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식물과 사랑에 빠졌습니다’...김남현 식물작가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5.02 16:41
  • 수정 2023.10.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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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의 교감을 사진, 영상, 글로 담기 위해 여행하는 ‘식물작가’

‘Plants make me happy!’

- 김남현 식물작가

김남현 식물작가의 옥상정원에서. 촬영=김남기 기자
김남현 식물작가의 옥상정원에서. 촬영=김남기 기자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김남현 식물작가는 식물과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식물사진에 몰입했고, 사진으로 식물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사진도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식물과의 사랑을 표현했다. 식물을 찾아 전국 일주도 여러 차례 했다. 자동차로, 자전거로, 도보로, 산천을 누볐다. 좋은 정원이 있는 곳이라면, 해외도 마다하지 않고, 몇 달씩 머물렀다. 바로 김남현이 사랑하는 식물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식물작가 되다

나만의 시각으로 식물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동안의 글쓰기는 직장생활에서 몸에 밴 사무적이고, 하드웨어적이었다.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 교육에서 뒤통수를 딱 맞았다. 지금까지 쓴 글은 장난이었다.
- 김남현 식물작가

이후 김남현은 글쓰기 교육이라면, 어디든 가서 배웠다. 더욱 창의적인 글쓰기를 위해서 국립도서관, 50+센터 등에서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는 국립수목원에서 교육받고 산림청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김 작가는 좋아하는 식물을 가까이 접하면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김 작가는 식물 사진과 더불어 식물이야기를 글로 담아 식물 전문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나름 작은 돈벌이와 독자들로부터 호응받고 있다.

김남현 작가의 온실 '아이비. 사진=김남현 제공
김남현 작가의 온실 '아이비. 사진=김남현 제공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그동안 실내에서 키우던 아이비를 밖으로 꺼내놓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합니다. 움츠리고 답답해 있었을 아이들에게 온실 문을 활짝 열고, 이른 봄비와 함께 식물에게 맛있는 영양제가 되어줄 공중습도를 듬뿍 담아 주고 있습니다.

아이비의 조상은 영국과 유럽입니다.

잉글리쉬 아이비는 실내와 실외에서 모두 잘 자라고 매력적인 식물입니다.  이제 아이비를 잘 기르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 김남현 작가 ‘아이비 일요 단상’ 식물잡지 기고 중에서

식물영상 크리에이터 되다

사진에서 출발한 식물이야기는 이제 동영상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꽃의 흔들림으로 바람을 읽고, 시선의 흐름에 따라 풍경을 연속으로 담아내는 것, 그리고 음악과 아름다운 글의 어울림으로 편집의 묘미까지 덧붙여져, 식물이야기가 더욱 업그레이드됐다.

좀 더 좋은 사진과 영상을 찍기 위해 산에 오를 때도 조명기를 챙긴다. 더 좋은 빛에서 식물의 내면까지 필름에 담으려 했다. 덕분에 늘 함께하는 여행 동반자 아내도 쉽지 않은 여행길을 오른다. 그래도 부부는 늘 사진 앵글 뒤편에서 식물이야기를 사진에 담아낸다.

부인과 국내 자전거 여행중. 사진=김남현 제공
부인과 국내 자전거 여행중. 사진=김남현 제공

식물여행의 동반자

김 작가의 식물여행에는 늘 부인이 동반한다. 한 달 내내 여행을 다니면서 나만의 식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누구에게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과 글로 식물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부부의 인연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랑을 싹텄고, 서른아홉에 결혼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달라도 소재는 늘 식물이야기이다. 함께 한 산악회에서 놀랐다. 한두 번 산에 오르면, 지치겠거니 했다. 하지만, 30개 산을 48일 만에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다들 혀를 찼다.

국내 식물원, 정원 여행. 사진=김남현 제공 
국내 식물원, 정원 여행. 사진=김남현 제공 

작정하고, 전국을 3년을 돌아다녔다. 국내, 국외 여행을 닥치는 데로 다녔다. 국내 여행은 기차로,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차로 한 번씩 종주했다. 요즘은 차박(자동차에서 수면)과 오토바이 캠핑이 유행이지만, 난 일찍부터 시작한 셈이다. 내 곁에는 늘 아내가 여행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 김남현 작가

자전거 여행 중 부인과 함께 하늘을 날으는 멋진 포즈. 사진=김남현 제공
자전거 여행 중 부인과 함께 하늘을 날으는 멋진 포즈. 사진=김남현 제공

해외 식물여행..식물은 가꾼 사람의 마음을 닮아 간다

해외식물여행은 북중미 등 식물과 정원 위주로 몇 달씩 머물렀다. 나라마다. 지형마다, 기후마다의 식물의 모양과 풍경이 새로웠다. 정원은 가꾼 이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잘 꾸려진 정원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방문지의 숙소에서는 김 작가의 전직인 호텔매니저의 직업병이 되살아난다. 퇴실 시에 숙소의 모든 것을 잘 정리 정돈하고, 사용 전보다, 더 깔끔하게 한다. 그리고, 약간의 팁과 감사편지를 남긴다.

