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선의 구구절절] ‘키가 커서 슬픈 장애인’

윤두선 칼럼리스트
  • 입력 2024.01.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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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키가 커서 활동지원을 못 받는 장애인

얼마 전 활동지원사를 연결해달라는 장애인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동네가 꽤 멀어 도저히 연결해줄 수가 없었는데, 활동지원사가 너무 없어 현재 위급할 정도라고 사정하면서 찾아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활동지원사가 없는지 의문이 생겨 이유를 들어봤더니 장애인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도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장애인의 키가 199센티미터가 되니, 덩치가 너무 크다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왔다가도 사흘을 못 넘기고 가버립니다.

그 큰 키에 사지마비가 되었으니 옮기거나 들어주려면 다들 나가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장애인은 작은 게 더 유리할지 모릅니다.

예전에 골형성부전증(콜라겐 이상으로 뼈가 약해서 자꾸 부러지는 장애로 대부분 몸이 작다)으로 장애가 되어 아주 적은 체구의 장애인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찾아보았더니 장롱 밑에서 태연히 자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지금도 지역에서 활동지원을 잘 받으며 살고 있는데 너무 큰 분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장애인은 투르키예의 루메이사 겔리로 213.6cm라고 합니다. 휠체어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는데 지원을 하는 사람은 엄청 힘들 것입니다.

세계 최장신 장애인 루메이사 겔리. 휠체어 이용자지만 ADL(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높아 활동지원사의 노동 강도는 약할 것 같다.&nbsp;기네스 세계 기록 캡처<br>
세계 최장신 장애인 루메이사 겔리. 휠체어 이용자지만 ADL(일상생활 수행능력)이 높아 활동지원사의 노동 강도는 약할 것 같다. 기네스 세계 기록 캡처

활동지원은 장애인에게 자유를 준 장애인복지서비스

활동지원은 우리나라 중증장애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장애인복지서비스입니다. 2007년 정식으로 시작된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가사, 신변처리, 사회활동 등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장애 정도에 따라 정부에서 한 달 동안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정해주면, 장애인은 그 시간 동안 활동지원사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활동지원사의 급료는 정부에서 부담하지만, 이용자에게는 자부담이 있는데 소득에 따라 달라, 저소득층은 면제이고 최고 월 187,700원을 부담하면 됩니다.

활동지원을 통해 장애인은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당당하게 자신의 일상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금처럼 활발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활동지원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장애인의 활발한 독립적 생활이나 사회생활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장애인은 가족이나 돌봄 종사자의 관리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을 것입니다.

 

사진=한벗재단<br>
사진=한벗재단

오도 가도 못하는 장애인 신세​​

활동지원서비스가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고 해도 보조를 해줄, 활동지원사가 오지를 않으면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합의하여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덩치가 너무 커서 부담된다고, 활동지원사가 오지 않으니, 키 큰 장애인은 죽을 맛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장애가 심하여, 노동 강도가 심한 경우, 중증가산수당(시간당 3천원)을 더 주고 있지만, 안 하겠다는 데에는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이 장애인은 시설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시설이라면 적어도 몸이 거대하다고 구박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근데 문제는 거주 장애인을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는 탈시설 정책 때문에 어떤 시설도 선뜻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설마다 거주자를 내보내야 하는 판에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아무리 탈시설이 좋은 것이라도, 시설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데 정부 정책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장애인은 지금도 그 큰 키 때문에 활동지원도 받을 수 없고, 시설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 위험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에게는 크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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