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선의 구구절절] 병원 수어통역사 필요...'예산이 3.4조원인데, 장애인을 위해 4천만원은 안 쓰겠다는 대형 종합병원'

윤두선칼럼리스트
  • 입력 2023.12.19 13:23
  • 수정 2024.01.0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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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대 이혜경 농인 직원이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수어통역사 요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중증장애인생활독립연대 제공
독립연대 이혜경 농인 직원이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수어통역사 요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중증장애인생활독립연대 제공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농인들이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까닭은?

서울의 서대문구에 있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농인들이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병원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예전에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농인들의 병원진료를 지원하기 위해 수어통역사가 있었습니다. KT의 지원으로 수어통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KT의 지원이 끊기자마자 냉큼 수어통역사를 해고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진료받던 농인들은 하루아침에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된 것입니다.

농인들은 세상과의 소통이 어려워 곤란한 일을 많이 겪습니다. 한 농인은 택배로 받은 전복과 함께 온 아이스팩을 먹는 것으로 알고 먹으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아이스팩 포장지에 요상하게 요리가 인쇄되어 있어, '아이스팩은 식품이 아니므로 먹지 마십시오.'라고 씌어져 있었지만, 아이스팩을 잘 모르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이분은 먹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겉면에 요리 사진을 넣어서 농인에게 먹을 것으로 혼동하게 한 전복의 아이스팩. 사진=중증장애인생활독립연대 제공
겉면에 요리 사진을 넣어서 농인에게 먹을 것으로 혼동하게 한 전복의 아이스팩. 사진=중증장애인생활독립연대 제공

수어통역사가 없으면 위험한 일도 벌어지는데

사실 농인 중에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분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수어를 못하도록 하는 수어 억압 교육정책을 실시해 농인 학생들이 제대로 글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인 문해 교육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수어를 할 수 있는 교사가 없어 농아학교에 수어 가능 교사가 거의 없습니다. 난센스죠.

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 수어마저 제공되지 않으니, 농인들의 병원 이용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루 두 번 먹으라는 약을 네 번 먹은 분도 있고 항생제를 소화제로 알고 먹은 분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증상을 의사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울의 자치구마다 수어통역센터가 있고,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요청하면 병원으로 수어통역사가 지원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어통역사는 적은데 요청은 많아, 진료 예약시간에 제대로 배치가 되지 않으면,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료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이라면 진짜 큰 병원입니다. 1년 예산이 3.4조원(생성형 AI 챗봇 Bard가 알려줬어요!)이 달하는 거대한 병원입니다. 그런 거창하고 돈 많은 병원에서 수어통역사 연봉 4~6천만원(이것도 Bard가 알려줬어요!)이 아깝다고 수어통역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의사와 수어로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의사와 수어로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수어 통역은 배려가 아닌 의무이건만

그것도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장애인과의 소통 방법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어는 '보이는 언어'로 법적으로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입니다. 농인은 사회 어디에서 수어로 소통할 자격이 있고, 특히 대형 종합병원처럼 공공성이 중요한 곳에서는 수어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적어도 대형 종합병원에는 의무적으로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해주어야 합니다.

진료를 제대로 하려면 환자의 말을 최대한 듣고 환자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알려주어야 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입과 귀를 닫는 병원은 의료인의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인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형 종합병원에 수어통역사가 없는 것은 바로 장애인 차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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