캐나다 게스트하우스 '리사'와 부인.  사진=김남현 제공
캐나다 게스트하우스 '리사'와 부인.  사진=김남현 제공

캐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리사’에게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아 며칠 더 머무르기를 간청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동안 좋은 친구가 됐다. 그리고 나의 감사 편지에 감명받고 언제든 찾아오라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해외에서 만난 정원들은 김남현 작가의 또 다른 인생이모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답답한 도시를 넘어, 여행길에 오르면, 마주하는 풍경을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즐기고 싶은 욕망을 사로잡는 것이다. 바로 ‘식물카페’이다.

해외에서 만난 정원. 사진=김남현 제공
해외에서 만난 정원. 사진=김남현 제공

이모작인생 ‘식물카페’... 나만의 공간에서 휴(休)를 즐기다

김 작가는 3년 전에 인생이모작으로 식물 카페를 만들기 위해 평창에 집을 장만했다. 김 작가는 식물카페를 만들기 위해, 코로나 전에는 전 세계를 다니면서 식물원과 정원을 다녔다. 그래서 김 작가의 식물카페는 좀 색다르다. 작은 카페에 디저트 하나 먹으면서 예쁜 사진을 찍는 식물카페가 아니라, 나만의 공간 안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식물과 내가 공존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식사와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더불어 스파와 작은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식물카페를 구상하고 있다.

식물카페의 컨셉은 휴(休)이다. 식물카페는 나만의 프라이빗한 온실에서 마음껏 놀다가 때가 되면, 밥도 주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쉼터이다.

예술인들이 식물카페를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시인이나 작가, 음악하는 사람들이 사계절 찾아와 자기 작품을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 김남현 작가

임자도 튤립공원. 사진=김남현 제공

김 작가가 식물을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제주 하얏트 호텔 근무 시절부터이다. 그 당시 다른 호텔과 달리 제주 하얏트 호텔은 라운지에 식물정원이 있었고, 시낭송회와 음악회가 공존했다. 이때부터 김 작가는 우리나라에 식물을 소재로 한 공간에서 힐링도 하고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을 꿈꾸었다.

김 작가가 여행할 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성수기가 되며, 먹고 자는데 너무 많은 경비를 지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창하게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것보다, 귀농귀촌인은 민박을 쉽게 운영할 수 있단 것에 착안에서 귀농·귀촌 교육도 받고, 누구나 쉽게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에어비앤비(전 세계 숙박공유 서비스)를 운영해서 숙박과 관광지 여행을 패키지화해서 가이드해 주는 것이다. 김 작가의 오랜 기간 외국여행과 호텔근무 노하우가 한국을 찾은 여행객에게 만족감을 줄 것이다.

‘돈 버는 게 제일 쉬웠다?’...팔색조 직업

김남현 작가는 돈 버는 것이 제일 쉬워 보인다. 손대는 것마다 잘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그의 노력과 힘겨움이 팔색조 직업을 갖게 했다.

# 첫 직업 KBS, EBS 입사

김 작가는 1976년부터 고등학교 전자과를 졸업하고, 18세에 KBS 라디오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오디오 엔지니어로 일했다. KBS가 남산시절에 EBS하고 분리됐을 때 우면동 EBS로 자리를 옮겼다.

유명한 말죽거리도 없던 시절. 명문대가 득실거리는 틈바구니에서 TV 수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별표 전축, 독수리 전축 시절 음악다방 오디오 설치도 했었다. 그리고 군대 영장을 받고 그의 방송국시절은 막을 내렸다.

하얏트호텔 매니저 시절 김남현. 사진=김남현 제공
하얏트호텔 매니저 시절 김남현. 사진=김남현 제공

# 제주 하얏트 호텔 입사

제대 후 김 작가는 제주 하얏트 호텔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호텔 도어맨에서 매니저까지 80년대 제주관광의 역사를 함께 했다. 고졸 출신이기에 호텔에서 좋은 보직을 갖거나 진급은 어려웠다. 그래서 김 작가는 제주 산업대학교 관광과를 졸업해서 호텔리어로서 성장의 발판을 삼았다. 이후 제주대학에서 호텔경영과에서 배움의 길을 이어갔다.

제주관광 에피소드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가 처음으로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당시만 해도 중문관광단지에는 한국콘도와 99칸짜리 한옥이 있었다.

80년대에는 신혼여행객 중 99%가 제주도로 갈 때이다. 제주에는 렌터카회사가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택시기사가 제주도 가이드 역할을 했다.

나는 제주도에서 개인택시를 돈 주고 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요금을 내고 싶어도 내지를 못했다. 제주도에서 개인택시의 관광요금은 호텔에서 책정하고, 정해진 금액에 일부분을 호텔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호텔에서 개인택시 관광을 소개하다 보니, 이뤄지는 관행이었다. 그래서 택시기사나 관광식당에서 나에게 베푸는 호의가 많았다.

