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가정방문’이 있었던 학창 시절...이미숙 교사의 약속 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4.02.02 12:51
  • 수정 2024.02.0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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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싹이 자라 대수로 성장하듯
해 뜨는 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을 다 견디고 나면,
스스로 훌륭하고 멋지게 빛내 갈 것을 확신합니다.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마음이 굳세고 강한
우리 10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만나니 벌써 아이들이 많이 자랐네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깊이 기원드립니다.
방학 때도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 담임 이미숙 올림

ⓒ게티이미지뱅크<br>
ⓒ게티이미지뱅크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우리의 학창 시절에는 ‘가정 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며칠 후에 선생님이 오신다고 하면 엄마들은 오랜만에 집 안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오면 뭘 드릴까, 미리 과일도 사다 두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전통이란 그 시절을 추억하기에 좋았던 기억이며 지금 생각해도 아련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 시절 선생님은 아이의 집에 오셔서 가정환경과 공부할 여건을 두루 보고, 그것으로 아이의 교육 지표로 삼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참 스승님이 많았다.
회초리를 맞았어도 두고두고 사랑의 매로 기억되고, 선생님이 두고두고 그립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놀이기구라는 것도 없었다. 그저 동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땅 위에서 뒹구는 것뿐이었다.

팽이치기, 말뚝박기, 자치기, 고무줄, 오자미, 공기놀이, 비석 치기, 동전 따먹기, 아이스께끼, 막대기 따먹기, 가위샌, 만세빵, 나무로 만든 칼 싸움, 연탄 싸움 등.

이제는 그 이름들도 다 헤아리기 힘들다.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던 고향 친구들도 이 놀이를 생각하면 마치 어제 뛰어놀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맨발걷기. 사진=윤재훈 기자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 ‘맨발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옛날에는 땅 위에서 당연히 흙과 더불어 살아왔는데, 지금은 전 국토가 콘크리트로 덮이고 나니 당연했던 것들이 마치 새로운 건강비법처럼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여기에 어른들은 마치 흙은 더러운 것처럼 혹시라도 아이들이 흙이라도 만지면, 비누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하지만 우리가 흙에서 놀 때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유익한 균들도 있다.

맨발 걷기의 가장 큰 축복은‘지압’과‘어싱(earthing)’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다 신발이라도 벗겨지면, 어른들은 마치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흙을 털어내며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과연 신발 속이 흙보다 더 깨끗할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맨발 걷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은 날카로운 물질을 밟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맨발로 땅 위에 서면 그 순간부터 저절로 명상이 시작된다. 온갖 잡념은 사라지고, 내 발의 1미터 앞 정도만 응시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30분이나 1시간 정도 걷고 나며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 온다. 온 신경을 발 앞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명상의 원리이다.

음이온이 듬뿍 나오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며. 사진=윤재훈 기자

땅은 기본적으로 더럽고 개나 고양이의 배설물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비가 와서 씻겨 내려가고 매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흙을 소독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흙에는 몸에 유익한 균도 많다.

‘마이코 박테리움 백 케이’와 같은 유익한 박테리아는 우리 몸속으로 들어가 세로토닌을 분비해 준다. 그럼, 뇌가 활성화되면서 심신이 밝아지고 만족감이 배가된다.

우리가 온 국토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함부로 포장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여기에 도시는 ‘양이온’의 세계이다. 양이온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쉬 피로해지고, 짜증을 많이 낸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귀찮아지고 인면수심적인 범죄가 수시로 일어나기 싶다.

흙 위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의 뇌가 훨씬 활성도가 높다는 연구들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콘크리트 위에서 운동하기보다는 맨발로 뛰어놀면 지덕체(智德體)의 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이 맨발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나라일수록 건강한 나라이다.
흙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학교폭력의 해법을 떠올려 본다. 

흙 위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국가일수록, 미래 세대가 건강해질 것이다. 나아가 교육문제의 난제들도 푸는 방법이 쉬워질 것이다.

그대와 둘이서. 사진=윤재훈 기자

그런데 지금 아이들에게 옛날에 어른들이 흙밭에서 뛰어놀았다고 하면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거의 실내에서 얌전하게 앉아 게임하거나, 이제는 아예 혼자서 하루 종일 스마트 폰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같이 앉아서도 오직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니 눈과 귀 건강도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다.

사회성은 떨어지고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진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선생님들의 위상도 옛날 같지 않고, 선생님들도 자기 계발을 얼마나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보슬비 내리는 길. 사진=이미숙 교사 제공<br>
보슬비 내리는 길. 사진=이미숙 교사 제공

 ‘2024년 1월 21일 오후 1시’. 중학교 1학년 10반 학생들이 2년만에 만남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갔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눈이 섞인 것 같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아이들과 걸으면서 맞아도 될 법한 비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비를 맞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비를 맞는 것이 다반사였다. 흠뻑 비에 젖어 집에까지 헐레벌떡 뛰어가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야야,  너 그러다 감기 걸린다"하고 마른 수건이나 건네주면 그게 다였다.

젊은 날에는 일부러 비를 맞고 다니기도 했다. 살갗이 아프도록 내리꽂는 비는 맞고나면 오히려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지며, 속이 후련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홀로 우산이라도 쓰고 가는 아가씨가 있으면 일부러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옛날에는 비가 오면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것은 당연한 인정이었다. 그러다 이야기가 통하면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남녀가 사귀는 것이 요즘처럼 돈과 직장이 기준이 되는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어쩌다 서로 간에 정이 들고 아이가 생기고, 미운 정 고운 정이 흠뻑 들면서, 백년해로를 하였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도 참으로 짖굿었다, 비포장 도로가 많던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길은 질척였다. 그럼 사람들은 덜 질척이는 곳으로 다니고 땅이 다져지며, 한 줄 길이 생겨났다. 그러면 지앙스러운 아이들은 그 길 한 가운데에 땅을 파고 마른 흙을 뿌려 허방을 만들었다. 

그러다 새 신발이라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지나가다 빠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난감했을까. 사내 아이들은 멀리 골목길에 숨어 킬킬거리며 웃고. 순박한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모두 한 시절을 지나가는 통과의례로, 그 시대 의 사람들에게는 아련하게 남아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며 걸어갑니다. "

쟁글거리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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