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디아스포라와 다문화... 꿈꾸는 비관주의자, 서경식 작가에 묻다
[기자수첩] 디아스포라와 다문화... 꿈꾸는 비관주의자, 서경식 작가에 묻다
  • 고석배 기자
  • 승인 2022.05.2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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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좀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로 diaspora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조선 사람들 역시 과거 한세기 동안 식민지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군사정권에 의한 정치적 억압 등을 경험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뿌리의 땅인 한반도로부터 세계 각지로 이산했다.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총 수는 현재 대략 600만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바깥’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그것은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의 틀 바깥에서 살아온 나에게, 자연적이고 필연적이기도 한 감각이다. (...)그때까지 일본이라는 ‘외부’에서 살아온 나는 이미 마흔이 되어 있었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中에서>

(개항장 거리, 인천항에서 최초로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하와이로 출발했다.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정현종 詩 ’방문객‘을 걸어둔 매장을 가끔 발견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로 시작하는 시 한 구절로 그 매장의 주인은 아마도 손님을 ‘환대’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게한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집들이’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손님으로서 타인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도, 주인으로서 자신의 공간에 타인을 ‘환대’해 맞는 것도 불편한 세상이 됐다. 경쟁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환대’는 이미 사문화된 단어가 됐다.

(제10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개막식. 촬영=고석배 기자)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서경식

지난 5월 20일, 인천 개항장 거리 ‘환대의 광장’에서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개막되었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우리나라 최초로 이민이 시작된 도시 인천에서 2013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영화를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차별받는 소외 받는 이들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함께 공감하고자 기획된 영화제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 디아스포라 관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며 재일동포를 비롯한 600만 한국 이주민과 한국에 들어온 200만 재외 이주민 그리고 전세계를 떠도는 난민과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심도 깊게 짚어왔다.

(디아스포라영화제 개막식 사회 조민수, 김환. 촬영=고석배 기자)

특히 올해에는 이 영화제 초창기부터 주춧돌 역할을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8, 9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멀리서만 응원했던 서경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가 3년 만에 방문했다. 그는 축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며 "민간인 학살등 전쟁의 무자비함과 인권이 말살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겟냐?"는 화두를 던졌다. 그럼에도 자신은 현실의 잔혹함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그리고 잃어버린 이상의 아름다움을 상기하기 위해서도 영화는 맡아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고,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축사하는 서경식 작가. 촬영=고석배 기자)

서경식은 누구인가?

1971년 박정희-김대중이 팽팽히 맞선 대통령 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대형 간첩단 사건이 터진다. 소위 재일유학생형제간첩단사건이다. 일본의 차별을 피해 고국으로 유학온 재일교포2서승은 서빙고 분실에서 고문받다, 자신이 고문에 못 견뎌 진실이 왜곡될까 두려워, 수사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경유 기름을 몸에 끼얹어 분신을 시도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은 서승에 비해 7년 형의 비교적 짧은 형을 선고 받은 동생 서준식은 만기를 채웠음에도 1975년에 제정된 '사회안전법'이 소급 적용되어 10년을 더 감옥에서 보냈다. 반성문을 거부한 그는 복역 중 51일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 두 형제의 바로 밑 동생이 서경식이다. 와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지만 두 형들의 석방 운동을 위해 그는 진학도 포기하고 한국과 일본을 기약 없이 왕복했다. 19805월 고국 광주에서 총성이 울리던 날, 자식들의 억울함을 끝내 못 풀고 어머니마저 눈을 감는다. 당시 서경식이 바라보던 세상의 저녁 하늘은 온통 피고름색으로 보였다며 그 당시의 감성과 사색으로 쓴 글이 후에 한국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저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이다. 그 후 그는 왕성한 저술 활동으로 교수나 사회운동가 보다 작가로 더 자리매김 된다.

<소년의 눈물>은 일본 에세이클럽상을 받았으며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2022, 그의 정년 퇴임을 기념해 한국과 일본에서 서경식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아온 18인의 지인들이 그에 관한 문집을 냈다. 서경식 다시 읽기이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 개개인마다 다르다. 18인의 필자가 저마다의 목소리로 그에 대해 말하지만 서경석을 디아스포라와 분리해 논할 수는 없다

(공연장 밖 디아스포라 도서 전시. 촬영=고석배 기자)

끝나지 않은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 기행은 그의 저서 중 빼놓을 수 없는 한권의 책이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 ‘~를 넘어 뿌리다에서 유래 됐다. 이후 유대인들의 유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다른 민족들의 국제이주, 난민, 이주노동자,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생소한 단어가 한국 사회에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퍼지게 된 데에는 서경식의 역할이 적지 않다.

