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선의 구구절절] 장애는 병이 아닙니다. 그냥 장애입니다

윤두선칼럼리스트
  • 입력 2023.10.23 16:01
  • 수정 2023.10.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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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윤두선 대표

한약으로 장애를 고치겠다는 아버지

얼마 전 장애인 아버지 한 분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지적장애인이라 저희가 지원할 것이 무엇이 있나 여쭈어봤는데 답이 특별하였습니다. 아들이 지적장애는 있지만 한의원에서 약을 받아 먹이고 있어 곧 지적장애가 없어질 것이니 지원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아니, 중국의 전설적 신의 '화타'도 못 고친 지적장애를(화타 시대도 지적장애인이 있었겠죠?), 어떤 한의사가 고쳐주겠다고 호언장담했는지 몰라도 장애는 기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고칠 수 있다면 병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br>
ⓒ게티이미지뱅크

장애를 포기하고 평화를 얻은 뇌성마비 철학자

스위스의 뇌성마비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왜냐고 묻지 않는 삶'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애인이고, 그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 믿을 수 있겠는가? 장애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는 얘기다. 만약 이 몸이 나을 거라는 눈곱만치의 가능성이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 사방팔방 쫓아다니며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밝은 빛을 찾아 헤집지 않는 곳이 없었을 터다. 접골사, 약장수, 주술사, 마술사까지, 온갖 부류의 돌팔이를 만나고 다녔을 거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럴 이유가 없다.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 것."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오히려 고칠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헛된 시도를 중지하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이다.

알렉산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nbsp;<br>
알렉산드르 졸리앙의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장애를 앓는다는 생각이 바로 장애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사람이 비극적인 사건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심리적 과정을 5단계로 정리했습니다. 1단계는 '부정'으로 현실을 부정합니다. 2단계는 '분노',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합니다. 3단계는 '타협'으로 도움을 구하거나 타협을 시도합니다. 4단계는 '우울', 어쩔 수 없다는 것에서 슬픔과 절망을 느낍니다. 그리고 마지막 5단계 '수용',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온을 찾습니다. 모든 사람이 꼭 이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아버지는 아직도 1단계 '부정'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장애는 슬픈 현실입니다. 세상에 누구도 장애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애는 부정한다고 괜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질없는 희망보다 슬픈 현실 인식이 힘이 됩니다.

장애는 기본적으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오래오래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도전 의식이 생겨 의욕이 생깁니다.

그리고 제발 '장애를 앓는다'는 말을 쓰지 마십시오. '앓는다'는 '병에 걸려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장애는 병이 아닙니다. 그냥 장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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