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아름다운 어른의 끝없는 선행…영화 ‘어른 김장하’ 시사회

심현주 기자
  • 입력 2023.11.10 16:44
  • 수정 2023.11.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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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
제 35회 한국PD대상 TV시사다큐 부문 작품상
제 50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TV부문 작품상 및 프로듀서 부문 개인상

[이모작뉴스 심현주 기자] 한 어른을 보았다. 말수가 거의 없었지만 항상 따뜻한 눈빛으로 사람을 바라봤다. 이 어른은 평생 어려운 학생과 지역 내 시민 운동을 조용히 지원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 어른에게 조금이라도 본인의 자랑거리를 물어보면 입을 꾹 다물었다.

김장하 선생. 사진=시네마 달 제공

총 몇 명에게 장학금을 주셨습니까? ......(아무 대답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자랑거리가 있으면 SNS에 자랑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세뇌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행을 한껏 베풀고도, 절대 자랑하지 않는 어른이 궁금해졌다.

어떤 분일까. 이 영화를 제작한 김현지 감독과 영화 주인공인 김주완 기자도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어른 김장하' 영화. 포스터=시네마 달 제공
'어른 김장하' 영화. 포스터=시네마 달 제공

'주인공 인터뷰' 없는 인물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김주완 기자의 취재기에 가깝다. 경남일보 출신의 김주완 기자는 이미 오래 전, 이 어른을 인터뷰하는데 실패했다. 김장하 씨가 절대로 자신의 선행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취재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주완 기자는 고민 끝에  김장하 씨의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어른 김장하’는 인물 다큐멘터리 영화이면서도, 인물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인터뷰’ 장면이 없다.

아픈 사람 진료하고 번 돈, 허투루 쓸 수 없어

젊은 시절,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던 김장하 선생. 사진=시네마 달 제공

김장하 씨는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했다. 김장하 씨는 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학생의 장학금과 대학 등록금을 조건 없이 내어주며, 진주 지역의 여성 인권운동, 환경운동, 형평운동 등 시민 운동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

기부한 액수는 어림잡아도 100억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어떻게 한약방을 하며 그런 큰돈을 벌었는지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이도 많다. 남성당 한약방은 진주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새벽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번호표까지 나누어 줄 정도였다.

김장하 씨는 아픈 사람을 진료하고 번 돈이기에, 더욱 사회를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다짐할 수는 있지만, 그 다짐을 그대로 한 평생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이런 훌륭한 선행은 알려져야

김장하 선생 주변을 취재하는 김주완 기자. 사진=시네마 달 제공
김장하 선생 주변을 취재하는 김주완 기자. 사진=시네마 달 제공

이상한 일은 또 있다. 김장하 씨의 주변을 인터뷰하면서 김주완 기자는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누구든 ‘김장하’ 이름만 들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칭찬 일색이었다. 직접 금전적인 수혜를 입었던 장학생도, 옛 이웃 주민도, 심지어 남성당 한약방 주변의 경쟁 한약방 사장까지도.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면,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말할 사람을 소개하고, 김장하 씨의 선행을 알리려 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은 알려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우리는 '김장하 키즈'다

김장하 선생. 사진=시네마 달 제공
김장하 선생. 사진=시네마 달 제공

이상한 점은 계속됐다. 김장하 씨의 장학생은 입을 모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김장하 키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후, 심지어 대학원 졸업 때까지도 지원받았다. 덕분에, 경제적인 고민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김장하 선생은 단 한 번도 '훌륭한 사람이 되라'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등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김장하 씨는 가난하지만 공부에 열의가 있는 학생을 선발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지원했다. 이런 ‘김장하 키즈’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매년 한 학년에 스무 명이 넘는 학생을 선발해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원했다. 김주완 기자는 1,000명이 넘는 장학생, 그리고 지급된 장학금만 30~40억 정도라고 전했다. 물론 이것도 김장하 씨가 밝히지 않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선발된 학생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한 것은 분명하다. 김장하 키즈는 충남대 의대 교수,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 일본 사이타마 대학 교수, 헌법 재판관, 외교관 등 각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장학생을 이렇게까지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숨겨진 서사 때문이었다. 김장하 씨는 명석한 머리와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었음에도 중학교 졸업을 끝으로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중학교 졸업 후, 한약방에 입사해 허드렛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해, 불과 몇 년 후인 19살에 한약사 시험을 통과했다. 이후 한약방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큰돈을 벌게 되었을 때, 학교를 세웠다.

학교 헌납, 각종 시민운동 지원까지

김장하 씨는 가난 때문에 못 배운 한을 후배가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 때문에 학교를 설립했다. 그래서 학교 설립을 위해 그때까지 번 돈 전재산이 소요됐다. 그 당시 설립한 ‘명신고등학교’는 진주에서 최신식 시설로, 당시만 해도 다른 학교에는 없었던 에어컨까지 설치했다. 또 교사와 학생에게 최고의 복지와 교육 서비스가 제공됐다. 

