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2] 하롱베이의 풍경들7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3.17 15:10
  • 수정 2023.04.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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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횟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오늘따라 더욱 굴풋하다
밖에서 울어 에이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소리도.
- '땅끝 인생', 윤재훈

배 안의 신주단지. 촬영=윤재훈 기자
배 안의 신줏단지. 촬영=윤재훈 기자

 

선원들은 밥을 먹고 나자 찻잔을 옆에 준비해두고 바로 차를 마신다.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대륙 중국처럼 이 나라도 차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는 것 같다. 고달프고 바쁜 배 안에서 잠시라도 여유를 찾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가 좋다. ‘빨리빨리’를 다그치는 우리나라 배 안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특히나 배 안에 제단까지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우리나라처럼 기구(祈求) 신앙이 대단한 모양이다. 대한민국은 각 종파의 신도 수를 합하면 국민의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고 미워하며 반목(反目)만 더욱 심해지고 있다.

특히나 베트남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테라와다(소승불교)를 믿고 있는데, 특이하게 대승불교를 믿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을 형의 국가로 믿어왔다는데, 그것이 종교에까지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의 순한 표정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들의 순한 표정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옆에 있는 배에는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야 될까, 닮은 듯 안 닮은 듯 두 사람이 환하게 웃는데, 그들의 순박한 얼굴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선원들은 단순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도 화가 나면 '불'같을 것이다, 우리네 뱃사람처럼. 지금 베트남인이 한국의 배에 있는 외국인 선원 중에 가장 많다. 거리상 가깝고 인근의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바다가 넓은 베트남인이, 바닷일에 능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선주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괄시하지 말고 우리나라 선원들처럼 잘 대해주면 좋겠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바다에 뱃사람들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월급도 잘 주고 하대하지 말고, 자국민처럼 친구처럼 대해주면 국위선양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다.

얼마 전에는 베트남 축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박항서 감독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베트남 축구에 지대한 공로를 세워 평생 베트남 항공료가 무료라고 한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하롱베이 선착장.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선착장.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의 거리를 쉬엄쉬엄 걷는데 한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한다. 입구에 휘장이 걷히더니 다섯 명의 청년이 누워있는데, 20대 초반쯤이나 보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다가, 한 청년이 휴대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준다. 중국 것을 다운받았다고 하는데, 심한 섹스 비디오다.

이런 것들은 동남아의 일반적인 경향 같다. 산속 깊은 오지 마을에 들어가도 아이들은 철 지난 폰들을 가지고 있으며 저런 동영상들을 보고 있다. 특히나 마을 입구에서부터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싸이의 말춤을 추거나 BTS의 춤을 추고 논다. 심지어 사진을 집에다가 붙여두고 열광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섬이다 보니 밤이 되면, 여러 개의 카페와 샵들이 불을 밝히는데, 윤락까지 하는 듯하다. 하긴 세움 기사들이 타기만 하면 <붐붐> 이야기부터 꺼내니 만연한 모양이다.

15, 18세 도로공사에 나온 소년들의 노동현장. 촬영=윤재훈 기자
도로공사에 나온 15, 18세 소년들의 노동현장. 촬영=윤재훈 기자

15, 18세 소년들이 거리를 포장하는 곳에서 막일하는데, 놀이처럼 웃으며 한다. 앳된 얼굴에는 아무런 시름이 없어 보여 좋다. 사람들은 <꽈밤>이라는 과일을 소금에 찍어서 먹는다. 더운 지방이다 보니 일부러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서일까, 이렇게 소금에 찍어서 먹는 과일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심지어 태국에서는 아주 작고 매운 고추를 소금과 함께 찍어 먹기도 한다.

조그만 것들이 건방지게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붉게 충혈되어
한껏, 신기(新氣)를 뿜어내고 있는
땡볕 아래,
꽃인 줄 알고 오색나비도 날아와
살살 꽁지를 몇 번 문질러 보는
건넛마을 신기리 댁도
가랭이를 모두운 채
세월 속에 허 생원이라도 기다리는지
단잠에 들어
살냄새 솔솔 풍기는 한낮
그 위로 흔들리던 우주가
포개진다

- <타이 고추> 윤재훈

“나 어때요.”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어린이, “나 어때요”. 촬영=윤재훈 기자

 

조그만 학교에 아이들이 쉬는 시간인지 뛰어놀고 있다. 교실로 살짝 들어가니 2학년쯤이나 될 듯한 고사리들이 놀고 있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금방 나에게 다가온다. 일 층 교실에는 약간 큰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놀다가 여학생 발에 다쳤다고 운다. 우리나라 남자아이 같으면 여자아이를 때렸을 텐데, 그냥 자기 자리로 가서 훌쩍인다.

