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선의 구구절절] 건담이 되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장애인을 악당'이라고 잡아가는 사회

윤두선 칼럼리스트
  • 입력 2023.09.15 11:32
  • 수정 2023.09.1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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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가끔은 건담이 되어버리는 길동이

길동이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입니다. 현재 독립연대에서 복지일자리로 일하고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아주 조그마한 조각들을 맞추어 가면서 건담을 만들어 가는데, 그 집념과 집중은 대단합니다.

문제는 이분이 건담을 조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끔은 아예 자기가 건담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건담이 되어 지구를 지키고 있다는 상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다가(신분이 복지일자리이니) 시간이 나면 구석에서 혼자서 "나쁜 놈아 비켜!"라고 외치면서 팔을 쭉 뻗거나 막는 동작을 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중에는 상상 속에 사는 분들이 있어 이런 동작에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사실 귀엽기도 하고)

길동이는 착한 발달장애인이다. 다만 죄라고는 건담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진=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제공

그런데 길동이가 주말에 동네에서 혼자 놀다가 고발되어 즉결심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 장난감 칼을 휘저으며 놀고 있는데 칼부림하고 있다고, 고발이 되었고 경찰이 출동해 사회 불안을 조성했다고 즉결심판에 넘긴 것입니다.

평소 나쁜 악당을 물리치려고 장난감 칼을 자주 휘두르던 길동이는, 엄마가 시끄럽다고 밖에 나가서 하라는 말을 듣고 동네에서 혼자서 열심히 악당과 칼싸움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엿한 발달장애인인데!

ⓒ게티이미지뱅크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칼부림에 대한 사회적 공포

요즘 신림역과 서현역 등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칼부림 사건이 생기면서, 칼부림에 대한 사회 공포가 생겼습니다. 또 여기에 장난으로, 또는 남의 이목을 끌려는 관종 정신이 작용하여 여기저기서 칼부림 예고를 날리면서, 사회가 온통 칼부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됐습니다.

정부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경찰을 상시 배치하더니, 급기야는 장갑차까지 등장시켰습니다. 예전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장갑차를 배치한 것은 보았지만, 평상시에 장갑차가 도심에 나타난 것은 아마 처음인 듯합니다.

칼부림에 대해 사회가 공포에 빠져 있는 이런 비상시국에 동네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으니 동네 주민들을 기겁했습니다. 윗분들의 칼부림 경계 지시에 이가 흔들이게 놀랬던 경찰은 칼을 입에 문 강아지라도 잡아들일 태세였습니다. 눈매가 매서운 사람이 장난감이든 뭐든 휘젓고 있으니 장애인이건 뭐건 무조건 잡아들인 것입니다.

강남역에 등장한 무장 경찰특공대원과 장갑차. 사진=뉴시시 제공<br>
강남역에 등장한 무장 경찰특공대원과 장갑차. 사진=뉴시시 제공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장애인을 무서운 사람으로 모는 것은 아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칭찬해 왔고,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테러 수준의 칼부림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으니, 국민들이 놀란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더구나 아무 연고도 없는데 상해를 당하는 것을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무서운 공포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칼부림을 한 분들이 정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정신적 문제를 가진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한 혐오가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서 장애인은 당연히 소환되어 나오고 사회적 주시의 대상으로 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누구든 그냥 죽이겠다고 덤비는 이번 사건은 너무 특이하고 이례적이고, 안전이라는 우리의 가치관에 위협이 되는 경우라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고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여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과민반응 편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사회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보살피고 지원할까를 걱정해야지 총도 없는 사회에 장갑차를 몰고 나와 무력시위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현명한 대처일까요?

그나저나 제발 눈매가 매섭고 칼을 휘두른다고 사람을 함부로 잡아가지 마세요. 그 칼은 장난감이고, 눈매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파리 한 마리 못 잡는 약한 발달장애인입니다. 제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덩달아 잡아가지 마세요. 그러면 장애인 다 잡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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