놀랍게도, 이 학교는 1989년 전교조 사태 때 단 한 명의 해직 교사도 나오지 않았다. 전국에서 1,500여 명의 교사들이 무더기로 해직당할 때였기에, 이는 이사장이었던 김장하 씨의 철학때문이다.

특히, 명신고등학교는 재단이 금품을 받고 교사를 채용하는 등의 각종 사학비리가 단 한 건도 없었던 학교였다. 학교 설립 당시에 김장하 씨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약속이자, 설령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김장하 씨는 당시 시세로 110억 원 가량되는 학교와 주변 전답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진주 형평운동, 여성 인권운동, 연극 지원 등 수없는 시민운동단체를 후원한 모습이 담겨있다. 

정신적 울타리가 된 '어른 김장하'

'어른 김장하' 스틸사진. 사진=시네마 달 제공
'어른 김장하' 스틸사진. 사진=시네마 달 제공

영화 후반부에서 60여 년간 운영해 온 ‘남성당 한약방’이 영업을 종료했다. 이때, 김장하 키즈 중 한 명이 한약방으로 찾아왔다. 이제는 중년이 된 그는 장학금을 받고도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에 대한 김장하 씨의 대답은 영화를 보는 이에게 또 한 번 감동을 준다.

이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장학생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대답은 김장하 씨의 철학이 담긴 대답이었다.

그리고 몰래 김장하 씨의 생일파티를 준비했을때, 축사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하다는 대법관의 말에 김장하 씨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나한테 고마워할 것 없다. 사회에 갚으면 그뿐이다.

그리고 김장하 씨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김장하 선생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살게 된다. 특히 인생을 살다 보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김장하 선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상상하고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김장하 씨는 모든 이의 정신적 울타리가 되었다.

(왼쪽부터)김현지 감독, 김주완 기자, 정행길 이사장, 이달희 교사, 김종명 씨, 정경순 부서장. 촬영=심현주 기자
(왼쪽부터)김현지 감독, 김주완 기자, 정행길 이사장, 이달희 교사, 김종명 씨, 정경순 부서장. 촬영=심현주 기자

영화가 끝나고서, 본인의 모습을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김장하 씨는 언론 시사회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독 김현지 감독과 김주완 기자를 비롯, 정행길 사회복지법인 한울타리 이사장, 이달희 전 명신고등학교 영어 교사, 그리고 김장하 키즈인 정경순 주한파나마대사관 부서장, 김종명 씨까지 총 6명이나 김장하 선생과의 에피소드를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영화의 여운이 생생한 현실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현지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현지 감독. 촬영=심현주 기자

Q.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영상화한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현지 감독 : 그렇다. 사실 허락을 받고 영상을 촬영하지 않았다. 한약방을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아무 말이 없어서 실패했다. 그런데 장학생 이야기만 나오면 김장하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는 것을 포착했다. 그래서 장학생을 섭외해 장학생을 취재하는 것처럼 꾸며, 김장하 선생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1년여간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이라던가, 한약방을 문 닫는 모습까지도 영상에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었다.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주완 기자.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주완 기자. 촬영=심현주 기자

Q. 김장하 선생이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나

김주완 기자 :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김장하 선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세 명이 있다. 김장하 선생의 할아버지, 남명 조식 선생 그리고 공자다. 특히 선생이 실천적인 삶을 살 수 있던 것은 남명 조식 선생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남명 선생이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는 지식이 아니다. 그 아는 것을 실천해야 그게 진정한 지식이다’는 실천 학문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그 가르침을 본받아 김장하 선생이 이런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Q. 영화의 형식이 독특하다. 어떻게 고안했나

김 감독 : 김장하 선생은 절대 인터뷰하지 않으니 주변 인물을 통해서 선생을 드러내자고 했지만, 이야기의 중심 흐름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섭외했다. 김주완 기자는 지역에서 유명한 기자이면서, 존경하는 선배였고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이임에도 팬이었다. 무작정 김 기자에 전화를 걸어, 은퇴한 노(老) 기자가 30년 전에 시도했던 취재를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를 찍고 싶다고 공동 취재를 제안했다. 바로 공동 취재에 응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연출하면서 김주완 기자를 섭외한 일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Q.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고 말했지만, 현재 어떤 일을 하나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종명 씨.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김종명 씨. 촬영=심현주 기자

김종명 씨 : 대학 시절 내내 김장하 선생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김장하 선생과 나는 '생판 남'이다. 그런데 '남'이 나에게 조건없이 투자를 해준 것이다. 대학 때는 매번 찾아가서 뵈었지만, 졸업 후, 점점 찾아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통해 한약방이 문 닫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이 아니면 못 뵙겠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서 내려갔다. 김장하 선생이 한약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여의도 증권사에서 IT를 담당하고 있다.