31개국 63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이번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었다. 극단 서울괴담이 서경식 작가의 에세이 <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연극적 해석으로 각색해 무대에 옮겨 놓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각색은 아니다. 제목은 디아스포라 기행을 가져왔지만 내용은 서경식의 다른 책 언어의 감옥에서’, ‘난민과 국민 사이’, ‘경계에서 춤추다’,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등에서 에피소드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서경식 역할로 분한 내레이터가 인생의 여러 갈래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미를 찾아 여행을 안내한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캐나다를 거쳐 홍콩행 비행기도 타고,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에서 갈라진 바스크 민족의 현실과 마주치며 사우스코리아와 노우스코리아의 경계로 관객을 몰아넣기도 한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장면. 사진=인천시 영상위원회 제공)

다양한 매개 장치를 동원한 21세기 작은 집체극

경계에 선 한 인간의 자화상을 연극으로 그려내기에는 한가지 장치의 연출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평소에도 대도시 속 다양한 주변인들의 존재에 주목해온 극단 서울괴담의 연출가 유영봉은 영상, 사운드, 오브제 등의 다양한 매개 장치들을 작품 속에 적극 활용했다. 내레이션으로 힘있게 내용을 끌어가면서도 간혹 인형이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참혹한 현실을 과감히 우화로 만들어 숙제를 던지기도 한다. 벽에 구멍을 내어 소통과 탈출의 창을 낸 장면에선 글로는 한계가 있었던 경계의 안과 밖 어느 한쪽이 아닌 디아스포라의 사이 공간(in-between space)’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또 침대 위에서 말발굽소리를 내며 택시 장면을 표현한 연출에선 소격효과(낯설게 하기)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은 한 편의 작지만 웅장한 집체극이었다. 문학을 원작으로 하면서 낭송 같은 나레이션으로 극을 서사적으로 풀어나가고, 캠코더를 들고 나온 배우는 회화 같은 사진과 무성영화를 만들어 냈다. 소품으로 만들어 내는 음향과 음악 또한 정교했으며 실시간으로 캠코더에 찍혀 블루투스로 스크린에 전송되는 것은 21세기에나 가능한 또 다른 집체극의 형태였다. 디지털 기술의 차용에 놀라웠기보다 그 씬과 씬에 비친 조명의 정확성에 연출자의 섬세함과 배우들의 연습량을 가늠할 수 있어 놀랐다. 두 명의 수화배우의 열연이 없었다면 또 얼마나 섭섭했을까? 수화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 스크린에 소리자막을 넣는 친절한 디테일은 배리어프리 연극을 넘어 유니버설 연극의 모범이었다.

('냉소주의자가 아닌 정직한 비관주의자' 서경식 작가. 촬영=고석배 기자)

냉소주의자가 아닌 정직한 비관주의자

공연이 끝나고 원작자 서경식은 별 기대없이 독백처럼 쓴 글을 15년이나 지난 뒤에도 독자들이 공감해주고 연극으로까지 만들어 주어 작가로서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연극으로 말미암아 디아스포라인의 보편적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한번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고국에 방문한 그의 근황을 묻자 여전히 우울한 비관주의자로 살고 있다. 하지만 비관주의자도 필요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야 말로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지식인이나 예술가, 문필가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진실을 직시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강조한다. 그는 스스로를 우울한 비관주의자라 칭하지만 그를 아는 주변인들은, 끊임 없이 갈등의 현장을 찾고 희망을 이야기 하는, 그를 정직한 비관주의자라 한다. 디아스포라 기행이 연극화 되도록 극작을 맡은 이종찬 작가는 그를 냉소주의자가 아닌 비관주의자라고 그의 옆에서 부언했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출연진 왼쪽부터 이종찬, 서경식, 유영봉, 김향수리. 촬영=고석배 기자)

건국학교와 조선학교 그리고 괴담

주연을 맡아 서경식의 방백을 소화해낸 배우 '김향수리'는 재일조선인 3세다. 그녀에겐 디아스포라 기행이 첫 출연 연극이다. 직업은 따로 있다. 전통연희 춤꾼이다.

처음엔 연극을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워 했는데 이 연극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의미 있고 감사했다. 제주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에 들어와 아버지를 낳고 그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연기했지만 문득, 3세인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고 깨달았다며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어릴 적 민단 단체의 학교인 오사카의 건국학교에 다녔다. 초중고가 함께 있는 민단 단체인 건국학교는 일본에 4개가 있다. 초등학생 시절엔 조선학교를 초대해 함께 축제도 하고 씨름도 했던 즐거운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제일 조선인 사이에서도 한때 고국의 통일 분위기로 인해 잠시나마 조총련과 민단의 벽이 허물어진 적도 있었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김향수리 배우. 촬영=고석배 기자)

연극을 연출한 유영봉은 서경식 작가를 공연이 끝난 후 비로소 처음 만났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초현실적이라며 소회를 밝힌 그는 일본에서 미술대학을 다녔다. 미술대학은 재일동포 민족학교인 조선대학교와 붙어있었다. 그 당시 민족학교에 얽힌 괴담이 하나 있었다 한다.

