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㉘]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11..지리산에 깃드는 사람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8.31 10:47
  • 수정 2023.09.0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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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라는 게 있다. 이웃이 행복해야 한다.
지하철역,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온화한 기운이 전해오고 내가 혹시라도 어려움이 처했을 때,
옆 사람이 가장 먼저 도와줄 것이다.


내 이웃집이 행복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렵고 가족이 배고파할 때는
가장 먼저 우리 집 담을 넘어 흉기를 들고 들어올 수 있다.

지리산 주목.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주목.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지리산은 대한민국의 영산으로 무속인들이 즐겨 찾는 기도처가 많다. 그중에서도 영신대 아래가 유명하지만, 피아골 산장 뒤편도 상당히 많은 기도객으로 붐빈다. 특히나 서산대사가 도를 깨우쳤다고 하는 기도처가 있는데, 그 지형이 절묘하다. 바위로 된 그곳은 샘과 토굴까지 있어 풍수지리설로 보면 명당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렇듯 지리산은 명산이다 보니 도를 닦는다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고 일회용품을 무분별하게 쓰고, 계곡물에 세제까지 마구 쓰는 비자연적인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산에 깃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아다니며 복을 비는데, 그 마음에 어떤 영험이 깃들자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오직 자신의 복에만 두 손을 비비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과 세계의 평화로움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기복(祈福)신앙에만 매몰되어 있다.

지리산릉. 촬영=윤재훈  기자2008
지리산릉. 촬영=윤재훈  기자2008

‘나비 효과’라는 게 있다. 이웃이 행복해야 한다.
지하철역,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온화한 기운이 전해오고 내가 혹시라도 어려움이 처했을 때,
옆 사람이 가장 먼저 도와줄 것이다.


내 이웃집이 행복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렵고 가족이 배고파할 때는
가장 먼저 우리 집 담을 넘어 흉기를 들고 들어올 수 있다.


‘음덕(陰德)’이라는 게 있다.
예수님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그런 사람은 항상 마음이 평화롭고 모든 일이 잘된다.
어려울 때는 신기하게도 천 리 밖에서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생긴다.
그 덕은 3대에까지 간다.

“나는 훗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지리산중. 촬영=윤재훈 기자2008
지리산중. 촬영=윤재훈 기자2008

기복신앙과 같은 잘못된 믿음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꾼들이 국민의 마음을 사분오열(四分五裂)시킨다. 얼마나 안목이 없으면, 한 나라의 대선 후보가 손바닥에 왕(王)자까지 써가며 선거에 임할 수가 있을까. 한없이 상승하고 있던 우리의 국격(國格)에 요즘은 한국 국민이라는 게 망신스러울 때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요망한 무속인들이 출연할 때는, 국민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렀다.

그런 무속인들은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고, 지세나 경관이 좋은 절묘한 곳들을 잘도 찾아내어, 은밀히 기도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게 숨어있다.

교장 선생님의 산 이력이 보인다. 촬영=윤재훈 기자
교장 선생님의 산 이력이 보인다. 촬영=윤재훈 기자

저 아래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네 번째 대피소이다. 이제 교장 선생님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주 능선에서 50여m만 내려가면 된다. 여기서도 보이는데, 내려가는 그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 보인다.

나도 따라 내려가 약수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 10여 년도 훨씬 전에 들린 것 같으니 많이 변했으리라. 하지만 일행들이 이미 지나갔다. 내려갔다 오면 최소한 30분 이상은 걸릴 것이다. 노루목에서는 반야봉을 갔다가 다시 내려왔지만, 장거리 산행에서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길은 여간해서는 마음 내기가 쉽지 않다. 연분홍 철쭉 사이를 헤치고 나지막한 잔등을 오른다.

지리산의 대표 계곡인 한신계곡이나 백무동 계곡, 거림계곡들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주 능선의 중반부를 훨씬 지났다. 의신계곡이나 대성 계곡, 중산리 계곡, 칠선 계곡들도 그리 멀지 않아, 여기서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이 길고 숲속이 향기롭고 소리의 관현악이 깊어,

내려가는 내내 행복하다.”

세석평전 능선에는 태곳적부터 지리산 바람에 적응되어 온 키 작은 나무군락들이 펼쳐지고, 그 위로 연분홍 철쭉군락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서 산행의 피로를 풀어준다.

세석산장. 촬영=윤재훈 기자2008
세석산장. 촬영=윤재훈 기자2008

세석고원에서는 72년부터 매년 6월 첫째 주말에 ‘철쭉제’를 열었다. 진주산악회가 시작했다. 이 산상 축제는 전국 산악인들의 큰 잔치로 자리 잡았는데, 철쭉밭 훼손을 염려하여 83년부터 5년 동안 중단한 적이 있다. 그 기간에는 진주산악회만 세석고원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그동안 철쭉꽃밭은 많이 좋아졌다. 진주산악회는 89년 6월 3일부터 제18회 철쭉제를 5년 만에 부활시켰다.

축제의 성격도 자연보호경진대회로 바꾸고 ‘지리산 제모습 찾기’ 운동으로 나섰다. 여기에 ‘미스 철쭉 선발대회’까지 열어 산아가씨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나 이 철쭉제의 제문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자연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자연을 찾고 산에 오름은 오로지 속진(俗塵)을 씻고 인간 본연의 자세를 찾아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순응할 줄 아는 참다운 인간의 도리를 갖추기 위함이며…

산에 오르는 자, 산을 이해하고 아끼고…관용과 아량과 지혜와 겨레의 소원인 국토통일이 이룩되도록, 영험을 베푸시어 안전과 무사를 보살펴 주시옵기를…

선비샘. 촬영=윤재훈 기자 
선비샘. 촬영=윤재훈 기자 2008

남부 능선과 주 능선이 만나는 지점에는 ‘음양수 샘터’가 있다. 세석산장이 확장 건립된 이후부터 수량이 줄고 마르는 날이 많아졌지만, 이 샘물의 신비함은 예부터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약수로 유명했다.

아기가 없는 사람이 음양의 조화를 담고 흘러내리는 이 물을 마시면, 아기가 생긴다는 명성 때문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찾아들어 기도하였다.

그 옛날 지리산 대성골에 호야와 연진이라는 부부가 살았다. 금실이 좋아 부러운 것이 없었지만 다만 자식이 없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곰이 찾아와서 연진 여인에게 세석고원에 있는 음양수샘의 물을 마시고 산신령에게 기도하면 아기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여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이 샘터에 와 물을 실컷 마셨는데, 곰과 사이가 안 좋은 호랑이가 그만 산신령에게 밀고하여 버렸다. 노한 산신령이 곰은 토굴 속에 가두고, 호랑이가 백수의 왕이 되도록 했다. 여인에게는 평생 세석 돌밭에서 철쭉을 가꾸라는 형벌을 내렸다.

여인은 손발에 피가 나도록 철쭉나무들을 가꾸었으며, 해마다 세석고원에는 아름다운 철쭉꽃이 피어났다. 여인은 다섯 손가락에 흘러내리는 피를 세석평전에 뿌리며 애처롭게 울었다.

그 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에게 죄를 빌다 돌고 굳어져 버렸다. 그 소식을 들은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가다 산신령의 저지로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 바위에서 목메어 여인을 불렀다.

그래서 세석고원의 철쭉은 해마다 여인의 넋을 위로하듯 애련하게 연분홍으로 피어나고, 촛대봉은 그녀가 굳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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