라질 것이다. 그곳에 서면 천왕봉도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보인다.

지리산 주목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했던가. 곳곳에 고사목들이 꼿꼿하게 서 있는데, 이제 그 수명을 다했는지 모두 잎사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를 막 돌자, 먼저 출발한 교장 선생님이 쓰러져 있다. 그 옆에서 산악대장이 간단한 처치를 하고 있는데, 다가가서 보니 바위에 피가 묻어있다. 배낭을 멘 채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코와 팔들을 바위에 부딪친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히 손이라도 짚었는지 상처가 크지는 않다. 대장이 코에다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붙여주고 있지만 여러 군데를 다쳤다.

산악대장이 출발한 후 보니 무릎과 팔목에도 약간 핏자국이 있어 빨간 약을 발라주었다. 허벅지도 상당히 넓게 부풀러 올라오는데, 그곳에는 마땅한 약이 없는지 바르지 않았다. 서둘러 배낭에서 멘소래담을 내어 마사지해 주려고 하니 스스로 한단다. 두어 번 마사지하고 나자, 그래도 많이 부드러워진 모양이다.

그는 오늘 밤은 세석에서 잔다고 하던 말이 기억나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마침 딸이 일본여행을 다녀오면서 사 온 작은 파스가 있어 저녁에 힘들면 바르라고, 서너 장과 밴드를 드렸다. 그리고 저녁에 힘들면 내일 일정은 포기하고 그냥 내려가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더 있고 싶었지만, 산에서는 앞의 일행들과 멀어지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할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오늘 밤 잘 곳은 장터목 산장인데 아마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 일행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았다.

지리산의 능선들이 하염없이 펼쳐지며 먼 하늘 끝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끝없는 산파(山波)들이 몰려오고 있다.

칠선봉. 촬영=윤재훈 기자<br>

칠선봉. 촬영=윤재훈 기자

드디어 칠선봉이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막 숨을 돌리며 쉬고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그새 쫓아왔다. 이렇게 만나서 대피소까지 같이 가게 되니 적이 안심되었다.

오후가 되어가니 점점 사람의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말소리가 줄어들고 하염없이 산길을 걷는다. 온 산을 둘러봐도 세상은 진한 초록이고 산 능선을 따라 파란 하늘이 가없다. 온 세상은 초록과 파랑 두 가지 색만 존재하는 것 같다.

지리산 마루금.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마루금. 촬영=윤재훈 기자

칠선봉에서 1,651m의 영신봉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꽤 가파른 돌무더기 길인데, 올라가다 보면 사람들이 꽤 힘들다고 한다. 두어 시간 걸어가니 영신봉을 지난다. 지리산이 능선들이 따라오면서 빚어놓은 지맥들에 의해 기암과 기봉(奇峯)들이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또한 풍경이 아름다워 영신대 아래는 기도처로 유명하다. 기도하는 단을 만든다고 암반과 자연들을 무자비하게 훼손시킨다. 그러다 보니 이 일대는 90년대만 해도 촛농과 타다남은 향, 제기나 생활 용구 등으로 지저분했다. 너무나 많은 무속인과 기도객들이 몰려들어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거기에 대성 계곡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빨래까지 하면서 수원을 오염시키고 있어, 많은 산악인의 근심거리였다.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게 지리산은 어느 길을 걸어도 아름답다. 영신봉을 돌아가면 세석고원까지는 또다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어서 빨리가 세석고원에 흐드러진 연분홍 철쭉을 보고 싶다.

&nbsp;'내가 이순신이다 제주본부' 관계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며 방사능 경고 표시가 그려진 욱일기를 바다 속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br>
 '내가 이순신이다 제주본부' 관계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를 외치며 방사능 경고 표시가 그려진 욱일기를 바다 속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어제는 일본이 바다에 핵 오염수를 버렸다. 유사 이래로 일본 제국주의 만행에 치가 떨린다. 섬나라인 그들은 공공연히 정한론(征韓論)을 내세워 이 땅을 노리고 유린하였다. 어디 우리뿐이었겠는가?

청일전쟁으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국토인 중국을 유린하고, 러일전쟁으로 지구상에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진 러시아도 당했다. 선전포고도 없이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시아를 유린하며 그 나라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무차별 살상하며, 부녀자들은 성 노리갯감으로 짓밟았다. 곳곳에 짐승 같은 마루타를 자행하며 인간을 실험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런 후안무치한 자들이 이제 또다시 세계인의 바다에 핵 오염수를 30년 동안이나 버린다고 한다.

가을 하늘이 더욱 파랗고 높고, 그윽하다
여름내 몰려왔던 폭염이 장마와 함께 물러나고 이제 막 살만한데,
오늘은 일본이 바다에 방사능 폐기물을 버리고 맞는, 첫날이다
그들은 지금 이 지구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스스로의 터전을 멸망시키고 말 것인가
그 하늘로 까마귀 떼가 날아간다

두 번째 태평양 전쟁을 맞는 기분이다
그때는 미국을 상대로 공격했지만
오늘은 세계를 향하여 공습경보도 없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어쩌면 일본은 우리에게 철천지(徹天之) 원수인지 모른다
광개토대왕 때는 파렴치한 왜구가 되어 이 나라의 해안가를 노략질 하더니
임진년의 원수가 되어 이 산천을 도륙(屠戮) 내고
부녀자들 겁탈을 일삼았다
19세기 말부터는 이 나라를 야금야금 쥐새끼처럼 갉아 먹더니
급기야 일방적으로 한일합방(韓日合邦)을 시키고
국권(國權)을 빼앗아 갔다
국치(國恥)의 비가 이 강산을 적셨다

어쩌면 일본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철천지 원수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람의 식탁에 핵폐기물을 끼얹을 수 있는가
온 인류가 이고 지고 살아가야 할 이 푸른 지구를, 도륙낼 수가 있는가
바닷물이 뜨겁게 흐르며 운다
일제(日帝)의 심장에서, 인류의 심장으로

가을하늘이 저리 높건만
오늘은 일본이 세계의 바다를 죽이는 첫날이다
가을바람은 이리 시원하게 부는데,
인류는 이 지상에 살아갈 수 있을까
심장이 없는 물고기가 나오고
허파가 없는 가축이 출생하고
한쪽 눈 없는 아기가 태어난다

동쪽에서 핵바람이 분다
방사능 폐기물 비가 내린다
핵우산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인류의 마당으로 핵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세계의 나뭇잎들이 일제히 조종(弔鐘)을 울린다

고개를 더욱 고추 드니
가을 하늘이 참 파랗다
현생 인류가 보는 마지막 하늘일지 모른다
- ‘핵비가 내린다’,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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