아이들은 놀이의 <과정>을 즐기는데 어른들은 <결과>만을 따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아이들은 틀려도, 친구들이 빨리하지 않아도, 그냥 그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감나무가 즐비한 풍경이 우리네 시골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감나무가 즐비한 풍경이 우리네 시골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산속으로 샛길이 있어 올라가 보니 동굴이 하나 있는데, 입구는 철문으로 잠겨 있다. 그 근처에 앉아 볼일을 보고 있는데, 산바람이 시원하다. 자연 속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자유롭다. 작은 칫간 안에 앉아있으며 답답하기도 하고 냄새가 나는데, 천지간(天地間)에 있으면 오감이 평화롭다

인간이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은 음식은 입 안으로 들어가 내 몸에 보약이 되어, 내 정신과 육체를 살찌우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밥을 먹고 나면 변비가 생긴다
왜, 헤아릴 수 없는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농부의 숱한 수고로움 속에서 자라난 곡식을 먹었는데,
내 뱃속에서는 돌이 되어 나오는가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한 번 들어간 것들은
순하게 나오지 못하고
살을 찢으며, 선홍빛 피를 내는가
화장실에 앉아 신음하면서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두움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 땅에 수고로운 곡식들이
내 안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져 나오는지,
미풍(美風) 진 세상을 어떻게 살았으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서, 돌멩이를 만들어내는지
아이는 맨 처음 태어나 황금 똥을 싸는데
송아지는 담석이 생기면 사람을 살리는
우황(牛黃)을 만들어낸다는데
나는 왜 부드러운 내장 속에서
그다지도 딱딱한 돌멩이를 만들어
오늘 아침도 괴로워하는가

- ‘변비’. 윤재훈

나에 살던 고향은. 촬영=윤재훈 기자
나에 살던 고향은. 촬영=윤재훈 기자

 

똥은 밖으로 잘 배출되어야 건강한 몸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나아가 먹는 것과 싸는 것이 원활(圓滑)할 때 인간은 가장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된다.

똥을 누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논둑이다. 시골 출신들은 잘 안다. 신발에 묻을 염려가 없고, 쪼그려 앉아서 보는 고향 마을이 따스하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 노을빛 아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 사는 곳, 논둑에 앉은 기분은 마냥 행복하다. 굴풋한 저녁나절, 저 연기에 밥은 뜸이 들어갈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우리 새끼 배고프겠다고, 어머니는 서둘러 따뜻한 밥을 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산속이다. 엉덩이로 올라오는 시원한 산바람의 느낌이 좋은 곳,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도 더없이 정겨운 곳. 그러나 이순을 훨씬 넘긴 지금, 고향마을에는 아무도 없다. 고향 선산을 지키던 큰 형님은 이 지상을 오래전에 떠났고, 형수는 읍에 나가 생전 살아 보지 않았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노년의 낯선 삶을 산다고 한다. 조카들은 다 도시로 떠났고 고향마을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마 지금은 큰집도 허물어져 가고 있을까?

명절날이면 전국에 있던 일가친척들이 모이던 집, 아버지는 돌고개를 지나며 조그만 하꼬방에 들려 제수에 쓸 고기와 정종, 홀로 남은 형수에게 줄 담배 한 보루를 사던 곳.

고향의 봄. 촬영=윤재훈 기자
고향의 봄.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땅끝(土末)에서 태어났다
그 후 도시로 나와,
명절날 고향 가는 버스를 타도 항상 종착지에서 내렸다
남쪽 바다 끝에서 완행버스에 몸을 실으면,
비포장 길을 따라 순천, 벌교, 보성, 강진, 장흥, 유배지의 땅들을 샅샅이 훑고,
다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 길에서 고산(孤山)을 만나고, 다산(茶山)을 만나며,
초의와 영향도 만났다
선인들의 깊은 고뇌에 찬 얼굴을 보았으며,
그 사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남도의, 주름이 파인 얼굴도 보았다
돌고개 따라 펼쳐지던 누런 들판에서 가끔 튀던, 메뚜기도 보았으며
허기지게 달려가던 도랑물도 만났다
천관산 아래로 내달리던 버스에서 본, 남도의 山모랭이, 山모랭이들
지금도 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후 기차를 타도,
여전히 시발지(始發地)에서 종착지(終着地)까지 줄기차게 달려갔다
하룻밤을 새운 기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긴 기적 소리를 동백꽃처럼 역두(驛頭)에 뿌렸다

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횟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오늘따라 더욱 굴풋하다
밖에서 울어 애이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소리도.

기차간에서 만났던 아지매들의 낯선 음성,
한밭 어디쯤에서 새벽시장을 나가기 위해
굽은 허리로 올리던 밤색 광주리에 대한 기억과,
억센 손가락 마디도 보았다

기나긴 열차 시간에 피곤해지면,
의자 사이로 기어들어 가 자거나,
선반 위에 올라가 잤다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 소리에 잠을 깨면,
기차는 목쉰 소리를 내면 만경평야 어디쯤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변방으로 더 밀려났다
어젯밤 잠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가는 것을 보았다
老철도원의 목쉰 소리가 플랫 폼의 천장을 타고 울려온다
역 대합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러나 나는 수도의 종착역에서 내려,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더 달려가야만 한다

테크놀러지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
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도에서 잠이 든다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는 맹인의 낯선 삶도,
저 혼자 열차 칸을 맴돌다가 빠져나간다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문득,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어린 시절,
이 길을 내려가 오늘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달려온,
저 지하철을 탈 것이다

- 땅끝 인생. 윤재훈

자그마한 저수지를 돌아 시계풀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샛길에 올라서며 멀리 대나무숲과 감나무가 어우러진 큰집이 보인다. 마당에 들어서면 이미 짚불 위에서는 굴풋하게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오고, 형제들은 덕석을 펴고 윷놀이가 한창이다. 떠들썩한 마당, 이웃집에서는 무슨 일인가, 탐스럽게 석류 열매 익어가던 담 너머로 올려다보고.

이제 두 번 다시 모여서 놀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다시는 볼 수도 없다. 선조들이 모여있는 산소에 가본 지도 오래되었다. 어른들만 몇 사람 모여서 가는지도 모른다. 고향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점점 초등학교 그림책에나 나올 법한 그런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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