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의릉’ 비 오는 날의 수채화(ft.청벚꽃)...노원50+ ‘서울 역사여행과 여행작가 되기’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4.20 17:22
  • 수정 2023.04.2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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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입구. 비가 내려서 인지 한산하다. 의릉사이에 두고 한국종합예술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촬영=김남기 기자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어제부터 일기예보에 촉각이 발동했다. 낯선 곳. 낯선 만남의 설렘보다, 날씨가 더 신경 쓰였다. 전날 강풍에 비 소식이 틀리길 간절히 기대했건만, 일기예보는 야속하게도 정확했다.

50+ 여행작가반 시니어를 만나기 위해 의릉을 찾았다. 산책하는 동네 시니어들이 오가는 의릉 앞 풍경은 옅은 빗줄기에 더욱 고즈넉하다. 의릉 앞 벤치에서 여행작가반 시니어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빗속에서도 윤재훈 강사는 의릉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첫 여행지 ‘의릉’의 세계로 몰입했다.

의릉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여행작가반 윤재훈강사. 촬영=김남기 기자

노원 50플러스센터의 ‘내 마음의 안식처, 서울 역사여행과 여행작가 되기’ 교육은 총 6회차로 매주 화요일 서울의 명소를 찾아 여행한다.

여행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호기심이 발동할 것이다. 여행에 그치지 않고, 서울의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강사의 입담이 곁들여진다. 그리고 자신이 눈으로 보고 느낀 감상평을 써내려 가면, 이를 시인 윤재훈 강사가 윤기 나게 다듬거나, 더욱 풍성하게 만들 재료들을 조언한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서로의 여행 수필을 담은 문집을 만들어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에도 굴하지 않고, 단체사진은 찍어야 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50+ 여행작가반, 시니어 첫나들이 ‘의릉’

의릉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몰아쳤다. 단체사진은 찍어야 한다는 불문율에 우산 접고, 옷깃 저미고,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한 폭처럼 멋진 풍경화를 만들어 냈다.

의릉은 조선왕조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 씨의 능으로 왕릉과 왕비릉이 나란히 조성된 곳이다. 천장산에 위치한 의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으로 조선시대 왕릉 가운데 흔치 않은 구조이다.

의릉. 왕과 왕비의 봉분을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봉(同原上下封).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은 조선왕릉 중에 전망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고, 천장산 산책로를 따라 가면, 강북지역의 풍경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천장(天藏)은 ‘하늘이 숨겨놓은 곳’ 의미로 불교에서는 명당으로 유명하다.

이윽고, 의릉 정자각에 발길을 서둘러 옮겼다. 조선 왕릉의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 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렀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정자각. 시니어의 휴식공간으로 그 쓰임새가 고마웠다.

의릉 정자각 앞에서 강사의 설명에 열공모드로 전환.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 정자각에서 윤 강사는 경종과 선의왕후 시대의 역사 이야기를 담아냈다. 역사 이야기만 해도 흥미롭지만, 여기에 퀴즈를 가미하니, 시니어들의 경쟁심과 흥미가 더해졌다. 숱한 오답 속에 답을 찾아가며, 의릉이 품고 있는 역사가 한 올씩 풀어헤쳐졌다.

여행작가반 김정애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여행작가반 김정애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김정애 (서울 서촌 거주)

50대 중반. 직장생활을 잠시 접고, 지금은 건강을 위해 쉬고 있다. 50+센터에서 세계인문학, 사진 찍기 등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다. 너무 재밌고 좋은 분들이 많다.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단톡방에서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여행작가반 수업을 준비한 강사와 수강생이 고맙다. 글을 쓴 지 오래되어서 의릉 역사탐방을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유적지 답사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쓴 글을 수정하고, 문집까지 만들어 준다니,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서울에는 의릉처럼 도심지에 숲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의릉 위로 솟은 크레인이 흉물스럽다.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 위로 솟은 크레인이 흉물스럽다.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은 우리의 눈높이보다 한참 높다. 천장산 산책길에서 나뭇잎 사이로 겨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의릉을 담은 사진 앵글에는 크레인이 흉물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피하고 싶어도 사방이 크레인으로 덮여있다. 곧 고층아파트가 의릉을 병풍처럼 감싸 안을 듯.

천장산 산책길 고목. 기괴한 모습이 경이롭다.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 뒤편으로 난 천장산 산책길을 우중진담(雨中眞談)을 나누며, 우리는 빗속을 거닐었다. 그러다 문뜩 누군가 빚어 놓은 듯한 나무를 발견했다. 한그루가 두 그루가 되어 뻗어 나가는 무척 기괴한 모습이다. 시니어들의 셔터 소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여행작가반 노홍명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여행작가반 노홍명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노홍명 (안암동 거주)

코로나 때는 50+센터 교육을 주로 온라인으로 수강했다. 스피치교육에서 내가 생각한 내용을 조리 있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여행작가반에서는 글쓰기를 배우려고 한다.

