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81] 터키, 오스만 대제국의 나라 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1.26 11:07
  • 수정 2022.03.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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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대제국의 나라, 터키를 가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날 가고 달 가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Hi my friend, long time no see.“ 촬영=윤재훈)
(”Hi my friend, long time no see.“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이란인인 22세와 33세 젊은 커플과 국경을 넘어오다 친해져, 그들이 묵는다는 숙소를 따라갔다. 아마도 두 사람은 이란에서 살만한 집안의 자제인 모양이다. 차도 마침 숙소 근처에서 내린다.

다른 나라 국경을 넘어왔는데도 내 주머니에는 그 나라 화폐가 한 푼도 없어 걱정스러웠는데, 마침 ATM 기계가 있다. 이국에 나와 돈을 찾고 숙소를 잡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다. 이곳에서 수도인 앙카라까지는 버스로 17시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50리라이다. 그나마 여행사가 많지 않고, 베스트 투어 여행사에서 표를 예매하면 된다.

여행자가 많이 오지 않는 곳이라 도미토리가 없다. 주인 남자가 참 친절하며 1인실로 안내해준다. 아래로 내려오니 1층 문 앞에 3인용 소파가 놓여있다. 낯선 나라,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도시, 그곳에 앉아 지나가는 터키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한다.

(오스만 최대 영토 제국 시절) 

이곳은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흔들었던 ‘오스만 제국(터키 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나라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비행기를 보유한 군대를 창설한 제국이다. 비행기가 들어온 건 1909년 11월이었으며, 벨기에인 파이럿 ’바롱 드 카테르‘가 코스탄티니예에서 시연한 부아생(Voisin)형 비행기였다. 중량 500kg에 불과했으며, 최대 시속 76km로 날았다.

전제군주제 아래 잠깐씩 입헌 군주제를 변용하며 이어온 제국,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국가. 기원전 27년 건국되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1480년이나 이어온 거대한 로마 제국(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을 정복하고, 실크로드의 중심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하여 수도로 삼았다.

북으로는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서로는 모로코, 남으로는 에티오피아,
동으로는 이란과 접하며, 당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던
강력한 패권 국가가 되었다.

웅장하고 압도적인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성 소피아 성당)‘. 촬영=윤재훈)
웅장하고 압도적인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성 소피아 성당)‘. 촬영=윤재훈 기자)

어느 사막의 전사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말을 달리다, 히잡을 코에까지 올리고 내려다보는 것 같은 압도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이슬람의 성소, 아야 소피아(무슬림 사원, 대성당)

역대 중동 제국 중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이었다. 한 번 마음 먹고 군대를 보냈다 하면 전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유럽 중부와 동부에 제대로 된 공포를 느끼게 해 준 제국은 단 둘 뿐이었는데, 그것은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제국과 오스만 제국 뿐이었다. 메흐메트 2세, 쉴레이만 1세 등 멋진 명군이 활약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세종대왕만큼이나 세간에 유명하다.

19세기 러시아가 부상하기 전까지 유럽 세계의 공공의 적은 오스만 제국일 정도였으며, 몇 개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슬람 제국 중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안정적인 황제권을 휘두른 국가였다. 세계 문명의 각축장인 실크로드에서 ’623년’이나 이어온 대제국답게,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었다. 기원전 37년에 개국되어 705년이나 존속되었던 고구려의 역사에 버금간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그랜드 바자르‘. 촬영=윤재훈)
(실크로드의 종착지, ’그랜드 바자르‘. 촬영=윤재훈 기자)

이처럼 경제력과 문화적인 면에서 모두 동시대 유럽 등 인근 국가들에 비해서 훨씬 다채롭고 거대하게 발전한 오스만 제국의 문화적인 주류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 문화
둘째,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문화
셋째, 이란 지방의 페르시아 문화

3가지 문화가 그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첫 번째, 궁정에서는 옛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시를 잘 짓는 것이 지식인의 상징이었으며, 이 때문에 고관대작들이 시를 짓는 것을 즐겨,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담은 '가젤(gazel)‘이라고 하는 페르아풍의 시들이 유행했다.

두 번째로는, 오스만 제국과 터키 문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캘리그라피‘라고 하는 이슬람권 전통 서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기아 소피아(고전 그리스어, 아야 소피아Ayasofya. 터키어, 성 소피아 성당)‘에 걸려있는 ’쉴레이만 1세‘의 캘리그라피 서명이다.

아야 소피아는 세계문화유산이면서 터키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명으로 시작되어 537년 12월 27일 축성된 이곳은, ’성 소피아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정교회의 총본산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에 입성하여 아야 소피아에서 금요 예배를 본 이래로 모스크로 바뀌어 버렸다.

