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배우 김태희 4...잊을 수 없는 스승을 만나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12.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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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 들린다
뿌리들이 힘차게 땅을 밀고
내려가는 소리, 가열차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햇물 소리가 경쾌하다

돌, 돌, 돌, 흐르는
해동의 물소리

- ‘봄이 오고 있다’, 윤재훈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배우 김태희는 어린시절.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는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가까운 사람이 “나는 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라고 해도 그것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빈말과 같은 것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배우 김태희는 어릴 때부터 너무 독이 강해 맨날 사람들하고 부딪히는데, 바텐더 생활하면서 좀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님들하고도 부드럽게 지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에게도 젊은 팬클럽까지 생겼다. 압구정 로데오 거리까지 자신을 보러 오는 젊은 그룹이 생기고,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함께 술도 마시고 하는 정도까지 인기도 누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랫동안 염원하던 대학로로 오게 되었는데, 마침 첫 역이 바텐더 역할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기를 좀 못해도, 기술로 커버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연습하는 것을 보신 김민호 연출가가 자신의 극단인 ‘청년 수업’으로 오라고 하였다.

선생님은 러시아 쉐푸킨 연극학교 연극영화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신 연출가로, 그 밑에서 제대로 연극을 배울 수가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하에 조연출을 하거나 음향도 보고, 다양한 것들을 체험하며 약 2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지금 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는 그 기간 연극을 배우기도 했지만, 세상을 살아 나가는 인성과 책임감을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피운 담배도 선생님이 끊으라 해서 끊었다. 너는 야성을 좀 고쳐야 하겠다는 인간적인 말씀도 해주셔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 사회로 나와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배우가 갖추어야 할 기초적인 인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자신의 연극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선생님은 셰익스피어와 학교를 나오신 러시아 작품을 주로 하였다. 그 중 ‘미친 햄릿’이라는 작품도 있었는데, 흥행은 잘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슬하에서 떠나있지만, 항상 그 은혜를 잊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지금은 동신대 교수로 있는 것 같다.

한군데에서 2년 정도 생활을 하고 나니 젊은 가슴에 답답함이 몰려온 모양이다. 선생님은 학교 일로 바쁘시고, 자신은 어린 나이에 무대에 빨리 올라가고 싶은데, 그런 기회들이 잘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 밑바탕에는 운동에도 자신이 있고 하여 단역이나 깡패 역할을 하더라도 영화 쪽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하여 선생님이 내 밑에서 2년만 더 극단 일을 배우면서, 자신의 공연도 올려준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일들도 있고, 극단을 떠나게 되었다.

선생님이 여러 번 다시 오라고 다른 단원들을 통해서도 말하였지만, 가지 않았다. 혼자서 계속 다른 오디션에 응모하고 떨어지고 하면서 세상과 연기를 배워나갔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깊어져 갔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배우 생활은 많이 힘이 들었다. 더구나 마땅하게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들풀처럼 커 나가야 하는 야생의 세계는, 혼자 감당해 내기 더욱 버거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 생각이 났다. 러시아 위대한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수업’과 몇 권의 교재였는데, 그때는 보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손이 가더란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는,

연기란, 누군가의 말에 의해서 배우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그 후 유럽 쪽 영화나 독립영화, 드라마들을 엄청나게 보았는데, 어떤 날은 눈이 충혈되도록 종일 보았다. 또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를 악물고 모든 것을 참아냈다.

배우로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도 받고 싶고, 또 도울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도 싶다. 그리고 엄마를 외부의 상황 때문에 정 만날 수 없다면, 자신의 존재라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엄마가 ”저 아이가 잘 컸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슬하에 다른 아이들이 있다면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엄마가 멀리서라도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며 하는 그런 바람뿐이다.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해주신 분이라. 또한 주위에서 자신이 엄마를 닮았다고 해서 더욱 그립다.

