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방화동에 내린 '풀꽃향기' 내음...흰샘‧진달래 부부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1.30 10:30
  • 수정 2023.12.0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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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있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 어려운 이에게 나누는 사람이 있다. 나눔의 기쁨을 아는 ‘풀꽃향기’의 회장 부부, 흰샘과 진달래(별칭) 씨다. ‘풀꽃향기’라는 이름처럼, 풀꽃같이 은은하게 향기를 내며 봉사하고 싶다는 이 부부를 직접 만났다.

'풀꽃향기'는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민 모임이다. 대부분의 주민이 방화11단지 내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는 동네에, 풀꽃향기가 아름답게 퍼지고 있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취지로 마을을 보살피는 '풀꽃향기' 때문이다.

풀꽃향기에서는 회원끼리 서로 별명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을 ‘흰샘’, ‘진달래’로 각각 소개하는 부부에게 구태여 실명을 묻지 않았다. 풀꽃처럼 살아가려는 부부의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진달래(왼쪽), 흰샘(오른쪽) 부부. 촬영=심현주 기자
진달래(왼쪽), 흰샘(오른쪽) 부부. 촬영=심현주 기자

절망의 순간에도, 감사하는 마음

남편(흰샘)이 의류 사업을 하다, IMF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쓰러지게 됐고,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그 후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진달래

인생의 고난이 찾아왔던 순간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진달래 씨였다. 뒤이어 흰샘 씨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쓰러졌는지,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성경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되었다. 신학도로서의 삶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흰샘

비록 몸을 움직이는 것은 불편해졌지만, 흰샘 씨의 학구열은 그 무엇도 막지 못했다. 흰샘 씨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먼 곳까지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니거나,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도서관 앞에 있던 흰샘 씨에게 사회복지사가 다가왔다.

복지관에서 ‘마을은 학교’라는 강좌를 열었다고 했다. 그저 자리를 채워달라기에 강좌에 참여했다. 그런데 막상 강좌가 끝나고 나니, 이대로 끝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배움은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좌에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 모임을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 흰샘

회의 중인 풀꽃향기 회원. 사진=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제공
회의 중인 풀꽃향기 회원. 사진=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제공

그렇게, 마을 주민의 모임인 ‘풀꽃향기’가 시작됐다. 흰샘 씨는 ‘풀꽃향기’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베풀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

예전에는 복지관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정부 지원을 받아 살고는 있지만, 복지관을 통해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부 지원과 복지관에서 주는 도움은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동네에는 외롭고 힘든 고령자가 많다. 교회 봉사만큼이나 여기에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베풀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진달래

일회성에 그치는 일보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 풀꽃향기의 모토이다. 풀꽃향기에서는 계절마다 다양한 봉사를 한다. 처음에는 ‘뜨락제’라고, 복지관 앞마당에서 윷놀이 행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풀꽃향기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비를 각출해, 윷놀이 상품을 샀다. 그런데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복지관에 행사 도움을 제안했다.

-흰샘

첫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풀꽃향기 회원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까지 참여해, 성대한 마을 잔치가 되었다. 최근 3년간은 코로나로 개최하지 못했지만, 뜨락제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4월이면 열리는 ‘풀꽃향기의 대표 행사’가 되었다. 뜨락제를 통해, 서로 배타적이던 방화11단지의 동네 분위기도 점차 해소되었다. 그리고 동네 주민이 하나 둘 씩 풀꽃향기를 통해 봉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봉사의 향연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전통된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풀꽃향기 모습. 떡국떡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모인 모습. 올상 텃밭에서 일하는 풀꽃향기 회원 모습. 텃밭에 물을주고 있는 진달래 풀꽃향기 회장. 사진=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제공

풀꽃향기는 계절마다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새해가 되면 가래떡을 뽑아 떡국떡을 만들어 나눈다. 봄이 되면, 뜨락제를 연다. 추석에는 명절 음식을 나누고, 무뎌진 칼을 갈아주는 ‘빛나리’도 진행한다. 이는 고령자가 무딘 칼을 사용하다가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겨울에 접어들면 김장 김치를 만들어 나눈다. 그리고 1년 내내 텃밭을 가꾸어, 텃밭에서 나는 채소를 풀꽃향기 회원뿐만 아니라 동네 고령자에도 나눠준다. 특히 풀꽃향기 회원이었던 ‘해당화’가 이사를 면서, 큰 항아리가 생겼다. 그 항아리를 활용해서 전통 된장과 조선간장을 만들어 판매도 한다. 판매 수익금은 다시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

진달래 씨는 6년간 회장을 한 흰샘 씨를 뒤이어, 풀꽃향기의 2대 회장이 되었다. 부부는 봉사는 언제나 기쁜 일이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이제는 김장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나랏미 받은 쌀이 남았는데 가져가서 가래떡 행사에 사용하라는 둥 주변에서 먼저 얘기해 온다. 그렇게 받은 쌀로 가래떡을 만들어, 떡국떡을 나눠준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한다. 얼마전에 김장하고서 김장 김치를 나눴는데, 김치만 있어도 어르신들은 밥을 먹을 수 있다며 또 좋아한다.

그럴 땐 정말 봉사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나누면서 산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진달래

우리는 양천구에 있는 산돌교회에 다니면서 봉사를 오래 했다. 교회에서도 현재 풀꽃향기에 후원을 해주고 있다. 쌀로 가래떡을 만드는 데에도 쌀 양이 많으면, 그만큼 돈이 제법 들어간다. 이번에 모인 쌀이 200kg였는데, 떡을 뽑는 데만 3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김장을 할 때에도 여러 재료가 필요하다. 보통은 풀꽃향기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충당을 하지만, 모자라는 경우에는 후원금이나 복지관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흰샘

노노(老老)케어의 삶

동네 고령자에게 한 끼 대접하는 풀꽃향기 회원. 사진=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봉사는 보람된 일이지만,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진달래 씨도 70대 고령자이고, 흰샘 씨 또한 고령자이면서 장애인이기에, 이 부부에게 봉사는 분명 힘든 일이었다.

물론 힘이 든다. 그렇지만, 80대, 90대 어르신이 식탁도 없는 방에 홀로 앉아 억지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 봉사할 때는 힘이 들면서도, 그런 어르신을 생각하면 계속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달래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아내가 몸을 써야 하는 일을 맡아서 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2대 회장이 된 것이다. 둘이 10여 년간 풀꽃향기를 이끌어 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봉사하면 참 보람된 일이기에, 지금껏 할 수 있었다.

-흰샘

마지막으로 흰샘과 진달래 씨는 풀꽃향기의 차기 회장을 찾는 것이 현재의 숙제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랑으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도 타인을 위해 봉사를 하고, 그 보람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부부의 노년은 자랑할 만한 삶이었다. 받은 것이 있다면 나눠주려 하고, 삶의 역경과 고난에도 그저 감사하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감사하는 부부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풀꽃향기 사업을 지원하는 김수재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25년째 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분을 만났지만, 이 두 분을 만난 것이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축복이다. 마을에서 모범이 되는 분들이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내가 신바람 나는 사회복지를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함께 해 주는 협력자이자 동지이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존경한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잔잔하고 은은하게 방화11단지를 향기롭게 할 흰샘, 진달래 씨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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