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 집에서 저녁밥상 앞에 앉은 박부장은 오늘도 콩으로 만든 반찬이 없어서 밥맛이 다 떨어질 지경이다. 평소에 박부장이 좋아하는 반찬은 콩을 주재료로 만든 게 많았다. 어릴 때부터 밥 위에 듬뿍 얹어먹던 구수한 청국장이며, 순두부찌개, 두부조림, 짭쪼롬한 콩자반, 두부새우젓국 찌개 등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 콩요리 아니던가? 당신이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해서 고기를 위주로 먹는 집보다 식비가 적게 든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아내가 아니던가?그런 아내가 요즘 근 한 달째 콩으로 만든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박
황여사는 아침 9시에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의 조그만 가게로 6개월째 출근을 하고 있다. 가게의 업종은 식당이다. 점심 한 끼만 장사를 하는지라 11시 30분부터 점심 손님을 받으려면 9시쯤에는 가게에 도착해서 그날 쓸 식재료들을 모두 다듬고 조리 직전의 상태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 황여사네 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고등어 묵은지조림 쌈밥과 돼지불고기 쌈밥, 이렇게 딱 두 가지이다. 주부 경력 30년 차인 황여사가 평소에 집에서 잘 해먹는 음식이고 자타공인 맛있다고 인정받은 메뉴였다.처음 시작할 때는 남편의 퇴직이 코앞이라
석 달 전에 큰딸에게서 외손자를 얻은 정여사는 초보 외할머니가 되었다. 친구들은 아직 60살도 안된 나이에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뭐가 좋으냐고 말들을 했다. 그러나 정여사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을 하기도 어려운데다, 결혼을 해도 아기를 잘 낳지 않는 세태가 아닌가. 그러니 결혼한 지 2년 만에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은 딸이 대견하기만 했다. 딸은 강씨 집안의 큰며느리라 은근 아들을 낳은 게 잘 됐다 싶기도 했다. 하긴 요즘 부모세대는 거의 자식이 둘뿐이라 큰며느리 작은며느리라는 호칭도 사라질 판이지만, 일단 강서방이 큰아들이고 밑으
오늘 아침에도 박여사는 남편의 밥상에 달걀 프라이 두 개를 곁들여 놓았다. 전기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터라 김사장이라 불리는 남편의 아침 밥상에는 온갖 반찬이 다 있어도 언제나 자못 고전적인 달걀 프라이 두 개를 올려야 한다. 남편이 달걀 프라이 두 개를 아침마다 먹기 시작한 건 20년 전부터였다.20년 전, 결혼한지 15년 만에 알뜰살뜰과 천신만고를 합친 노력으로 박여사와 남편은 처음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 당시는 서울 변두리인 마포였지만,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다는 흥분과 기쁨 속에 두 아이들과 이사를 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50대 후반인 여인들로 속칭 미녀 4총사인 영미, 윤자, 금희, 난영은 여고 동창생들이다. 충청도의 한 여고 출신들인 4인방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사는 터라 더 돈독한 우정의 만남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남편들과 같이 만나서 술과 밥을 먹는 모임도 매년 몇 차례는 하는 정도고 서로의 자식 얘기, 부모님 이야기 등 가정사도 훤히 알고 있는 친밀한 사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나부끼던 시절에 결혼을 해서 그런지 다들 무슨 법령을 엄격히 준수하듯 자녀는 둘씩을 낳았다. 그 8명의 자식들 중 금희의 둘째 딸이 올해 마지막으
나이가 60대 초반인 김종호씨는 요즘 자주 우울해졌다. 김종호씨는 자신이 겪는 우울증의 원인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았다. 생활비는 연금과 약간의 월세로 충당이 가능했다. 아끼면서 쓰면 그럭저럭 초라하지 않게 살 정도는 돼서 부인도 일을 하지 않고 가끔은 국내여행도 했다.퇴직 후에 소일 삼아 나가는 친구의 부동산중개소에도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김종호씨가 중개사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고 부동산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를 얻어서, 친구가 업무로 자리를 비울 때는 사무실을 지키는 역할도 해주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로도 이
선박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하고 올해 61세가 된 전직 김이사는 퇴직 이후 6개월간 낮에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부인에게도 그동안 사회생활에서 쌓인 독소를 빼는 시간이니 가만히 놔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평일 낮 시간에 벌어지는 삶이 도무지 낯설기만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아 면구스러웠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고 한다. 늙고 병들어 죽는 자연적인 죽음과, 자신의 일생을 정의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오는 사회적 죽음이 그것이다. 김이사는 그런 사회적 죽음을 경험하는
62세로 조그만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한사장님은 오랜만에 토요일 아침에 가족 모두 아침밥을 먹는 자리를 맞이해 기분이 흐뭇했다. 잘 자라준 두 아들을 보자 정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 어렵던 80년대의 봉제 수출의류 하청공장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대기업의 안정적인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별 위험 없이 노후까지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집 있고, 먹고 살고, 등록금 걱정이 없이 자식들을 교육 시킨 자신의 지난날이 꿈만 같다며 가끔은 고생하던 시절 친구들과 술잔을 들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안방에서 달력을 쳐다보던 박여사의 표정이 급작스러울 만큼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시할아버지 제사라고 크고 붉게 동그라미가 쳐져 있기 때문이다. 제사 한 번 치르려면 2주 전부터 괜스레 몸과 마음이 동동거리고 쉽게 지쳐버렸다. 김치도 새로 담그고, 생선도 미리미리 말려두어야 했다. 이런 세월이 벌써 30년째라 박여사는 이제 제사라면 조상에 대한 예의니, 친인척간 화목이니, 자손발복 이라는 등 모든 원천적인 의미들이 미사여구로만 들려왔다. 효성스런 자손 역할보다는 제사 한 번 치르고 나면 아픈 자신의 팔다리 허리
대기업에서 50대 후반의 나이에 얼마 전 퇴직한 윤이사님은 요즘도 ‘윤이사님’이란 직함으로 불리긴 하지만, 실은 3개월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처럼 편의점이나 치킨집을 창업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집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읽으며 이른바 ‘욜로 라이프’로 유유자적 지내고 있다. 그런 여유는 아직 돈을 벌어오는 부인이 있는 덕분이다. 고등학교 사회교사인 아내의 정년은 아직 멀어서 여전히 학교로 출근하고, 윤이사님은 어색하고 뻘쭘하게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아내에게 인사를 한다. 앞치
60대 초반의 젊은 시부모인 김모씨와 50대 후반인 그의 부인 박여사는 요즘 첫 손주를 볼 마음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다. 2년 전에 결혼한 아들네에서 얻는 손주라 말하자면 친손주가 되는 셈이다. 예비할머니인 박여사는 아들네가 딸을 낳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은 딸이 없고 아들만 둘을 키운 터라 귀여운 손녀를 키우면서 아기자기한 대리만족을 해보고픈 마음이 있었다. 요즘은 임신 5개월쯤에 태아의 성별을 알 수 있어서 곧 성별을 알게 될 텐데, 아무쪼록 딸 손주이길 바랐다.그러면서도 남편은 대부분의 중년 이후 남자가 그렇듯 장손으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