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아홉 살 소년, 그리움을 시작(詩作)하다...영화 ‘약속’ 시사회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0.18 14:30
  • 수정 2023.10.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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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시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는 민시우 군, 사진=필앤플랜 제공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는 민시우 군. 사진=필앤플랜 제공

[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영화 ‘약속’은 천국의 엄마에게 보내는 아홉 살 소년의 아름다운 러브레터이다. 소년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시를 적고 엄마와의 영원한 만남을 약속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약속’의 민병훈 감독은 5년 전 폐암으로 투병하던 아내 안은미 작가를 위해 제주로 이사했다. 그러나 아내는 곧 세상을 떠났다. 엄마를 잃은 아들 시우는 그 당시 유치원을 갓 졸업하는 나이였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해, 시우는 1년을 꼬박 울음으로 보냈다.

영화 '약속' 포스터. 사진=필앤플랜 제공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영화는 엄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소년이 엄마 뒤를 따라간다. 흑백영화로 시작되는 이 장면은 소년의 기억 속 엄마이자, 어쩌면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의 모습이다.

곧이어 '엄마가 없는 게, 하나도 좋은 게 없다'며, 소년이 울부짖는다. 그런 아들을 꼭 안아주는 소년의 아빠. 엄마가 병으로 떠난 뒤,  아들 시우와 아빠는 그 빈자리를 슬픔으로 채우고 있다.

슬픔을 시로 승화

그러던 어느 날, 시우는 비 내리는 풍경을 보고 시를 적는다.

비는 매일 운다
나도 슬플 때는 얼굴에서
비가 내린다

그러면 비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걸까?
비야 너도 슬퍼서
눈물이 내리는 거니?

하지만 비야 너와 나는 어차피
웃음이 찾아올 거야
너도 힘내

- '슬픈 비' 민시우

일상 속 시우는 여느 초등학생처럼, 웃으면서 밝다가 한순간 울적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서 아빠와 함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는다. 때로는 아빠 품에서 하염없이 울기도 한다. 그런 시우에게 아빠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시를 쓰는 것을 제안한다.

바다를 거꾸로 보면서 엄마를 떠올리는 민시우 군, 사진=필앤플랜 제공
바다를 거꾸로 보면서 엄마를 떠올리는 민시우. 사진=필앤플랜 제공

시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던 시우였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시에 진심을 잘 담아낸다. 겨울날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서, 바다 위에 떠 있는 해를 보면서, 때로는 엄마가 좋아하던 숲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소년의 아빠이자 영화감독인 민병훈 감독은 우연히 발견한 시우의 시를 통해 영화의 영감을 얻는다. 그렇게 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약속’은 엄마와 헤어지게 된 아들과 아내와 이별한 아빠인 자신의 1년여의 세월을, 제주의 사계절 풍광과 함께 아름답게 담은 작품이다.

슬픔을 공유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상 다큐

엄마가 좋아하던 숲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와 아들, 사진=필앤플랜 제공
엄마가 좋아하던 숲에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와 아들. 사진=필앤플랜 제공

영화는 슬픔을 덤덤하게 담아낸다. 시우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것처럼, 민병훈 감독도 아내의 빈자리를 느꼈을 테지만 쉽사리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제주의 자연에 몸을 맡기며 바람 속에서, 숲속에서, 바다에서 아내와 함께한 시간을 생각한다. 민병훈 감독은 제주 자연을 영상으로 담아 내면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한다. 아들 시우 또한 제주 자연을 보며 엄마를 떠올리고, 그에 대한 마음을 시로 표현한다. 여기에 과장된 슬픔은 없다. 그저 슬픔과 그리움을 공유하는 부자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영화 ‘약속’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첫선을 보인 후 11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약속’은 민병훈 감독이 처음 만든 사적 다큐멘터리로, 시우가 초등학교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쓴 스물세 편의 시를 담았다.

특히 주인공인 아들 민시우는 지난 8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시 쓰는 제주 소년’으로 화제를 모았다. 시를 통해 전한 꾸밈없는 감동과 따뜻한 위로에 프로그램 MC 유재석, 조세호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깊이 울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인터뷰하는 민병훈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하는 민병훈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Q. 이번 영화의 의미는?

민병훈 감독 : 죽음이나 헤어짐은 누구나 다 겪는다. 영화는 우리 부자가 슬픔을 견뎌내기보다, 슬픔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함께 애도하고 통과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이의 시를 통해 영화의 뼈대를 완성하게 됐다. 우리 이야기가 특별하면서도 또 굉장히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작품은 어떻게 구상 했는가? 

민 감독 : 구상은 없었다. 다큐멘터리니까 나와 아이를 카메라에 담는 것 그 자체이다.  그리고 촬영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특히 침대에서 나누는 아이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처음에는 ‘촬영’이라는 하나의 행위를 했다. 아내와 아이에 대한 생각을 제주 자연의 이미지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Q. 감독을 찍을 때에는 누가 촬영했는가?

민 감독 : 이 작품은 시나리오나 연출 촬영 모두 혼자 진행했다. 그리고 어쩌다 제주에 내려오는 이상훈 감독이 있으면, 옆에서 촬영을 해주기도 했다.

인터뷰하는 민시우 군,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하는 민시우. 촬영=심현주 기자

Q. 시를 쓰는 게 힘들지 않았나?

민시우 :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 잘 떠올리고, 엄마를 떠올리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시를 쓴다. 지금은 옛날처럼 하루에 한 번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시를 쓴다. 2학년 때처럼 그 정도 수준의 시를 쓰면 안된다는 생각에 예전보다 시 쓰는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

Q. 본인이 쓴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민시우 : 당연히 내가 쓴 시니까, 다 좋다. 그래도 3개 정도 꼽자면, ‘약속’, ‘슬픈 비’, ‘영혼과 하루’이다. ‘약속’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해 준 것을 영감으로 썼기 때문이다. ‘슬픈 비’는 아빠가 칭찬해주며 시 쓰기를 제안했기 때문에 좋아한다. 마지막 ‘영혼과 하루’는 1시간 정도 고민해서 쓴 시인데, 아빠가 이 시를 가장 마음에 들어해서 좋아한다.

Q. 마지막 장면에 대해 설명은?

민 감독 : 엔딩 장면은 앞에 있는 풍경과 풍광, 전사를 차곡차곡 쌓아서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시우의 마음을 담았다. 엄마를 만날 수 있게끔 해 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통해, 자기의 과거 어린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부활의 상징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의 해석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로는 잘 하지 않는 수법이지만 극영화 감독이기도 하기때문에 영화적인 구성을 설계해 보았다.

끝으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아들 민시우 군

영화 속 모습은 연기를 한 게 아니고, 일상이다. 나의 일상을 기록한 영화라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통해 치유되고, 위로와 공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빠이자, 영화를 찍은 민병훈 감독

이미 작품을 완성하고 시우가 시를 쓴 것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다. 이후는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영화가 마음에 닿는 시간이 되면 정말 기쁘겠다. 관객이 응원해주는 만큼, 시우와 함께 제주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 누리도록 하겠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지켜낼 거라는 약속. 11월 1일,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시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촬영자세를 취하는 민병훈 감독과 민시우 군, 촬영=심현주 기자
촬영자세를 취하는 민병훈 감독과 민시우 군, 촬영=심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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