조선대학생과 친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들과 어울리다 어느 순간에 사진이 찍히면 그 사진에 김일성 사진이 같이 들어있다고 했지요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재일조선인 친구도 사귀며 룸메이트도 하며 지냈지만 그와 엮인 한 사건으로 인해 멀어졌다며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그 친구가 생각났다고 먹먹해 했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유영봉 연출가. 촬영=고석배 기자)

호칭마저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서경석은 차별도 시대에 따라 변형된다고 전한다. 식민지 시대에 강요된 이주를 한 재일조선인 1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세대 2세와 손자세대 3세가 느끼는 차별의 강도와 행태는 다르다. 또 재일조선인 3세는 한국의 MZ세대가 부모의 생각으로 가늠 할 수 없듯이 생각하는 방법과 방향도 많이 다르다. 마침 형 서승이 투옥되던 해에 태어난 재일조선인3세 서경식의 조카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재일조선인이라는 호칭과 재일한국인이라는 호칭의 갈등속에 요즘 세대는 자이니치-코리언 이란 말을 자주 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일순간 숨길 뿐이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NHK에서 우리말 강의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조선어공부라는 프로그램명이 한국어공부로 바꾸라는 압박을 받는다. 결국 프로그램 제목은 안녕하세요가 되었다. 우리는 호칭마저도 제대로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처지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멋들어진 외국어라 쓴 것도 아니고 상황을 도피하려 쓴 것도 아니다. 사실 디아스포라에는 서구 중심적인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학술용어로만 디아스포라를 쓰는데 이에 저항 하고 싶었다. 그들이 학술적으로 관심 같는 유대인만이 디아스포라가 아니고 조선인 그리고 미얀마 난민, 어제 개막 영화 빠마에 나온 방글라데시 결혼이주민 모두 디아스포라이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재일 조선인 문제를 떠나 좀 더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다.”

(연극 '디아스포라 기행' 간담회. 촬영=고석배 기자)

디아스포라와 다문화

디아스포라와 다문화는 유사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칭점에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디아스포라가 600만 한국 밖 한국인을 말한다면 다문화는 200만 한국 안 외국인을 말한다. 아직도 우리 땅을 떠나 다문화인으로 사는 우리 민족이 우리 땅에 들어온 디아스포라인보다 많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문화라는 호칭을 어느 순간 차별적 언어로 만들었다. 마치 재일조선인의 치마저고리 교복이 폭력의 타깃이 되듯. 그의 다문화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다문화'라는 말을 쓴지 20여 년 정도 되었는데 처음에는 무척 진보적인 뜻이 있었다. 사람을 국가로 규정하지 않고 문화로 규정 하는 것은 대단한 시도였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가치가 있다. 만국기의 국기에서 김치 같은 음식이나 민족의상 등으로 발전은 했으나 디아스포라에게는 그런 문화적 기억마저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문화'라는 용어는 모든 걸 채우고 있지 못하다. 근대 이후, '인종' 대표에서 '국가' 대표로 '국가' 대표에서 '문화' 대표로 변화해 왔다. 이제 '문화' 대표를 뛰어 넘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상징은 직조. 촬영=고석배 기자)

다양성은 잃고 차별만 남은 ‘다문화라는 용어, 선별적으로 바꿔나가야 

서경식은 다문화로 표현되고 있는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다문화라는 용어의 도입은 사실 대중 사회에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정부의 행정용어로 시작되었다. 그러다보니 애초 다문화라는 철학적 의미와 상관 없는 곳에도 무분별하게 적용하였다. 어느덧 형용사적 의미에서 명사적 의미로 바뀌고 마침내 분리와 차별의 대명사가 되었다. 더 이상 곪기 전에 대책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딱 들어 맞는 대체어를 성급히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런 말은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사건 사고가 일어난 뒤에야 법이 만들어지 듯이 언어도 삶을 앞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언어에도 생로병사가 있기 때문이다. 대체어를 찾는 문제로 사회적 소모를 할 필요는 없다. 지킬 건 지키고 바꿀 건 바로 바꾸어 나가면 된다.

(개항장 거리 '환대의 광장'에서 버스킹을 즐기는 시민들. 촬영=고석배 기자)
(개항장 거리 '환대의 광장'에서 버스킹을 즐기는 시민들. 촬영=고석배 기자)

환대의 집들이

우선 ‘다문화센터같은 상징적으로 대명사화 한 곳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 ‘이주민 센터이민센터등 전세계 보편적인 언어가 있다. 또 '세계시민'이란 용어도 나쁘지 않다. '다문화'를 모든 영역에서 지울 필요는 없다. '다문화'라는 다양성의 철학은 그대로 살려 학술용어로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 현재도 다문화라는 용어의 편견이 학술 연구를 쓸데없이 저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일단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는 '다문화'부터 '이주민'이나 '세계시민'으로 고쳐 나가자.  그러다 부분적으로 참신한 용어가 나오면 부분적으로 대체하면 된다. 대체어도 굳이 하나일 필요 없이 다양해야 한다. '다문화'를 말하면서 막상 '다문화'라는 용어는 다양성을 잃고 단순화 되어왔다. 정부주도이기 보다 민관주도이어야 한다. 언어도 생물이기에 위에서 강압한다고 복종하지 않는다. 밑에서 민중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라 태도이다. 근대의 역사 속에 국가를 잃고 민족만 남은 우리가 디아스포라가 되었듯이 우리도 디아스포라를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되물을 필요가 있다. ”환대의 집들이 준비가 되어있는가?“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
혈통''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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