나는 직장생활에서 몸에 밴 습관으로 함축적으로 보고서를 쓰거나 말하기는 되지만, 선생님처럼 윤기 있는 글을 쓰거나 말하는 건 힘들다. 글을 몇 줄 쓰다 보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작가반에서 나만의 글쓰기 훈련을 하고 싶어서 노력 중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그래도 우리는 탐방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그래도 우리는 탐방한다. 촬영=김남기 기자

'의릉'의 비애...중앙정보부에 가려진 역사

의릉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기자는 나고 자란 곳이 의릉에서 걸어서 20여분 남짓 되지만, 의릉의 존재를 오늘에야 알았다.

어렸을 적 소풍을 다니던 태릉, 홍릉은 너무나 잘 알았지만, 이곳에 왕릉이 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의릉이 인구에 회자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게 하는 장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중앙정보부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릉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강당. 겨우 숨구멍만 보이는 창문. 촬영 김남기 기자
의릉에 위치한 옛 중앙정보부 강당. 겨우 숨구멍만 보이는 창문. 촬영 김남기 기자

의릉을 휘감은 천장산을 한 바퀴 돌아 낯선 회색빛 건물을 맞이했다. 왕릉에 이런 건물이 있다니 의아했다. 범상치 않은 건물, 바로 중앙정보부 강당이 버티고 서있었다. ‘1972년에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역사적인 장소로 국가등록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라는 강사의 설명에 여행작가반 시니어는 놀라움과 안타까움의 한숨을 지었다. 이 강당에는 무엇을 감추려 했는지 몰라도 창문이 거의 보이지 않은 정도로 건물에 묻혀 있었다.

여행작가반 문경원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여행작가반 문경원 시니어.  촬영=김남기 기자

문경원 (남양주시 별내동 거주)

노원구에서 10년 살았고, 별내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남양주시에서 환경해설사 활동과 마을공동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50+교육에 참여했다.

여행작가반에 온 계기는 마포구 도서관에서 글쓰기 활동 후에 50을 넘기면서 자기 인생을 한번 찍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글을 쓰고 자기 성찰을 하고 싶었다. 더불어 여행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사진만 남았는데 글까지 남길 수 있어 행복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남아 있는 중앙정보부 건물. 정보 기밀을 태우는 소각터 일까?. 촬영=김남기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남아 있는 중앙정보부 건물. 정보 기밀을 태우는 소각터 일까?. 촬영=김남기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남아 있는 중앙정보부의 자취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는 의릉을 사이로 두고 좌우로 갈려져 있다. 서로 왕래할 수 없는 지형으로 한 캠퍼스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현재 정보부 본관은 문화재청의 의릉 복원공사로 허물었다. 미술원은 의릉 왼편에 구 국가정보대학원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학교 본부는 의릉 오른쪽에 있어 학생들이 밥을 먹으려면 천릿길을 가야 할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

기자: 중앙정보부에 와본 적이 있나요?

시니어: 공안 사범이 돼야지 오지 와 볼 일이 있나요? 우리가 70년대에 해외 한번 나가려면, 26개 서류에 도장이 찍혀야 했죠. 중동에 건설현장에 가고 싶어도 군미필자였던 나는 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어요. 그때 중동에 나갔으면 지금 부자가 됐을 텐데.. 그때 이곳 이문동 땅값이 쌌는데. 그때 사놓았으면, 저기 아파트 한 채 분양도 받고...(의릉 너머로 이문동 재개발 아파트의 크레인이 곳곳에 뿌리를 내린 모습을 보며)

우린 복도 없어, 그냥 밥만 먹고 사는 거야...

청벚꽃의 매력을 담아내고야 말겠다. 촬영=김남기 기자
청벚꽃의 매력을 담아내고야 말겠다. 촬영=김남기 기자

여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청벚꽃'

우리가 어느 나무를 지나려던 순간 홀연히 나타난 한 사람이 나무를 가리키며, 자세히 보라고 한다. 그저 파란 나뭇잎인 줄 알았던 곳에 꽃망울이 있었다. 청벚꽃이란다. 처음 보는 벚꽃을 사진에 담으려고, 경쟁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청벚꽃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물다고 한다. 서산 개심사에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의릉에서 보다니, 운이 좋았다. ​알아보니, 청벚꽃은 10개에서 20개의 꽃잎을 가지고 있고, 꽃잎은 노란색에서 청록색으로 변신한다고 한다. ​

여행작가반 시니들의 ‘비오는 날의 수채화’는 청벚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뒷풀이는 근처 시장터에서 수제비와 칼국수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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