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병을 고치지 않는' 호스피스병동 의사의 행복한 죽음이란?...신간 ‘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0.19 14:34
  • 수정 2023.10.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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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 책 표지. 사진=비아북 제공
'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 책 표지. 사진=비아북 제공

[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생의 마지막 순간을 ‘원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마치도록 도와주는 의사가 있다. ‘병을 고치지 않는 의사’인 히라노 구니요시 씨의 이야기다. 히라노 씨는 호스피스 의사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약 2,700명의 죽음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2,700명의 죽음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배웠다.

의사로서의 신념이 변화된 순간

히라노 씨는 인턴 시절 알게 된 간호사의 부탁으로 재택 호스피스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간호사에게는 뇌경색을 10년째 앓고 있는 고령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환자는 ‘아버지’로,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택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의사는 마지막까지 환자의 생명 연장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후 히라노 씨는 방문 진료 특화 클리닉을 개설했다. 그리고 히라노 씨가 돌보는 환자는 대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는 다른 의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봐 오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행복하게 마무리하려면 적절히, 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야만 본인뿐만 아니라 남겨진 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A씨는 분당 5~10리터의 산소 흡입을 하면서 집에서 완화 치료를 받는 환자였다. A씨는 옷을 갈아입거나 양치질하는 등 생활 속의 사소한 행위만 해도 산소 농도가 뚝 떨어져서 괴로운 상태였다. A씨는 목숨을 걸고 간 드라이브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 문화제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히라노 씨는 A씨가 평범한 대화조차 숨이 차고 기침도 나는 상황이라, 무대에서 노래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왕진을 갔더니, A씨는 가족이 촬영한 동영상을 히라노 씨에게 보여줬다. 영상 속 A씨는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산소 흡입관을 코에 장착한 채 끝까지 멋지게 노래를 불렀다. 가족에게 안겨 행사장을 나서는 그를 향해, 사정을 이해한 관객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적의 무대로부터 한 달 후, A씨는 조용히 최후를 맞이했다. 삶을 다 불태운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평온해 보였다.

동료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청춘’을 맛보다

히라노 씨는 어디서 죽는지와 마찬가지로 ‘누구의 간병을 받을지’ 정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환자 B씨는 말기 암 선고를 받은 72세 남성이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남성이 보살핌을 의뢰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요트부 친구들’이었다. 놀랍게도 동료 전원이 말기 암 남성의 간병을 함께하는 일대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곧장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찾았고, 순식간에 그의 ‘마지막 장소’를 찾아냈다. 회계를 담당하는 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자, 그저 매일 밤 시설에 찾아와서 보살핌을 계속하는 자. 동료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각각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남성의 마지막 시간을 감당했다.

B씨는 암 선고를 받고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동료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숨을 거뒀다. 히라노 씨는 사망 진단서를 쓰면서 의료인이 한 역할은 지극히 미미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B씨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준 것은 B씨의 동료였다. 반세기를 거치며 동아리에서 함께 땀을 흘렸던 바닷가에 유골을 뿌렸다. 고등학교 시절 모두 함께 요트를 띄웠던 바닷가는 ‘이별의 장소’가 되었고, 과거의 동료는 장례식의 참석자가 되었다.

히라노 씨는 “동아리 동료가 간병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동아리 동료가 마지막을 보살핀다니 인생의 최종 시기를 청춘 시대의 추억과 연결 짓는 것 같아서 그야말로 상쾌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연명 의료는 편안한 죽음에 도움이 되는가?

사람의 죽음은 갑자기 딱하고 모든 것이 끊기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혼탁해지면 마지막에는 하악 호흡이 시작된다. 하악 호흡 상태인 환자의 몸에서는 산소 흡입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는 축적되면서 뇌 내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그래서 본인은 괴로움이나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

또 식사하지 못하고 쇠약해지는 과정에서 사람은 다행감(정상보다 어떤 상황이나 자극에 대하여 과다하게 느끼는 행복감)을 얻는다고 여겨진다. 기아 상태의 몸속에서는 중성지방을 연소시키고 분해하는 작용을 통해 에너지 물질을 보충하려 한다. 그리고 케톤체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전환되면 뇌의 공복감은 사라지고 다행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히라노 씨는 “사람의 죽음, 특히 자연사라고 불리는 죽음에서는, 그 순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이 느끼는 것만큼 본인이 괴롭지는 않다. 오히려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행복감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며, “의료가 발달한 현재, 다양한 소생을 위한 처치나 연명 처치가 편안한 죽음의 순간을 방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한다.

죽음에 대한 선택권 존중되어야

고령자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019년 서울대 고령사회연구단의 조사에 따르면, 임종 장소로 집을 선호하는 비율은 38%이지만, 실제 자택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15.6%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 76.2%가 병원에서 사망한다. 의료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선택권이 존중받아야 한다. ‘후회 없이 내 마음대로(히라노 구니요시 저, 비아북스)’에서 히라노 씨는 ‘말 잘 듣는 노인’이 아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의견대로 살았던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그의 환자 대부분은 원하는 대로, ‘자택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둘러싸여,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하듯,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도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한 방식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할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한 선택권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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