그러다 얼마 전에 자신이 엄마를 너무 보고 싶어 하니 사촌 누나가 사진을 주었는데, 눈, 코, 잎이 딱 자기 얼굴이었다 처음 봤는데 자신이 너무 많이 닮아 펑펑 울었다. 그러면서 아마도 혈육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었던 자신이 생각났고, 그래도 아버지의 보살핌 덕분에 내가 이렇게 클 수 있었다는 안도감도 들었고, 그런 모든 것들이 배우로서 나에게 큰 자산이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동료와 함께. 촬영=윤재훈 기자
동료와 함께. 촬영=윤재훈 기자

어릴 때 그 서러움과 아픔,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그 엄마와의 기억이 너무 없어 원망도 제대로 못 했던 시절, 그런 것들이 이제는 자신의 감정선이 되어 배우로서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처절한 아픔이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짙게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감정들을 승화시켜 더욱 연기에 접목하고 싶다.

나에게는 아픔이지만 좋은 자양분으로 삼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잊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 아직 배우로서 큰 영향력은 없지만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다. 이제는 불혹(不惑)을 넘긴 그의 연기 인생에, 머지않아 찾아올 봄날을 기대한다.

멀리서 봄이 오는 소리 들린다
뿌리들이 힘차게 땅을 밀고
내려가는 소리, 가열차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햇물 소리가 경쾌하다

돌, 돌, 돌, 흐르는
해동의 물소리
아무리 얼음장들이 냉혈하게
강을 감싸 안아도
청둥오리의 가열한 날갯짓이
봄을 부르고 있다

- ‘봄이 오고 있다’, 윤재훈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같은 이름의 유명한 배우가 있어 그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어려서 오디션 볼 때는 같은 이름의 배우가 있어 물어보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력으로 그 사람을 뛰어넘고 싶어, 이제는 자신에게 더욱 큰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연기자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더 잘 기억해 줄 수 있어 좋다.

그녀는 드라마에 많이 나온 연기자라, 영화배우 김태희로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많은 사람이 나를 잘 모르지만 연기로서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아직은 유명 배우가 아니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아주 힘들다. 약간의 수입은 있지만 꾸준한 수입이 부족하기 때문에, 바텐더 기술을 이용하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일도 하고 있다.

어릴 때 누군가는 배우가 안 되겠다고 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고, 지금은 그런 것들이 더욱 큰 자극제가 된다. 그의 앞길에 붉은 카펫을 열리기를 기도해 본다.

연습 중에, 촬영=윤재훈 기자
연습 중에, 촬영=윤재훈 기자

지금은 K-콘텐츠와 한국 영화산업이 세계적으로 많은 각광을 받고 있어, 한류가 뜨겁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배우들도 상을 많이 받는 추세다. 거기에 우리 영화가 끊임없이 세계 무대에서 초대받고 있다. 따라서 배우들이 더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힘들 때도 배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아 올 수 있었다. 큰 배우가 되어 꼭 어머니를 만나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만약 그 꿈을 포기하면 자신이 커다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고 한다.

좀 돌아가는 듯해도, 늦은 듯해도,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다.
꼭 스타가 되지 못하더라도,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다.

서른두세 살 때까지도 빛도 안 보이고 포기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갈수록 깊어지고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은데, 이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어머니를 만나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냥 장사나, 사업을 조그맣게 해서 어머니를 만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꼭 큰사람이 되어서 자랑스럽게 살았다고, 어머니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 포기를 못 했다.

얼마 전에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가 자꾸 빠졌다. 배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얼굴 때문에 어려운 사정에 모발 이식을 하게 되었는데, 시술비가 천만원이 나왔다. 그런데 고맙게도 배우라고 의사 선생님이 칠백만원에 해주었다.

그의 머리를 가만히 올려다보니 탈모의 흔적은 모르겠다. 그는 그때의 결정을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것 같다.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br>
배우 김태희. 사진=김태희 제공

자신이 집에서 아버지나 형, 새엄마에게 인정도 못 받고 온갖 구박을 겪으면서도

집은 나가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연기란, 엘리베이터처럼 한 층 한층 올라가듯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누군가 추천해 줘도 자존심이 상해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고 싶었고, 또 누군가가 나중에라도, 내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되었다는 그런 말을 듣기 싫었다. 아직도 연기에 자신감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 원천에는 항상 어머니가 자리 잡고 있다. 10년 정도 배우 생활을 하고 나니 욕심이 더 커지더란다.

나같이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부모가 없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도 용기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래서 더욱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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