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5] 천 개의 섬, 하롱베이10.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4.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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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잡초가 무엇인 줄 아느냐
네 눈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그런 풀로만 보이느냐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주의 기운으로 근육을 돋우고
가열차게 자란 풀에게만
잡초란 이름을 준다

- ‘잡초(雜草’). 윤재훈

가두리 양식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가두리 양식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바다는 잔잔하다. 끊임없이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겹쳐있어, 이 바다에서는 심한 폭풍이 일어나도 연안에는 그다지 피해가 없을 듯하다. 워낙에 많은 섬이 오밀조밀하게 막고 있으니 파도의 너울들이 오다가 다 깨질 것 같다. 그래서 양식장이 많고 아마도 그 안에서 집까지 짓고 살 수 있는 모양이다.

하롱베이에서. 촬영=윤재훈
하롱베바다 입수 전.  촬영=윤재훈 기자

한참을 섬 사이로 달리던 배가 잠시 멈추더니, 선장이 우리에게 수영하라고 한다. 멀리 산봉우리 아래에는 사람들이 벌써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수영을 즐기고 있다. '첨벙', 하더니 서양 청년들이 거침없이 바다로 다이빙한다. 새파란 물이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바다가 고향인 나도 뒤질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다녀오다가 날이 더우면 친구들과 책가방을 집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던 옛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족히 20여 미터는 넘을 법한 배들이 죽 늘어서 있는 축광에서 배 앞부리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사이로 뛰어내리던 기억도 눈에 선하다. 워낙 배가 높아 파도에 부딪히면 아파서, 천둥벌거숭이들은 고추만 감싸 안은 채 그 사이로 뛰어내렸다. 그래도 어찌 배 바닥으로 들어가는 사고 하나 없이 잘 자라 어른이 되어갔다.

유럽에서 왔다는 그녀. 촬영=윤재훈
유럽에서 왔다는 그녀. 촬영=윤재훈 기자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놀았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그 순간에는 국경도 인종도 없이 에덴의 동산에서 놀고 있는 듯했다. 선악과를 따먹은 듯 어쩌랴?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 그것이 인간의 활달한 사유를 막고 수천 년 동안 억압해 오지나 않았을까? 예술의 진지한 기원을 생각해보는 봄날, 꽃 피는 오후, 하롱베이 바다에서는 '첨벙 첨벙' 수천 송이 물꽃이 일었다.

봄날이 온다. 촬영=윤재훈
봄날이 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물질문명이 풍요로워지면 질수록 인간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점점 더 무디어져 가고, 그 수치에 비례해 더욱 급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ATM에 있던 서양 여자가 기계가 버벅거린다고 발로 막 찬다. 조그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참지를 못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본다.

인간은 육식의 비중이 놀랍도록 늘어나니 몸은 점점 비대해지고, 동물처럼 성격도 난폭해져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덩달아 자연에 대한 외경심도 사라지고, 이 지상에 존재하는 뭇 생명을 인간의 하위 개념으로나 생각하며 무자비하게 학살하거나, 인간의 먹이쯤으로만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동물을 사육하는 방법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좁은 축사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밀집 사육을 하면서, 유전자가 조작된 몬산토 옥수수를 먹인다. 그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해마다 빠른 속도로 엄청난 산림이 훼손되고, 성인병도 해마다 큰 수치로 높아간다. 문명의 속도만큼 짐승 같은 범죄들이 점점 그 도를 더해가고, 저마다 가학적이고 냉소적으로 된다.

인간은 이 지상에 잠깐 왔다 가면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규정을 지으면서, 수많은 혜택과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뭇 생명을 지배하며, 이 지구의 환경에 너무나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다. 인간처럼 자신이 사는 터전을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하는 이기적인 동물이 있을까? 우리가 편해지려는 모든 발상이 이 지구와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들에게는 그야말로 커다란 재앙이다.

거기에 자동차의 발명은 이 지구의 사는 생명체에게는 그야말로 치명타가 되었다. 이 세계를 덮은 거대한 스모그의 돔은 우리의 숨구멍을 조이고 있다. 우리는 이 지구에 살면서 한 번쯤, 내가 하루에 얼마만큼의 ‘탄소 발자국’이라는 재앙을 생명들에게 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샴푸, 린스, 퐁퐁, 일회용품, 비닐, 자동차 배기가스 등, 내가 하루에 오염시키는 양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인간의 삶 자체가 오염 덩어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초록별의 화음. 촬영=윤재훈
초록별의 화음. 촬영=윤재훈 기자

이 초록별에 단 하루만 햇볕이 비치지 않는다면, 단 5분 만이라도 공기가 사라져 버린다며, 모든 생명이 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하루하루는 이 완벽한 지구의 조화 아래, 매일 축복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너무나 많아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물, 바람, 구름, 태양, 달, 관계와 관계로 연결되는 세상의 모든 사람, 그것들을 생각하자 마음속에서 감사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잘 살아야 한다. 모든 것에 고마워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  나의 하루하루는, 이 지구의 완벽한 조화가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랬던 내일이다.“

