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서둘러야 할 때, 서둘지 말아야 할 때

정해용 기자
  • 입력 2023.04.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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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장자(莊子)는 살림에 별 관심이 없어서 집이 가난하였다. 당장 끓여 먹을 곡식이 없어, 가족들이 굶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잡곡 몇 되라도 빌리려고 고을 수령 감하후를 찾아갔다. 감하후는 인색한 사람이었으나 상대는 덕망 높은 장자가 아닌가.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이렇게 둘러댔다.

“물론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유가 없으니 몇 달 후 세금 거둘 때가 되면 그때는 3백 금이라도 빌려드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시겠죠?”

말을 듣고 장자는 얼굴이 붉어졌다. 당장 잡곡 한 봉지 살 몇 푼이 없어서 온 것인데, 굶어 죽은 다음에야 3백 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이곳에 오는 도중 무언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장자는 화를 자제하고 그답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돌아보니 길 가운데 수레바퀴 자국 패인 곳에 아직 살아있는 붕어 한 마리가 있더군요. 전날 비가 왔을 때 넘친 도랑에서 올라왔다가 갇혔던 모양입니다. 물은 이미 말라가고 있었죠."

붕어가 말했습니다.
"저는 동해용왕의 신하입니다. 미안하지만 물 한 바가지만 부어서 저를 좀 살려주시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요.
"그런가? 알겠네. 한 됫박 물로 자네가 장차 살아나기는 어려울 테니 내가 내일이라도 떠나서 남쪽 오나라와 초나라 임금을 만나고, 그들에게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파서 이곳까지 연결하도록 설득하겠네. 임금들이 많은 장정들을 동원하면 석 달 정도면 수로가 완성될 걸세. 그러면 자네는 수로를 타고 서강을 거쳐 동해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한 됫박 물이 문제가 아니라 강줄기라도 끌어다가 붕어를 살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하. 참으로 너그러우십니다. 마음을 그리 크게 쓰시다니요.”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감하후는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자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지요. 내 딴에는 크게 도우려고 했던 건데. 붕어가 벌컥 성을 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 나는 잠시라도 떠나서는 안 되는 물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으니, 우선 물 한 말이나 몇 됫박만 부어줘도 숨통이 트일 터인데. 그대 말대로 하려면 석 달 뒤 나를 건어물 가게에 와서 찾아야 할 거요.” - 장자 재유(在)편

남을 돕는 일에도 너무 서둘지 말아야 할 때와 서둘러야 할 때가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공부할 때를 놓치지 않도록 일찍 지원하는 게 좋고,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그 아이디어가 묵은 기술이 되기 전에 투자를 서두르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일찍 지원해서 오히려 독이 되는 수도 있다.

중국 배우 주윤발이 절친 오맹달에게 도움을 거절한 일화는 좋은 예다. 오맹달은 젊어서 한창 인기가 오르자 술과 도박에 빠져 돈을 다 잃어버리고 빚에 쫓기기까지 하며 하루하루 황폐해졌다. 그때 절친한 주윤발에게 가서 당장 먹을 것이 없다고 손을 내밀었는데 주윤발은 그를 외면했다고 한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오맹달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인생을 되돌리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영화판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내막을 아는 영화사들이 그를 믿고 써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완전히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때, 운 좋게도 새로 작업하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진목승 감독의 천장지구(1990)란 영화다. 이 영화는 대히트했고, 절치부심하며 연기에 진심을 다한 오맹달은 그해 홍콩영화제의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부활했다. 소림축구와 쿵푸허슬 등 출연은 그 이후의 일이다.

재기 후에도 그는 주윤발에 대한 감정을 풀지 못하였는데, 진목승 감독이 결국은 오맹달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영화에 오맹달을 캐스팅할 생각은 없었는데, 주윤발이 찾아와 이제 오맹달을 쓰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간곡히 부탁하여 캐스팅이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여태껏 주윤발의 부탁으로 함구했노라고 말한 것이다. 도박에 빠진 친구에게 도움을 거절한 주윤발은 이후 오맹달을 예의주시하다가 그가 진지하게 후회하며 재기할 기회를 찾는다고 판단될 때,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떳떳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헤픈 인정’과 ‘지혜로운 도움’은 구별이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하여 진심을 갖고 바라본다면 서둘러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판단하기가 어렵지만은 않으리라고 본다.

기본적으로는 돕고자 하는 마음의 진정성이 우선일 것이다. 신속히 돕거나 기다렸다 돕거나 하는 것은 더 가치 있는 도움을 위한 방법론의 문제일 뿐이다. 홍콩영화 전성기의 최고 스타였던 주윤발은 평생에 모은 막대한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진정으로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반면 저 인색한 ‘감하후’처럼 자기 인색한 마음을 여러 구실로 변명하는 사람도 그 본심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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