- 김남현 작가

요즘은 결혼식 웨딩카에 조화 장식을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80년대 만해도 보기 힘들었다. 김 작가는 외국에서 웨딩카에 장식한 것에 착안해서 국내에서 시연하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전국적으로 대유행으로 번졌다.

IMF 이후 김 작가는 호텔에서의 경험을 살려 여행사로 이직했다. 제주도 귀빈실이나, 기차 여행객 식당 매니저, 호텔 총지배인 등 39세까지 샐러리맨으로서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게 됐다.

# ‘헌 옷, 고장 난 가전제품 팔아요~’...화이트칼라에서 넝마주이로

요즘엔 잘 듣기 어렵지만, 동네 용달차에 큰 확성기로 ‘헌 옷, 고장 난 가전제품 팔아요~’라는 방송을 듣곤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헌 옷 수거하는 일을 했다. 예전으로 말하면 ‘넝마주이’였다.

넥타이를 벗고, 친구들도 안 만나고, 트럭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을 했다. 그런데 남들에게 폼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호텔에서 한 달간 일한 몫을 하루에 돈을 다 벌었다.

또 가전제품은 고물상에 넘기지 않고, 직접 수리해 중고로 팔아서 몇 배의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호사다마였던가? 장사가 좀 된다 싶더니, 많은 사람이 헌 옷 수거에 뛰어들어, 가격이 폭락하면서,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 컴퓨터 조립 수리기사

헌 옷 수거 장사로 종잣돈을 모아서 컴퓨터 판매 수리점을 개업했다. 마침 IT 바람이 불면서 컴퓨터 수요가 급증했다. 하루에 20대의 컴퓨터를 판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동네에 이마트가 들어서자, 컴퓨터 가게에는 파리만 날리게 됐다. 하다못해 마우스 하나 안 팔리는 지경이었다.

# 퀵서비스...다시 거리로 나오다

지금도 오토바이로 전국을 일주하며, 여행을 즐긴다. 이것은 바로 퀵 서비스를 하면서 쌓은 오토바이 스킬이 도움이 많이 됐다. 오토바이는 제주도 하얏트호텔 근무시절부터 즐겨 탔었다. 매장을 내어 장사하는 것이 여의찮았고, 당시 퀵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한 것을 기회로 무전기와 오토바이 한 대로 어디든 물건을 실어 날랐다.

지금은 배달문화가 보편화됐지만, 당시에는 주로 서류나 짐들을 실어 날랐는데,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배달을 마치면, 배달 주문에 무전기에서 불이 날 정도였다.

 

CCTV 설치시절 사무실. 사진=김남현 제공

# CCTV 설치기사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나만의 기술을 활용한 사업을 시작했다. 예전 방송국 경력과 TV수리 자격증, 컴퓨터 조립 수리 경력들이 종합된 CCTV 설치 일을 시작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봉급쟁이 한 달 벌이를 하루에 벌 만큼 큰 돈벌이가 되었다. 그때의 작업 후유증으로 아직도 어깨가 좋지 않다.

당시에 CCTV설치가 붐이었지만, 가장 큰 성공요인은 바로 ‘바다이야기’의 등장이다. 전국 오락실이 ‘바다이야기’ 도박장으로 변신했다. 동네마다 바다이야기는 한두 개 있을 만큼 성행했고, 이곳에 CCTV 설치는 서로 웃돈을 들고 찾아올 만큼 대박 사업이었다.

김남현 작가의 취미, 봉사 활동. 사진=김남현 제공

내 그릇에 맞게 사는 삶

10년 전부터 여가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식물 여행을 많이 다녔다. 경제생활을 일찍 접긴 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돈이 많아서는 아니다. 부의 기준이 좋은 차나 집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삶이 풍요로운가?’는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꾸려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 김남현 작가

김 작가는 오랫동안 대한적십자 봉사활동을 해왔다.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또한 김 작가는 민방위교육장에서 응급처치하고 심폐소생술을 가르치는 강사를 가르치고 있다.

아마추어 햄 무전사활동 중인 김남현 작가. 사진=김남현 제공

김 작가는 취미생활로 낚시도 하고, 아마추어 햄 무전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오랜 취미생활인 햄 무전사는 집 옥상에 남아있는 6미터 무선안테나에서부터 그 역사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시간에 맞게 주파수를 맞추면, 어디든 전 세계 사람들과 교신한다. 영어와 일어는 자신이 있어서 언어가 가능한 사람과 무선으로 만남을 갖는다. 인터넷이 대세이지만, 아날로그식 만남은 지구 반대편의 미지의 친구와의 조우에 아직도 설렘으로 다가온다.

- 김남현 작가

식물을 사랑한 김남현 작가의 식물카페가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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