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㉞]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17...지리산과 해동공자 최치원은 어디로 사라졌나?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9.25 11:31
  • 수정 2023.09.28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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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꽃이 땅에 가득하고
가을엔 낙엽이 하늘을 덮었는데
지극한 도(道)는 문자를 여의고
원래 눈앞에 있다네.


진리를 말할 것 있나
강이 맑으니 달그림자 통하고
단풍잎은 가을 산을 비었네.

- 화개동시(花開洞詩), 고운 최치원

지리산 연하봉.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연하봉.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신라의 기인, 이 땅의 풍류의 시대를 연 해동공자 최치원도 권력의 염증을 느끼고 명산을 찾아 지리산이나 가야산으로 스며든다.

동쪽 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딴 세계라,
신선이 옥침(玉枕)을 베니
순식간에 천 년이 되었네.

일만 골짜기에 우레 소리 울리고
일천 봉우리에 비 맞은 초목 새로워,
산 승은 세월을 잊고
나뭇잎으로 봄을 기억하네.

비 뒤에 댓빛이 고아
자리를 흰 구름 사이로 옮기고
적막해 나를 잊었는데
솔바람이 베개 위를 스치네.

봄에는 꽃이 땅에 가득하고
가을엔 낙엽이 하늘을 덮었는데
지극한 도(道)는 문자를 여의고
원래 눈앞에 있다네.

시내 달 처음 나는 곳
솔바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소쩍새 소리 귀에 들리니
그윽한 흥취 알 수 있으리.

산중의 흥취 말은 들었다지만
어느 사람이 이 기틀을 알리
무심코 달빛 보며
묵묵히 앉아 기틀을 잊었네.

진리를 말할 것 있나
강이 맑으니 달그림자 통하고
단풍잎은 가을 산을 비었네.

긴 바람은 앞 골짜기에서 불며
소나무 위엔 담쟁이 덩쿨 얽혔고
시내 가운데는 흰 달이 흐르네
절벽 위엔 폭포 소리 웅장하고
온 골짜기엔 눈이 날리는 듯하네.

東國花開洞 (동국화개동)
壺中別有天 (호중별유천)
仙人推玉枕 (선인추옥침)
身世훌千年 (신세훌천년) <*훌=홀연훌忽也>

萬壑雷聲起 (만학뢰성기)
千峯雨色新 (천봉우색신)
山僧忘歲月 (산승망세월)
惟記葉間春 (유기엽간춘)

雨餘多竹色 (우여다죽색)
移坐白雲間 (이좌백운간)
寂寂因忘我 (적적인망아)
松風枕上來 (송풍침상래)

春來花滿地 (춘래화만지)
秋去葉飛天 (추거엽비천)
至道離文字 (지도이문자)
元來在目前 (원래재목전)

澗月初生處 (간월초생처)
松風不動時 (송풍부동시)
子規聲入耳 (자규성입이)
幽興自應知 (유흥자응지)

擬說林泉興 (의설임천흥)
何人識此機 (하인식차기)
無心見月色 (무심견월색)
默默坐忘機 (묵묵좌망기)

密旨何勞說 (밀지하노설)
江澄月影通 (강징월영통)
長風生前壑 (장풍생전학)

赤葉秋山空 (적엽추산공)
松上靑蘿結 (송상청라결)
澗中流白月 (간중유백월)
石泉吼一聲 (석천후일성)
萬壑多飛雪 (만학다비설)

- 화개동시(花開洞詩), 고운 최치원

이 친필시(親筆詩)는 ‘화개동시(花開洞詩)’라고도 하는데 쌍계사가 있는 화개면은 하동군의 최북단에 있다.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선경(仙境)의 별유천지(壺中別有天)라 하여 화개동천(花開洞天)이라 불렀다.

이 시는 자연에 몰입한 고운의 도가적(道家的)인 선풍(仙風)의 풍모(風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옥류. 촬영=윤재훈 기자
옥류. 촬영=윤재훈 기자

선조신묘연간(宣祖辛卯年間) 서기 1591년에 지리산에 어떤 노승이 암굴에서 여러 질의 이서(異書)를 얻었는데, 당대의 학자요 시문가(詩文家)인 지봉(芝峰)에 의해 고운의 친필로 확인되어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수재(收載)하였다. 원래는 16수였는데 반은 소실되고 8수만이 남아 있다.

밝은 달은 시냇물에 짝을 지었고
맑은 바람은 읊조리는 다락에 들어오네
옛날 나그네로 왔던 곳
오늘은 그대를 보내며 노네.

