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을 기억하다③] 정현왕후와 성종이 잠든 선릉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5.26 16:27
  • 수정 2023.05.3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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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청산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물욕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왕릉을 상징하는 금송. 촬영=윤재훈 기자
왕릉을 상징하는 금송.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조선의 11번째 왕 중종은 57세(1488~1544)에 창경궁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연산군을 폐군 시키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행운의 왕이었을까, 아니면 평생 자기 뜻을 온전히 펼치지 못하고 권신들에게 휘둘린 나약한 왕이었을까?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경기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여. 이름을 정릉으로 바꿨다. 그러나 명종 17년 1562년에는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의 뜻으로, 두 번째 부인과 이별하고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는 그녀가 사후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으나, 이 자리는 지세가 낮아 비만 오면 침수가 되어 문정왕후는 현재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에 묻히게 된다. 이에 따라 세 왕비인 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과는 따로 떨어져 부모 곁에 머물게 된다.

차라리 그대로 장경왕후와 함께 두었으며 어땠을까, 문정왕후의 질투심 때문이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온다. 왕은 세 번째 부인 문정왕후의 뜻으로 이곳으로 왔지만, 어느 곳이 가장 행복한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민들레, 연산을 닮았다. 촬영=윤재훈 기자
민들레, 연산을 닮았다. 촬영=윤재훈 기자

능의 왼쪽은 도로와 인접해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소리가 들리고, 왕릉으로는 좀 협소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제궁 앞에는 응당히 있어야 할 제물(祭物)을 준비하는 수라간과 능지기가 머무는 수복방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철 늦은 벚꽃잎이 분분히 날려 고개를 들고, 아무리 둘러봐도 벚꽃은 보이지 않는데, 도로 옆으로 굽은 소나무만 신하처럼 부복하고 오랫동안 능을 지켜온 듯하다.

문득 능을 따라 연산군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연속된 실정(失政)으로 인해, 조선왕조 역사상 광해군과 더불어 반정으로 폐위된 후 끝내 복위되지 못한 왕, 조(祖)나 종(宗)의 묘호를 받지 못한 조선왕조 두 명뿐인 왕 중 한 명. 진성대군을 미는 신하들과 그의 어머니 정현왕후의 입김으로 끝내 폐왕이 되어 버린 연산이 중종의 능선 따라 겹친다.

어머니의 한이 그의 뼈마디에 서려 있었을 비운의 왕,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폐군이 되기를 다짐했을까? 그의 숨결처럼 민들레 한 송이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

짙푸른 녹음을 따라 걷는다. 이따금 가벼운 차림의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는가 싶더니 나지막한 산세를 따라 올라간다. 멀리 금송들이 줄지어 서서 바람을 막아주며 왕릉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황혼의 부부가 앉아 이제 그분들에게도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중종반정을 승낙한 정현왕후의 능. 촬영=윤재훈 기자
중종반정을 승낙한 정현왕후의 능. 촬영=윤재훈 기자

또 다른 왕릉이 나타난다. 이곳은 중종의 어머니이며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의 부인 정현왕후의 능이다. 1473년 후궁 숙의가 되었고 성종 10년 1479년 당시 왕비였던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해인 1480년에 왕비로 책봉된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자수는 왕대비가 되었으며, 연산군을 아들처럼 돌보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가 폐위된 것을 알고 그녀에게 대들기도 했다고 한다. 1506년 자기 아들을 왕위로 세우는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왕대비의 권한으로 10대 왕인(연산군)으로 폐위하고 아들(진성대군)의 즉위를 허락한다. 1530년 중종 25년 69세로 경복궁 동궁 정침에서 사망한다.

그녀는 세 번째 계비이지만 아들인 중종을 왕위에 올린다. 어머니처럼 따르던 두 번째 계비인 폐비 윤 씨의 아들인 연산군을 몰아내고 자신을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중종반정을 윤허하고 말이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다 윤 씨이다. 역사는 언제나 인간의 권력욕에 따라서 피어나고 스러지는 한 송이 악의 꽃과도 같다.

