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배우 김태희 3...꿈을 꿀 수가 없었던 시절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2.27 15:11
  • 수정 2023.12.27 20: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겨울 얼음장처럼
마을 강을 흘러가다
그만 덜컥, 덫에 걸렸나 봐요
수많은 날을 울었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잘못이 없어요
세상이 나를 이렇게 몰았어요
마치 우리 속의 갇힌 짐승처럼 말이에요

- ‘나는 잘못이 없어요’, 윤재훈

배우 김태희. 촬영=윤재훈 기자<br>
배우 김태희.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졸업을 하고 마땅히 할 것이 없어 무작정 군대에 갔다. 그러나 군대에서도 막상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혼자 울면서 너무나 서러웠지만,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엄마가 없을까,
왜 계모만 있고, 왜,
저런 사람하고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어느덧 군대 말년이 되어가니 이제 나가서 무엇을 할지 하는 생각이 밀려왔는데, 막막했다. 별다른 꿈도 없고, 그렇다고 함께 고민할 상대도 없고, 이 세상은 그에게 파도가 몰아치는 막막한 섬 같았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어릴 때 깡패들이 운영하는 밤업소에서 알바해보고 소주방 같은 데서 서빙하거나 삐기도 해봤지만, 이제 그런 일이 싫어졌다. 당시에는 내가 덩치가 커서 몽둥이 맞아가면서 불법으로 웨이터도 하고, 친구들하고 번 돈으로 집에도 안 들어가고 맛있는 것 먹고 세월을 보냈었는데, 이제 와 보니 마땅하게 할 게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서 마땅히 갈 때는 암흑가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이제 더 이상 실망감을 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빨간 줄을 긋지 말자. 최소한 싸움은 하더라도 나쁜 짓은 하지 말자, 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싸울 때도 무기도 안 들고 주먹으로만 하였다. 또한 상대방이 무기를 들더라도 그는 들지 않았다. 그래서 뒤에 합의 볼 때도 가중 처벌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

아버지가 쫓아다니며 다 합의를 보고, 어긋나려고 할 때마다 타일러 주셨다. 그 정성 때문인지 다른 아이들이 도둑질도 하였지만, 그런 데는 참여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그런 짓은 분명히 나쁜 짓이고 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가르침을 주셨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사람을 해(害)하고도
나는 죄가 없다고 항변하는,
청년의 눈빛
세상의 끝이 그를 거기까지,
몰았을 것이다

어린 날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 옆에서 하루를 울었어요
아버지는 어디로 간지도 몰라요
도무지 기댈 데라곤 없었어요
세상은 유리창에 낀,
찬 서리 같았어요

어느 겨울 얼음장처럼
마을 강을 흘러가다
그만 덜컥, 덫에 걸렸나 봐요
수많은 날을 울었지만
곁에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잘못이 없어요
세상이 나를 이렇게 몰았어요
마치 우리 속의 갇힌 짐승처럼 말이에요

이것이 제가 본 세상이어요
어린 날 제 가슴 속에 만들어진,
세상이라고요
세상은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보여요

- ‘나는 잘못이 없어요’, 윤재훈

단원들과. 촬영=윤재훈 기자
단원들과.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나 커 갈수록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더 간절해 왔다. 그러면서 내가 운동을 잘하고 몸을 잘 쓰니까, 액션 배우라도 되어서 내 이름을 알려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학원에 갈 돈이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우연히 연극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한 번 배워보자,
내가 버틸 수 있다면 밑바닥부터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대학 갈 돈도 없고 성적도 안 되고 거기다 수능도 안 보았으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것이 전부였고, 그것은 대학로 가서 극단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연기를 해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한 번도 해본 적도, 배운 적도 없고, 더구나 남 앞에 서본 적도 없으니 너무 못하는 거였다.

연극 배우 시절. 촬영=윤재훈 기자
연극 배우 시절. 촬영=윤재훈 기자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인지 그는 여자애들을 보면 일단 부담스럽고,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도 동갑내기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내가 학교 짱인데, 친구들한테는 그렇게 무섭고 항상 잘 안 가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친한 애들을 빼고는 거의 반말을 안 하고, 여자는 항상 멀리 있는 존재였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처럼 생각되었다.

만약 그때 내가 계모에게 복수하는 심리라도 있었다면, 여자애들을 굉장히 괴롭혔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졌을 것이라고. 그의 내면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있었지만, 특히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짙게 배어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놈이 되기 싫었는데, 나름 잘 선택한 것 같다.

다른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그런 곳에 빠져서 여자애들을 때리고, 쉽게 만나서 서로 자고, 버리고, 이혼하고,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다.

또한 그에게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꿈은 없었지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뭐가 되든 큰사람이 되자, 그래서 엄마한테 꼭 나라는 존재를 알리자, 그게 삶의 목표가 되어갔다.

깡패 두목이 되든, 또 다른 뭐가 되든, 아니면 운동을 하던지, 장사를 하던지, 나쁜 일은 하지 말고 큰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었는데, 여기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압구정 바텐더 시절희. 사진=김태희 제공
압구정 바텐더 시절희. 사진=김태희 제공

극단에 가서 자신감을 얻어야 하는데 그냥은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양재동 근처에 살면서 아는 형과 강남역 근처에 바라는 데를 처음으로 같은데, 그 안에서 마술하면서 칵테일을 만들며, 손님들하고 여유 있게 이야기하는 바텐더가 멋있게 보였다. 그때가 2000년도 초반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바텐더가 전문직으로 인기가 많아서 준연예인 취급을 받으며,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때 드는 생각이 여기서 3년만 서빙을 해보고 바텐더 일을 잘 해내면, 그때 자신감을 가지고 대학로 극단에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해서 자격증을 따고 손님들을 케어할 정도가 되었다.

위스키도 잘 만들어 내고 성향이 다른 다양한 손님들도 케어할 정도로 넉살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텐더는 누구하고도 이야기할 정도로 잡다한 지식이 많아야 하므로, 뉴스나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이 세서 남과 부딪치기 쉬웠으며,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으면 절대로 굽히지는 않았다. 내면에는 항상 나는 저 사람과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재하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구와 싸울 때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갈 데가 없으면 징역 가면 된다며, 특별하게 버릴 것도 없으니까 그냥 끝을 보고 싸운다. 그래서 웬만한 애들은 자신과 시작점에서부터, 깡에서부터가 다르다. 그 애들은 부모가 있고, 돈도 있고, 또 다른 뭔가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