김 감독 : 김종명 씨가 겸손하게 본인이 평범하다고 하지만,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를 탈 정도로 양심 있게 사는 사람이다.

Q. 김장하 선생에게 장학금뿐만 아니라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정경순 부서장.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정경순 부서장. 촬영=심현주 기자

정경순 부서장 :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오랫동안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대학에 한 번 떨어져서 재수까지 했다. 재수할 때 비용도 선생이 다 내줬다.

부모님은 내게 삶을 줬지만, 김장하 선생은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기초를 다져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큰 나무같은 어른이다. 항상 존경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김장하 선생께 나도 후배 장학생에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김장하 선생은 딱 여섯 글자로 대답하셨다. ‘니나 잘 살아라’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이달희 교사. 촬영=심현주 기자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는 이달희 교사. 촬영=심현주 기자

Q. 교사 시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면

이달희 교사 : 고3 담임을 할 때였다. 학생을 대학교에 다 보내고 나니 김장하 이사장이 호출했다. 그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전국 여행을 다녀오라며 전세버스를 내줬다. 2박 3일 동안, 그 당시 돈으로 300만 원을 주면서 가장 좋은 곳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오라고 했다. 모자라면 또 연락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써도 200만 원밖에 못 쓰고 100만 원을 돌려주러 다시 이사장을 뵈러 갔다. 도저히 다 못 쓰겠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사장은 고생한 아내에게 선물을 사주라고 돈을 다시 돌려줬다. 본인과 본인 가족에게는 근검절약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많이 베푸는 사람이다.

Q. 은퇴 후 김장하 선생의 근황은

김 감독 : 김장하 선생은 은퇴 이후에 평범한 할아버지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방송 이후 너무 유명해져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특히 여기저기에서 상을 주겠다며 만나자고 하거나, 인터뷰 요청도 너무 많아서 힘들어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경남 MBC 임직원 모두가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김장하 선생과 가족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장하 선생은 스크린에서만 만나고, ‘김장하 지키기’에 동참해 주십사 부탁한다.

김장하 선생은 원래 등산을 많이 했었지만, 최근 노화로 기력이 좀 쇠한 탓에 등산은 잘 안 간다. 대신 파크 골프에 집중하고, NC 구단의 야구를 즐겨본다.

Q. 김장하보다 ‘김장하 정신’에 집중해 달라고 하는데,  ‘김장하 정신’이란

김 감독 : 김장하 선생의 정신은 선을 베푸는 것, 성실함, 낙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을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함도 김장하 정신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김장하 선생이 60년 동안 한약방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매일 출근한다는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차곡차곡 조금씩 쌓여온 성실함이,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으로 인해 뭔가 좋아질 거라고 낙관하는 그 힘까지. 이 모든 것이 김장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김주완 기자 : 김장하 선생의 정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김장하 선생은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즉, 댓가없이 베푸는 삶을 살았다. 또 김장하 선생은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때도, 이사장으로 학교를 운영할 때도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가장 큰 지혜라는 것을 김장하 선생을 통해 깨달았다.

정행길 이사장 :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자기 영향력을 자랑하는 것 없는 그 자연스러움이 김장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달희 교사 : 성실함과 근검절약.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다. 김장하 선생의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아버지처럼은 살 수 없다는 생각에 한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약대에 가서 약사가 되었다고 한다.

김종명 씨 :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해 주는 마음이다.

정경순 부서장 : 어려운 사람을 돕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김 감독은 제목을 정할 때 '어른'이라는 단어가 가부장적인 단어인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꼰대’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비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어른'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영화를 본 어떤 관객은, ‘'어른'은 이렇게 푸근한 단어이고, 내가 기댈 수 있다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였다. ‘어른’이라는 단어에 대해 재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교육, 여성, 복지, 문화예술 등에 대한 지원은 원래 사회 특히 국가가 담당했어야 하는 일이다. 김장하 선생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송하지만, 칭송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김장하 선생이 해 온 일을 국가가 그리고 우리가 나누어서 져야하는 짐이라고 생각한다.

'어른 김장하' 스틸사진. 사진=시네마 달 제공
'어른 김장하' 스틸사진. 사진=시네마 달 제공

‘어른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영화 ‘어른 김장하’를 만났다. 김장하 선생은 평생 선행을 베풀되,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선행을 베푼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베푼 은혜를 받은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어른은, '어른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진정한 어른, 그 어른의 선한 영향력은 11월 15일부터 극장에서 ‘어른 김장하’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촬영자세를 취하는 김현지 감독 외 5인. 촬영=심현주 기자
촬영자세를 취하는 김현지 감독 외 5인. 촬영=심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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