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자유를 얻어야 죽음을 이길 수 있어요"...영화‘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시사회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0.26 16:33
  • 수정 2023.10.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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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한미녀 역 맡았던 '김주령' 주연

[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삶에 갑작스러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여자가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40대 여성의 이야기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 불안함과 일상 그 사이 어딘가에 홀로 남겨진 '주희'의 삶을 엿볼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포스터=필앤플랜 제공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포스터=필앤플랜 제공

영화는 병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결과를 받아 들고서 주인공인 주희(김주령 분)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춘다. 어느 대학에서 연극과 교수로 재직 중인 주희는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다시 학교로 향한다.

일상과 죽음의 경계에 선 주희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잊지 않고 보여준다. 사진=필앤플랜 제공

주희의 이야기는 주로 주희의 연구실에서 진행된다. 영화는 서너 명의 학생들이 연이어 주희를 방문하고, 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상담하는 주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그래서 주희는 죽음에 가까워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어쩌면 연극 배우를 꿈꿨던 그 시절을 포기했던 그때부터 주희는 인생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주희는 자신과 남편의 관계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한다.

사람 사이에도 드라마가 존재해요. 기승전결의 구조처럼, 끝에 가서는 종결이 되는 드라마도 있지만, 어떤 관계는 뭐랄까, 열린 결말 같은 거거든.

주희는 영화 내내 연구실 짐을 틈틈이 정리한다. 마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듯, 연구실을 정리하는 주희의 모습은 서글퍼 보인다.

주희의 연구실을 방문한 딸과 엄마. 사진=필앤플랜 제공

7시가 다 되어갈 무렵, 주희의 딸과 엄마가 주희의 연구실을 방문한다. 딸이 잠든 사이에, 주희는 엄마에게 무섭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종반부,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주희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

반성문 같은 연극을 제작한 남편 호진

연극 연출가인 주희의 남편 호진. 사진=필앤플랜 제공

감독은 다른 공간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영화의 주된 이야기는 주희의 이야기이지만, 같은 시간 남편 호진(문호진 분)의 이야기도 삽입된다. 호진은 연극 연출가이면서 주희와 이혼 절차를 밟는 중이다. 호진은 과거에 같은 극단에 함께 남을 수 없던 상황 때문에, 재능 많던 주희를 관두게 했던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주희와 자신의 관계가 틀어졌던 순간을 연극에 녹여낸다. 주희에게 보내는 반성문 같은 연극이지만, 이 연극이 주희에게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오마주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Cleo De 5 A 7, 1962년 작)’를 오마주 한 작품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클레오가 최종 암 진단을 받기까지 심란한 마음으로 파리 시내를 거니는 모습을 담아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1950년대 당시 파리 시내를 아름답게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 영화이다.

영화를 만든 장건재 감독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처럼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도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 담았다. 그리고 암 진단을 받고 심란해하는 주인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대의 클레오는 심란한 마음으로 파리를 거닐었지만, 40대의 주희는 자신이 처한 공간 내에서 삶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20대 클레오는 ‘나’가 먼저이지만, 40대의 주희는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현실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내내 반복되는 아래 대사는 관객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이다.

적당한 때는 없어. 적당한 때가 어딨어, 자유를 얻어야 죽음을 이길 수 있어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주인공의 삶에서 한 조각을 꺼내어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도, 반전도 없다. 하지만 희극도 비극도 아닌 그 잔잔함이 오히려 주인공 주희의 삶을 진실하게 잘 담아낸다.

인터뷰하는 장건재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하는 장건재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Q. 작품을 어떻게 기획하고 완성했나.

장건재 감독 : 김주령 배우와는 10년 전 ‘잠 못 드는 밤’이라는 영화를 같이 만들었다. 그 뒤에 동료로 지내고 만나면서 작업을 한 번 더 하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계기가 되어 ‘김주령 배우에 의한, 김주령 배우를 위한, 김주령 배우의 영화’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코로나 19기간은 어려운 시기였다. 연극 공연계도 마찬가지여서, 그때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인 문호진 배우와도 단편 영화 제작 실습 워크숍을 진행했다. 호진 극단의 이야기는 그때 촬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영화가 두 파트로 나뉘어서 각기 다른 촬영을 진행하게 됐다.

인터뷰하는 김주령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하는 김주령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Q. 주인공 주희와 닮은 점이 있는가.

김주령 배우 : 솔직히 말하면 주희와 나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주희는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지만, 만약 내가 주희의 입장이었다면 주변 사람에게 힘들다고 많이 호소했을 것 같다. 주희와 비슷한 모습은 40대이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부분이다.

장 감독 : 영화 시장에서는 김주령 배우의 정열적인 모습을 잘 소비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김주령 배우가 가진, 잔잔한 고요함을 잘 담아내고 싶었다.

또 영화를 만들 때, 극 중 ‘좋은 인물’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쁜 면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약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지 않고 단단해지려고 하는 인물을 담고 싶었다. 김주령 배우가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인터뷰하는 문호진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하는 문호진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Q.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문호진 배우 : 코로나 때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때 장건재 감독과 단편 영화를 찍으며 신인배우를 가르쳤고 카메라에 담았는데, 이렇게 개봉할 줄은 몰랐다. 처음에 받았던 단편 시나리오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호진’이라는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시나리오였다. 제목이 바뀌게 되었지만 그래도 작업하는 동안 너무 행복했다.

김주령 배우 : 제목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오늘 처음 듣는다. 내가 받은 시나리오에는 주희의 이야기만 담겨 있었다. 첫인상은 실제로 이렇게 학생의 말을 다 들어주는 교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은 꼭 이런 교수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시나리오 자체는 심심했다.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약간의 의심을 했지만 전작을 같이 했었기에 결과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건재 감독은 반드시 근사한 영화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호진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Q.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재해석하고 오마주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장 감독 : 아니스 바다 감독의 작품은 많이 회자되고 있다. 나는 특히 그중에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행복’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언젠가 이 두 영화를 변형이나 차용해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클레오라는 주인공도 20대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젊은 배우이고 주희는 20대를 지나고 배우로 활동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지금은 더 이상 배우를 하지 않고 있는 인물 그리고 한정된 시간 안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인물이 살아온 삶 전체를 그려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는 파리의 거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를 촬영할 때는 코로나로 인해 거리를 담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내에서 생활했고,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리를 담는 대신 실내극으로 옮겨봤다.보통 학교의 5시는 수업이 다 끝나는 시간이다. 수업을 다 끝내고 혹은 수업이 없는 날 해 질 녘까지 한 2시간 동안 자기 방을 정리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와 초연을 앞둔 연출가의 좀 불안한 시간을 다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부부면 어떨지 하는 식의 상상이 꼬리를 물어,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영화를 변형하게 되었다.

끝으로, 장건재 감독은,

소박한 영화이지만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일찍부터 어떤 일에 평생을 바쳤지만, 삶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영화다.

주희 역의 김주령 배우는,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감동한 것은 처음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혹은 상황이 다르더라도 영화가 주는 위로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초겨울에 잘 어울리는 영화이니, 많은 관람 바란다.

호진 역의 문호진 배우는,

소박하지만 작은 예산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따뜻한 이야기이다.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살아가는 의미를 생각하고, 또 살아갈 힘을 재충전 할 수 있는 희망을 품길 바란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11월 8일부터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포즈를 취하는 문호진 배우와 김주령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포즈를 취하는 문호진 배우와 김주령 배우. 촬영=심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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