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1] 하롱베이의 뱃사람들 6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2.27 11:22
  • 수정 2023.03.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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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를 통일시킨 사람,
초강대국 미국을 이긴 사람,
농민과 함께 농사를 짓고 스스럼없이 농주를 나누며
흙을 사랑했던, 따뜻한 사람

하롱베이 재래시장.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해변을 쉬엄쉬엄 구경하다 재래시장에 가니 벌써 파장이다. 요즘 부쩍 팔찌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구경한다. 하노이에서 보았던 이름도 모르는 동상이 4학년 교과서에 나와 있는 걸 보니,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혹시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동상이라도 되었을까.

분단국가를 통일시킨 사람,
초강대국 미국을 이긴 사람,
농민과 함께 농사를 짓고 스스럼없이 농주를 나누며
흙을 사랑했던, 따뜻한 사람,

적국(?)을 많이 살상했다는 과(過)도 있다고 하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부러울 뿐이다. 

지금처럼 동포를 적으로 몰아가며 사냥몰이 하듯, 우리의 바다에서 미국은 일본해라고 공공연히 표기하고, 세계 침략국의 상징 욱일기가 우리의 바다에서 펄럭이며, 그곳을 향하여 우리의 젊은 군인들이 경례까지 부치는 세월 속에 살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그들 국가의 욕망을 부채질해 주었던 방사능 폐기물을 우리의 앞바다에 버린다고 하니 통탄한 일이다. 심지어 이 정부에서는 유야무야 그 나라의 눈치만 보고 별 해가 없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타국의 지도자이지만, 그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다른 데 비해 많은 관광객이 오다 보니 여기저기 환전소가 눈에 띈다.

갓빠에 도착했다. 촬영=윤재훈 기자

보통 배낭여행자의 경비는 패키지보다 훨씬 적게 드는데, 하노이에서 갓빠까지의 경비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잘 모르니 돌아서 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더 많이 걸리고, 현지인들에게 바가지 쓰는 경우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패키지가 더 비싸다는 선입견이 꼭 유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가끔은 이용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략 436,000 동 정도 든 것 같은데, 패키지를 이용하면 240,000동 정도, 약간의 부대비용까지 해도 270,000만 동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한다. 베트남 다른 여행지에서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타산지석을 떠올리니 고사가 생각난다.

(군자란이 피다. 촬영=윤재훈)
군자란이 피다. 촬영=윤재훈 기자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
박달나무 심겨 있고 (爰有樹檀)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可以攻玉)

이 말은 <시경>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5언시의 한 구절로, 남의 산에 있는 거친 돌이라도 나의 옥을 갈 수 있고, 나의 마음도 옥처럼 잘 다듬으면 군자에 이르러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하롱베이 바다를 떠도느라 무척이나 피곤하여, 자정도 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하롱베이의 노을. 촬영=윤재훈)
하롱베이의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 바다가 한 장의 그림 같다. 약간의 안개와 함께 발동기 돌아가는 소리, 바닷가 근처에 엷은 사람들의 목소리, 곧 뱃사람들의 구릿빛 팔뚝에서 굵은 힘줄들이 퍼득거리며, 땀방울 쏟아내는 삶의 현장이 펼쳐질 것이다.

이곳에서는 한국 사람이 많이 와서인지 아니면 중국과 바로 지척이어서인지, 한국 사람을 중국식 발음으로 <한구어>라고 한다. 오히려 영어를 잘 모르는지 <코리아>라고 하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오늘은 좀 바삐 돌아볼 요량으로 10시 정도 오토바이를 빌려 기름을 넣으려 주유소에 갔는데, 아가씨가 아주 불친절하다. 어느 나라나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약간 여유가 있고 얼굴이 기름기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불친절하다. 가난을 벗어나 생활이 윤택해지기 시작하면 옛 시절을 잊고, 겸손함을 잃기도 쉬울 것이다.

불과 50여 년 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조국.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웠던 옛 시절을 잊지 않는 그런 지혜가 더욱 요구되는 시절이다. 어느 나라를 가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며, 그들의 삶에서 어려웠던 우리의 옛 모습이 또렷하게 오버랩된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었다.