(아야 소피아 건너편에 쌍벽을 이루고 있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촬영=윤재훈)
(아야 소피아 건너편에 쌍벽을 이루고 있는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촬영=윤재훈 기자)

세 번째로는, ’카펫 제작술‘이다. 서양에 불티나게 팔려나갈 정도로 그 품질과 인기가 좋았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이 카펫에 넣어진 문양과 색의 화려함으로 주인의 부를 짐작할 수 있었으며, 특히 아나톨리아의 귀족들은 이 카펫을 바닥의 깔개로만 사용하지 않고 벽이나 천장에 장식용품으로 걸어놓은 태피스트리(tapestry)로도 이용했다.

모스크에서 가장 빈번하게 기부되는 물품도 카페트였으며, 어떤 지방에서는 일부러 공물처럼 세금으로 거둬들이기도 했다. 터키를 여행하다 보면 가격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그들이 들이는 공력과 시간을 보면 감히 깎을 엄두를 못 낸다. 요즘은 기계로도 많이 짜는 것 같다.

네 번째로는, 동로마 제국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분야 중의 하나인, ’금, 은 세공술‘도 굉장히 발달했다. 안에 성화를 새겨넣거나, 비잔틴 양식의 돋을새김을 넣은 등, 비잔티 풍의 금속 세공품들은 오스만 역사 내내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졌다. 대부분 이런 보석 세공사들은 유대인이나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들이었으며, 시계에도 관심이 많았던 오스만 제국은 서구에서 제작가들을 초빙해 함께 만들었다.

(’맹진사‘댁 경사‘, 서대문회관에서 출연 작품. 촬영=윤재훈))
(시민극단 ’맹진사‘댁 경사‘, 서대문회관에서 출연 작품. 촬영=윤재훈 기자)

대중 공연 분야에서는 '멧다(Meddah, مداح)’라고 하여, 주로 교훈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커피집 등에서 소규모 관객 등을 모아놓고 하는 원맨쇼도 있었다. 여기에는, 민화, 국제관계, 일화집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논하거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혹은 오딧세이 등 심지어 그리스 서사시까지 읊어주기도 했다.

물론 길거리나 일반 평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나 유흥을 위주로 한 음담패설도 있었다. 우리네 저잣거리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읽어주는 광대들이 있지 않았던가?

특히 멧다는 1인극인 특성상 여러 인물의 역을 맡아야 했다. 지방별 사투리를 따로 연습하거나, 목소리를 아예 바꾸기도 했다. 여기에 아예 작은 우산이나 손수건, 모자 등 소품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집중시키거나, 간단한 마술까지 보여주는 만능 엔터테이너 역할까지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에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이외에도 ‘카라괴즈’라는 그림자 인형극과, ‘메디안’이라는 대형 연극도 사람들이 좋아했다.

(이스탄불의 뒷골목, 파란 옷은 한국인 친구들. 촬영=윤재훈)
(이스탄불의 뒷골목, 파란 옷은 한국인 친구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처럼 번성하던 오스만 제국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능한 황제까지 잇따라 배출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시류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영토를 하나하나 잃으며 위세가 위축되다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동맹국의 일원이 되는 최악의 수를 두고 협상국에 패배하게 된다.

거대한 제국은 내부에 있던 소수민족들이 하나, 둘 독립하고, 그리스에게 국가의 발상지인 아나톨리아의 해안까지 점령당하는 수모까지 당한다. 그리고 지금의 터키로 줄어 들었지만, 우리에 비하면 여전히 광대한 나라다.

그 후 강대국들에 이권에 의해 사분오열된 나라는, 열강들의 위성국으로 전락할뻔했으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휘 아래 기사회생한다. 터키인들은 그를 국부로 추앙하며, 거리 곳곳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후 아타톨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튀르크족의 국민국가, 터키 공화국으로 개편되면서, 오스만 제국은 1922년 11월 1일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국이 되었다. 1299~1922까지 이 지구상에 623년 존재했던 오래된 국가였다. 엄청난 시간이다. 그런데 기원전 753년에 로마왕국부터 로마 공화정과 로마제국이 역사를 따라가면, 무려 ‘2,206년’이나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거대한 제국이었다. 쉽게 상상이 안 가는, 광대무변한 시간이다.

(중국 위그루 지역 응회암 사막, 촬영=윤재훈)
(중국 위그루 지역 응회암 사막,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을 기원전 108년으로 잡는다면, 발해, 삼국 신라 천 년, 고려,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까지 잡아서 얼추, 그 정도가 될 세월이다. 가늠하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세월이다. 100년도 이 지상에 존재하지 못하는 인간의 세사(世事)에서, 참으로 장구한 세월이다.

”이 지상에서 무슨 욕심 부릴 게 있겠는가?“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날 가고 달 가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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