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정도를 지키면 기적이 일상이 된다

정해용 기자
  • 입력 2023.03.13 15:37
  • 수정 2023.03.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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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이 지극한 사람은 불로 뜨겁게 하지 못하며 물에 빠뜨려 죽일 수도 없다. 추위나 더위도 해를 입힐 수 없고 새나 짐승도 해치지 못한다.’
(至德者 火弗能熱 水弗能溺 寒暑弗能害 禽獸不能賊)’
- 장자. 추수(秋水)편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장자> 추수(秋水)편에 나오는 말을 가만히 음미하노라면 임진왜란 직후 왜국에 건너가서 왜왕을 무릎 꿇렸다는 사명당 대사의 전설이 떠오른다. 불 위를 걸어가고 끓는 물 속에 들어가서도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며, 사해의 용왕을 불러 풍운뇌우(風雲雷雨)를 부르게도 하고 거두게도 하니, 왜왕이 벌벌 떨며 백배사죄하였다는 소설 속 이야기 말이다.

불 위를 걸으면서 터럭 하나도 그을리지 않았다는 기인들의 이야기는 그 밖의 많은 경전이나 전설 속에도 수다하게 녹아 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기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마 도를 오래 닦아서 될 수 있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모으고 심신을 수련해서 그 경지에 오르려고 토굴에 들어간 사람도 꽤 많았다. 마침내 도통했음을 증명하려고 많은 사람 앞에서 불 속이나 물속에 뛰어 들어가 그 시범을 보이려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성공했다는 이야기보다는 실패했다는 말이 더 많고,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믿을만한 증거를 제대로 남긴 경우는 거의 없다. 차라리 ‘분신공양’으로 자기 염원을 만천하에 드러낸 경우가 있다면, 그쪽이 더 솔직한 편일 것이다. 불 속, 물 속뿐 아니라 염력, 공중부양, 장풍 같은 이적들도 간혹 증언을 들을 수 있지만, 대부분이 허풍이거나 눈속임, 또는 와전된 소문들이다.

그 비슷하게 보이는 퍼포먼스를 누가 선보였다 해도 그것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 단 한번 우연처럼 보일 뿐, 언제 어디서나 그것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나타난 적이 없다. 눈속임으로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보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도인인 척하고 성인이거나 신인(神人)을 자처하면서 혹세무민하는 자들도 심심찮게 있었으니, 기적과 이사(異事)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종교의 경전이나 성인들의 어록에 등장하는, 이 같은 기적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 소위 성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거짓말이라도 한 것인가. 단순한 설화거나 비유의 말은 아닐까.

<장자>의 원문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문득 짚이는 게 있다.

장자는 ‘지덕자(至德者)’라는 주어를 쓰고 있다. 덕이 지극히 높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도통자(道通者)’가 아니라 ‘덕망이 있는 사람’이다. 덕망이 높다는 것은 기이한 일을 좇지 않고, 허망한 것을 바라지 않고, 거짓 과장으로 사람들을 속이지 않으며, 탐욕에 몸과 정신을 맡기지 않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분수를 지키고, 예의와 질서를 존중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뒤지고 털어 봐도 흠잡을 일 하나 없이 오히려 칭송받을 일만 나온다면 가히 ‘지덕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 추수(秋水)편은 황하의 신이 물줄기를 타고 내려가 바다(北海)의 신을 만나 가르침을 청해 들은 말인데, 바다의 신이 이 말의 뜻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불이나 물, 추위와 더위, 새나 짐승들이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은, 그것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이로운지 해로울 지를 신중히 판단하여 행동을 조심함으로써 그것의 해를 입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연과 사람의 움직임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올바른 위치를(행동을) 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런 덕망을 지닌 사람이 무모하게 불속에 뛰어들 리가 없으며, 자기 재주나 용기를 과시하려고 깊은 물속에 함부로 뛰어들 리도 없다. 만용이나 과시욕 없이 합리성을 따르고, 사는 동안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하여 겸손하고 지혜롭게 대비하고 조심하며 살아갈 것이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니 불에 타죽을 일도, 물에 빠져죽을 일도, 얼어 죽거나 쪄죽을 일도 없는 것이다. 당연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남을 해쳐 원한을 사지도 않을 터이니 누구로부터의 심판이나 보복을 두려워할 일도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스스로 도를 깨우쳤다며 불이나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독약을 마시거나 거짓 예언이나 술수로 남을 속이고 해치는 등의 행동은 정작 그 자신이 ‘도’와는 거리가 먼 천박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할 뿐이다. 그럼에도 사이비 교주들이 횡행하는 사회란, 사회정신이 얼마나 피폐하다는 뜻이겠는가. 참된 도와 진리는 과학적 합리성과 상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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