(가두리 양식장.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가두리 양식장. 촬영=윤재훈 기자

노을 따라 항구로 돌아오는 시간 하롱베이의 바다가 잠시 잠이라도 자는 듯 잔잔하다 멀리 가두리 양식장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고기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단속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항구로 돌아오는 배들의 엔진 소리가 가끔씩 들려오고, 부둣가에는 진한 색감의 남국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하롱베이 항구, 순박한 베트남인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촬영=윤재훈 기자

항구에 도착하니 시멘트를 싣고 다니는 배가 정박되어 있고, 커다란 크레인으로 시멘트 하역작업이 한창이다. 바닷가에는 송유관이라도 수리를 하는지 몇 사람의 노무자들이 붙어 있다 손을 흔들어준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는데, 작은 가게에는 삼성 가전제품들이 쌓여있다. 집집마다 조그만 신당에는 빨간 불이 밝혀져 있고, 노점들도 벌써 진열장에 불을 밝히고 하염없이 손님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하루의 노고를 이 물담배에. 촬영=윤재훈 기자

쉬엄쉬엄 하롱베이 항구 구경을 한다. 여기저기 배 안에는 낚시질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국의 낯선 피사체에 부산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사내가 홀로 배 안에서 월남식 물담배를 깊이 폐 안으로 들이키면서 하루의 노고를 날리고 있다. 해풍 따라 흘러가는 저 하얀 연기 속에 그의 꿈과 추억들도 흩어지고 있을 것이다.

배 안의 남자는 우리들의 옛 시절 모든 가정에 필수품이었던 추억 어린 석유 곤로를 켜더니 성긴 손으로 식사 준비를 하면서 같이 먹자고 한다. 생선이 몇 마리 들어가 있는 찌개에 무잎을 데쳐서 먹는다. 큰 물통에는 보드카를 가득 채워놓고 플래스틱 통에 옮겨, 한 잔 그득 따라 주면서 마시라고 준다. 서로 몇 순배를 돌리면서 생선찌개랑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에 전기밥통도 있으니 더 먹으라고 한다.

(베트남의 어민들. 촬영=윤재훈)
베트남의 어민들. 촬영=윤재훈 기자

배 안에는 선반처럼 작은 신당이 걸려있고 그 위에는 타다남은 붉은 향들이 잔뜩 담겨있고 바닥은 언제 닦았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가 자욱하다. 이 움직이는 배 안에서 어떻게 저것이 서 있는지 궁금하다.

한 시간여 즐거운 식사를 하고 나는 줄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보니, 가방에 단감이 두 개 있다. 껍질째 나누려고 하니 농약을 많이 하는지 꼭 깎아서 먹으란다. 칼을 잡고 껍질을 벗기는데 밖으로 돌려 깎는다. 갑자기 문화적 충격을 느낀다.

<안으로 깎는 문화>와 <밖으로 깎는 문화>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밖으로 깎은 것은 상대에게서 그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까? 안으로 깎은 것은 혹시라도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찾고자 하는 <자기 순결성>의 발로는 아닐까?

상대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면 사람 사이에 해결책을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이혼 1위의 국가라는 대한민국, 그것은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기 때문은 아닐까, 오직 모든 잘못은 너에게 있다고 하기 때문에 이 극단의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이런 말이 기억난다.

여인은 등나무와 같고 남자는 소나무와 같다.
여인은 따르면서 남자를 따르게 한다.

하롱베이 바다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바다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어느덧 결혼한 지가 3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오랜 세월이다. 고마운 사람이다. 젊은 날에는 내가 부인을 이기고, 내 마음대로 살아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두 사람이 만나 한 곳을 보면서 가는 길, 서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때로 불협화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원인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결국은 “내 탓이었다.” 

내가 이기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리석었던 일들이, 실상은 이긴 것이 아니었다.

하롱베이 아오자이의 여인. 촬영=윤재훈

비익조(比翼鳥)라는 새가 있다.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전설의 새에 비유해, 그 시대 시인인 백거이가 ‘장한가’에서 읊었다. 양귀비의 권세에 세도정치가 일어나고 견디다 못해 ‘안사의 난’이 일어난다. 거대한 당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요부를 죽이라는 압박이 거세지고 결국 자결한다. 그런데 그녀를 잊지 못하는 왕을 백거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죽어서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가 되자고 했고,
죽어서 땅에서 만나면 연리자가 되자고 약속했는데,
그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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