500년 한 자리에 서 있는 석물들. 촬영=윤재훈 기자
500년 한 자리에 서 있는 석물들. 촬영=윤재훈 기자

그녀의 능 위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무덤 주위에 세우는 난간 석주가 쓰러진 체, 그녀의 영화인 양 반쯤 땅속에 묻혀있다. 계단을 오르니 문인과 무인들의 석주가 위압적으로 도열해 있고, 그 옆으로 양들을 비롯한 키 낮은 석주들이 함께 서 있다. 왕후의 능은 푸른 잔디가 돋아 깨끗하게 잘 단장되어 있었으며, 다시 복원했는지 12개의 석주가 빙 둘러 도열한 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죽어 천년, 살아 천년 주목처럼 왕릉은 후세인들에 의해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삼면을 빙 둘러 하얀 담장이 가지런히 서서 귀신들의 접근을 막고 있는 것 같다. 기왓장 한 장에도 배어있는 용과 봉황의 문양에서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무덤 앞에 놓인 화강암 제상의 크기도 위압감이 들며 검게 흘러내린 자국들이 오랜 세월이 흘러갔음을 무언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은 500년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의 무상함이 금속 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듯하다.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능.  왕릉에만 병풍석이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능.  왕릉에만 병풍석이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곳에는 세 기의 능이 있다. 이제 마지막 조선의 성군 중의 하나라는 성종이다. 왼쪽 언덕 위에 있으며 오른쪽에는 정현왕후가 있는 전형적인 동원이강릉이다. 13세에 왕위에 올랐으며, 25년 재위했으니 적은 기간이 아니다. 왕조를 보면 의문이 드는 생각이 있다. 하나 같이 왕들은 왜 저리 단명했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다가오는 것도 같다. 여기에 예외적으로 두 번째 계비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를 가둬 죽게 했던 매정한 왕 영조는 52년 동안 왕위에 있었으니, 특별한 경우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수티다 왕비가 태국 방콕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압력이 거센 가운데 국왕 부부는 왕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후 수천 명의 지지자를 환영했다. 국왕은 시위대를 향해 발언해달라는 외신의 요청에 '노 코멘트'라고 답하며, '그래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과 수티다 왕비가 태국 방콕에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압력이 거센 가운데 국왕 부부는 왕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후 수천 명의 지지자를 환영했다. 국왕은 시위대를 향해 발언해달라는 외신의 요청에 '노 코멘트'라고 답하며, '그래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던 사람은 누구일까? 태국 국민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짜끄리 왕조의 9번째 국왕이었던 라마 9세인 ‘푸미폰 국왕’은, 70년간 왕위에 머물렀다고 하니 입이 벌어진다. 여기에 뒤지지 않는 여왕도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로 그녀도 푸미폰 국왕과 더불어 세계 최장기 집권 군주였다.

푸미폰 국왕의 정식적인 이름은 ‘프라밧솜뎃 프라뽀라민타라 마하푸미폰아둔야뎃 보롬마나타보핏’으로 28자나 되는데, 그는 그런 긴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보통은 ‘푸미폰 아둔야뎃’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대왕’이며, 1946년에 즉위한 이래 2016년까지 아파하는 국민을 찾아다니며 다독여 주었다고 아버지처럼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달랐다. 젊을 때부터 기이한 행동들로 세인들의 입살에 오르더니 갈수록 심해지는 모양세다. 그의 성정상 왕위에 오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왕정국가의 가장 불합리한 행태는 자격도 없는 자신의 아들을 덮어놓고 왕위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세습를 창세기부터 보아왔다. 고조선, 삼국, 고려, 조선, 그리고 이제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살풍경들을 맞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존(至尊). ⓒ뉴시스
지존(至尊). ⓒ뉴시스

 

2016년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은 난잡한 여성 편력과 도에 넘치는 사치, 기이한 행동 등으로, 국민이 분노하며 왕실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개를 너무 좋아하는 모양이다. 2007년 ‘애완견 생일파티’ 때는 당시 왕세자비였던 세 번째 부인 스리라스미에게 가느다란 속옷 한 장만 걸친 반라 상태로 바닥에 엎드려 개처럼 케이크를 먹게 하고, 그 동영상이 공개되어 파장을 일으켰다. 2015년에는 그 개가 죽자 공군 대장 직위를 부여하고 불교식으로 나흘간이나 장례를 치렀다.