그득한 못물에 풍년을 예감한다. 촬영=윤재훈
그득한 못물에 풍년을 예감한다. 촬영=윤재훈 기자

솔개가 날개를 쫙 펼치고 당당하게 섬 위를 떠돈다. 우리 어린 시절 마당 위의 병아리들을 채 가는 걸로 유명했다. 그 병아리를 채어가서 날카로운 앞발로 병아리의 연한 살결을 꽉 잡고 찢어서, 자신의 어린 새끼들에게 먹였을 것이다. 솔개는 매나 독수리보다는 작아 보이지만 사냥의 귀재이다. 하지만 종종 기러기와 싸워서 질 때가 있다.

또한 이들은 인간 이외에 처음으로 ‘방화 습성’이 확인되기도 한 동물이다. 직접 불을 피우지는 못하지만, 불이 붙은 나무토막 등을 초원에 퍼뜨려 의도적으로 화재를 일으켜, 숨을 곳이 사라져 눈에 띄게 되는 작은 동물들을 사냥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맹금류인 황조롱이보다는 크고 강한 편이다. 말똥가리와 체격이나 모습이 거의 비슷한데, 서로를 구별하는 방법은 꼬리의 모양과 손가락처럼 갈라진 날개 끝의 깃털 수를 세어보면 된다. 또한 솔개는 꼬리 끝부분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평평한데, 말똥가리는 부채처럼 곡선으로 펼쳐진다. 날개 끝의 깃털도 솔개는 6개, 말똥가리는 5개이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권태 속에 내뱉어진 소음으로 주위는 가득하고
푸른 하늘 높이 구름 속에 살아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여
스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느덧 내게 다가와
헤아릴 수 없는 얘기 속에 나도 우리가 됐소
바로 그때 나를 비웃고 날아가 버린 나의 솔개여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아
에드벨룬 같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의미 있는 하루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 속에서 나도 움직이려나
머리 들어 하늘을 보면 아련한 솔개의 노래
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간 나의 솔개여

- ‘솔개’. 이태원

동굴 속에서. 촬영=윤재훈
동굴에서 바라본 하롱베이 바다. 촬영=윤재훈 기자

호수 뒤에 또 호수 같은 바다들이 계속 펼쳐진다. 멀리 해안가 절벽에 동굴이 보인다. 배에서 내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데, 수만 년 떨어졌을 물방울 소리가 동굴 안을 청아하게 울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동굴 벽의 풍경은 신비롭다. 퐁, 퐁, 울리는 저 물소리는 이 절대고요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내렸을까? 9년 면벽에 들었다는 달마선사처럼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묵상하듯 내려와 있는 종유석 닮은 암반들, 홀로 서서 한참을 바라보니 마음은 고요해지는데, 문득 세상은 갈수록 아득해져 온다.

다시 배 안으로 들어오니 왁자지껄 사람들이 모여 베트남 맥주를 마시며 떠들썩한데, 어디선가 낯익은 한국어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노이에서 20년간 거주하며 여행사를 운영한다는 김00 가이드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설명 중이다.

오랜만에 동포(同胞)를 만나니 반가웠다. 여행 중에 조선족을 만나도 반가웠고, 고려인들을 만나도 반가웠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한국인, 어디에서 만나도 그럴 것이다. 모두 조국이 품어야 할 사람들이다. 대부분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가난한 조국에 살기가 힘들어서 떠났던 사람들일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 자치구에는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자치구 기본 인구가 부족해 소멸 위기에 있다고 한다.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동토(凍土) 강제 이주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자국민들의 탄압 속에서 잡초처럼 꿋꿋이 견뎌왔다. 우리나라에도 그들의 마을이 생겨나고, 그들은 분명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이다. 과거 우리의 아팠던 역사를 하나, 둘 되돌아보면 참 고마운 분들이다.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잡초가 무엇인 줄 아느냐
네 눈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그런 풀로만 보이느냐
우주에 물과 빛으로 자라
이렇게 버들강아지까지
피우고 있는 내가
네 눈에는 잡초로만 보이느냐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주의 기운으로 근육을 돋우고
가열차게 자란 풀에게만
잡초란 이름을 준다
온상 속에서 자라난
너희들이 아니다
오직 너희 앞가림만 걱정을 하는
그런 풀이 아니다

- ‘잡초(雜草)’. 윤재훈

아!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기자
아!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기자

사실 외국인 근로자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산업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기대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한민족이라고 하는데, 이제 우리나라도 다국적국가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마음을 더욱 넉넉하게 펼쳐나가야 하는 그런 전환점에 서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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