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4] 구리빛 하롱베이 여인을 만나다 9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3.28 16:16
  • 수정 2023.03.2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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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 그리운 바다 성산포1

하롱베이 그녀는 열창 중.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그녀는 열창 중.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에 재래시장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왁자지껄한 그들의 말소리 따라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가게 안에 노래방 시설을 해놓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반주에 따라 한 여성이 홀로 열창하고 있다. 이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국민들이 음주·가무를 아주 좋아하는 듯하다.

특히 겨울이 없는 나라는 특별하게 추위 걱정할 것도 없다. 일 년 내내 활동하는 기간이 훨씬 길고 다이내믹할 것 같다. 여인은 마치 노래 솜씨를 뽐내기라도 하는 듯 마이크를 크게 틀어놓고 시장 사람들이 다 듣게 부른다. 근처에는 가라오케도 많고 여기저기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뚱뚱한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더운 나라이다 보니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럴까, 아니면 아직은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삼모작까지 가능하니 야채들이 풍부하게 자라서일까, 특히나 아가씨들 몸의 곡선이 참 곱다. 식당에서 일하는 19세의 처녀는, 일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나와서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던 머스마 뒤에 올라타고 사라진다.

하롱베이 바다.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바다. 촬영=윤재훈 기자

오토바이가 있으니, 행동이 자유롭다.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볼 수 있으니 더욱 좋다. 바닷가 길을 따라 끝까지 달리다 보니 아담한 해수욕장이 나온다. 천천히 바닷가를 구경하는데, 여관이 엄청 많고 아가씨를 데리고 영업하는 카페나 맛사지 숍이 많다.

노을을 따라 저무는 바닷길을 달려 하노이 가는 버스표를 예약하고, 맥주 한 병 사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나가는 길이 캄캄하여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빨랫줄에 머리가 걸렸다. 머리카락에 누군가 걸어놓은 브래지어가 걸렸는데, 잘 안 빠진다. 검은색의 작은 캡이 어느 처녀의 것인지 보드랍다. 하롱베이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환하게 펼쳐진다. 마시기는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먼저 취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성산포 시를 한 번 두 번 암송하다 보니 바다 내음이 나고,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내음도 배어 나오는 듯하다.

아침 6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 소리에 귀를 찢기운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 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 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 거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 거다

- 그리운 바다 성산포

하롱베이 저녁 재래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저녁 재래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 최대의 관광지로 소문난 하롱베이에 기대를 많이 하고 와서 그런지 막상 떠나려 하니, 알 수 없는 감회가 밀려온다. 멍하니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벌써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겼다. 하롱베이의 거리는 아직 환하다.

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대체 알 수가 없네
왜 나를 피하려는지, 정말 알 수가 없네

그대여 지금은 어데, 내가 보고 싶지도 않나
그대여 달려와 주오, 내 곁에 달려와 주오
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그대여 지금은 어데, 내가 보고 싶지도 않나
그대여 달려와 주오, 내 곁에 달려와 주오
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 ‘자정이 훨씬 넘었네’, 이장희

카페촌.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카페촌. 촬영=윤재훈 기자

오늘은 하롱베이와 란하베이 바다 여행을 예약했기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깼다. 대부분 관광객이 베트남 제일의 관광지 이곳에 오면 하롱베이 관광여행을 신청한다. 항구에는 엷게 안개가 끼어 있다.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온 우리나라의 봉고차 기아 베스타를 타고 10여 분 가니, 자그마한 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배를 타러 가는 곳은 허름했으며 나무다리 부표 위에 요행히 유지하며, 삐걱거리고 있다. 비대한 서양 여행자들은 샌들 끄는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배로 다가왔다. 부표에 의지한 식당도 있었으며 파도에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배 안으로 들어서니 우리나라 연속극이 나오는가 싶더니, 잠시 후에 K-Pop도 나온다. 이 나라에서는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 옛날 우리가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었듯 베트남 청년들에게도 코리언 드림이 있다. 그것은 어느 곳을 가나 틀어져 있는 한국 방송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 가히 한국에 열광한다. 피시방에서도 한국 가수들의 동영상을 틀어놓고 논다

근처에는 시커면 물이 떠다니는 양식장이 함께 붙어 있으며, 이따금 먹이를 주는 곳도 있다. 쉬엄쉬엄 노를 저은 아낙들도 쉽게 볼 수 있으며 다가왔다 멀어져 간다. 마침내 우리를 태운 배가 바다로 나간다.

떠나가는 배.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떠나가는 배. 촬영=윤재훈 기자

바다 위에도 여기저기 양식장들이 많이 널려있다. 이 아름답다는 하롱베이 바닷속 물고기들도 막 물에서 미끈, 빠져나온 것 같은 저 수만 봉우리처럼, 그 자태가 특별할까? 여기저기 배들이 떠 있고 쉬는 사람, 낮잠을 자는 사람, 물담배를 피우는 사람 등 다양하다. 배는 섬과 섬 사이를 구불구불 빠져나간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 같이 따사로운 저 무욕을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것이 어디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 ‘떠나가는 배’, 정태춘

하롱베이 서양 젊은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서양 젊은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부표 위에는 양식장이 있고 커다란 그물이 널려있다. 커다란 집들이 지어져 있는 걸 보니, 아예 그 안에서 사는 듯 보였다. 베트남은 특히 젊은 국가이다. 젊은이들이 넘쳐나다 보니 배 안에도 청년들이 더 많은 듯하다.

관광객을 실은 배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바닷가 절벽에는 수많은 나무가 위태롭게 뿌리를 내리며 요행히 해풍 부는 삶을 버텨내고 있다. 기묘한 봉우리들과 암석들이 바다 위에 줄줄이 떠 있어 눈을 뗄 수가 없다. 돌아오는 배 지붕에는 많은 서양 젊은이가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구리빛 하롱베이 여인이 한가하게 앉아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구리빛 하롱베이 여인이 한가하게 앉아 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바다에 이골이 났는지 한 청년을 노 젓은 뗏목을 바다 위에 띄워놓고 한가하게 손낚시를 즐기고 있다. 쉼 없이 관광객들을 실은 배들은 지나가고 절벽 아래 파도에 의지한 배 위에는, 구릿빛 베트남 여성이 수영복만 입은 채 한가하게 흔들리고 있다.

배는 잠시 길을 잃은 듯, 길 없는 길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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