2017년에는 부인이 아닌 다른 젊은 여성과 민소매 배꼽티를 함께 입고 독일 뮌헨의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또 한 차례 파장이 일으켰다. 배꼽티 위로는 팔뚝, 등, 배를 뒤엎은 화려한 색상의 문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2016년에도 배꼽티에 엉덩이골이 보일 정도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왕실 모독죄에 해당하는 불법 게시물이라고 하면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대표에게 동영상이 포함된 모든 페이지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최신 전투기를 비롯한 비행기를 38대나 가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항공기 구입비를 제외하고 연료비, 유지 보수비에만 한 해 20억 바트(약 750억)의 국가 예산이 배정된다고 추산했다. 왕실 한 해 예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인 90억 바트(약 3,400억)의 20% 이상이, 국왕의 비행기 취미 유지에 쓰이고 있다.

마하 와치랄롱꼰(왼쪽) 태국 국왕이 방콕에서 자신의 근위대장이었던 수티다 와치랄롱꼰 나 아유타야와 결혼한 후 나란히 앉아 있다. 이번 결혼은 와치랄롱꼰 국왕에게는 네 번째이다. ⓒAP/뉴시스
마하 와치랄롱꼰(왼쪽) 태국 국왕이 방콕에서 자신의 근위대장이었던 수티다 와치랄롱꼰 나 아유타야와 결혼한 후 나란히 앉아 있다. 이번 결혼은 와치랄롱꼰 국왕에게는 네 번째이다. ⓒAP/뉴시스

대관식에 오를 때도 3일간 초호화로 진행되었는데 승려 대표가 국왕에게 이름이 박힌 7kg에 달하는 왕관을 전달하고 그것을 쓴 채 시내 퍼레이드를 했다. 사흘 일정에 태국 정부는 10억 바트(약 365억)을 사용했는데, 이는 2017년 아버지 푸미폰 전 국왕 장례비용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코로나가 터지자, 그는 자가격리를 한다며 6개월 이상 독일 휴양지에 머물며, 첩 20명가량을 포함해 100여 명의 수행단과 함께 고급 호텔 4층을 통째로 임대해 머물렀다. 입구에는 보초로 세우고 태국에서 가져온 보물과 골동품으로 장식한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왕인가? 조선 왕조와 겹치면서 구분할 수가 없다.

독일 신문 빌트는 그가 고급 호텔에 과거 술탄이 후궁들과 여흥을 즐겼던 하렘과 비슷한 공간을 꾸몄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로 힘들어하는 국민을 돌보지 않고, 자신만의 호화로운 생활과 여흥을 즐겼던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족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가 보유한 자산이 400억 달러(약 45조 7,200억) 이상이라고 추산했으며, 19년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보도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족’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2018년에는 33조에 달하는 왕실 재산도 물려받았다. 하지만 지금도 태국의 왓Wat(사찰)에 가면 부처님 옆에 아버지와 아들 사진이 나란히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새 국왕이 5일 방콕 왕궁 내 불교사원에서 승려들에게 승복을 바치는 의식을 드리고 있다. ⓒ뉴시스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새 국왕이 5일 방콕 왕궁 내 불교사원에서 승려들에게 승복을 바치는 의식을 드리고 있다. ⓒ뉴시스

국교인 태국 국민은 부처님 앞에만 서면 한없이 순박해져 두 손을 모두고 인사를 한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왓, 마을 구성원들에게 기구의 대상이면 힘든 일이 있으면 가서 의논하는 대안자의 역할을 해준다. 젊은 청춘들은 이슥한 밤이 되면 데이트 장소로 이용된다. 한국의 절처럼 여름에는 대중들이 다려준 모시옷을 입고 수행도 없이 부채나 부치고 앉아있는, 그런 모습들이 아니다.

명진 스님의 일갈이 생각난다. 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에게도 꼭 산적처럼 길을 막고 수십 년 통행세를 요구하더니, 나라에서 보장해 준다고 하니 이제사 입구의 바리게이트를 치웠다. 무엇 때문에 구도의 길을 떠났을까? 물욕에 눈이 어두우면 사바에 있으면 그만이다. 머리 깎고 앉아 공짜밥이나 먹으며 중생제도는 안중에도 없는, 비루한 인간들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승가를 사바에서 걱정하는 그런 살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창공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청산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물욕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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