明月雙溪水 (명월쌍계수)
淸風入詠樓 (청풍입영루)
昔年爲客處 (석년위객처)
今日送君遊 (금일송군유)

이 시도 친필 시첩 16수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

최치원. 퍼블릭도메인
최치원. 퍼블릭도메인

골품제도(骨品制度)라는 신라의 사회 제도하에서 고운은 육두품(六頭品)이었다. 득난(得難)이라 하여 당대의 지배계급이었다. 그러나 신라 사회의 주인은 성골, 진골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강고한 성격으로 894년에 시무책십여조(時務策十餘條)를 진성여왕에게 올려서 문란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진골 귀족의 부패와 지방 토호들의 반란 등에 대한 개혁을 제시한 것이다. 왕은 그를 육두품의 최고 권력인 아찬까지 올렸으나, 사회의 모순을 외면하던 진골 귀족들은 그의 개혁안을 묵살하였다. 결국 외직으로 전전하다가 그 아까운 학식과 경륜을 접어둔 채 산속으로 은둔하고 만다.

계곡 물소리만이 미몽(迷夢) 간이 아니라고 깨워준다. 촬영=윤재훈 기자
계곡 물소리만이 미몽(迷夢) 간이 아니라고 깨워준다. 촬영=윤재훈 기자

최치원은 가야산에도 들어가 독서당에 은거하면서 시를 짓고 계곡의 암반에 새겼다. 독서당과 시석(詩石)은 홍류동의 경관에 상징을 부여하였다.

미친 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 하네
행여나 세상 시비 귀에 들릴까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감쌌네.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롱산)

-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독서당에서 짓다.

이 시는 농산정(籠山亭), 혹은 가야산(伽倻山) 홍류동(紅流洞) 시라고도 불리며, 홍류동 계석상(溪石上)에 자작자제(自作自題)한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최치원은 방랑길에서 돌아와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으로 입산한 뒤로는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귀 밖으로 돌리고, 자연의 품에 안겨 살면서 출세간적 기개(出世間的氣槪)를 보였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고결(高潔)과 청정(淸淨)뿐이었을 것이다.

허유소부고사문경, 허유세이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br>
허유소부고사문경, 허유세이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허유세이’(許由洗耳)라는 말이 있다. 영천세이(潁川洗耳)라고도 한다.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다’이다.

이 동경(銅鏡)은 가장자리를 8엽(葉)의 꽃모양으로 파내어 그 안에 산수와 인물 등을 양각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고려 시대 거울이다. 뒷면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숲속에 두 인물이 있는데, 중국 고대 요(堯) 임금 때 은사(隱士)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기산영수(箕山潁水)」 고사를 표현하고 있다.

물가에 앉아 귀를 씻으려는 왼편이 허유이며, 망아지를 끌고 오는 인물이 소부이다. 이렇게 고사 내용을 소재로 하여 공예품에 서사적으로 표현한 예는 드물다.

이 이야기는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의 태평성대(太平聖代)로 잘 알려진 요·순(堯·舜)시대로 거슬러 간다.

요(堯)임금이 나이가 들어 나라를 다스리기 힘들어지자, 왕위를 물려줄 새로운 인물을 물색했다. 아들 단주(丹朱)를 사랑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계자를 물색하던 요임금은 세상 부귀영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는 고고한 선비 허유(許由)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는 학문이 깊었으며, 겸손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정의를 지키고, 의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요임금은 그를 찾아가 "청컨대 천자의 자리를 받아주시오"라고 하자 허유는 사양하며 말했다.

"뱁새는 넓은 숲속에 집을 짓고 살지만 나뭇가지 몇 개면 충분하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은 마셔도 자기 배만 차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祭主)는 음식이 차려져야 제사를 모시지만 음식 하러 부엌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허유는 이렇게 거절하고 말없이 기산(箕山) 아래 흐르는 영수(穎水)로 떠나버렸다. 요임금이 다시 그를 찾아가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청하자, 허유는 이를 또 거절하고, "구질구질한 말을 들은 내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수의 물에 귀를 씻었다.

그때 그의 친구 소보(巢父)가 소를 끌고 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허유에게 물었다. “여보게, 왜 그렇게 강물에 귀를 씻는가?" 허유가 "요임금이 찾아와 나더러 천하(天下)나 구주(九州)라도 맡아 달라고 하기에, 행여나 귀가 더러워졌을까 씻는 중이라네. 이 말을 들은 소보가 크게 웃자, 허유는 그 연유를 묻는다.

"자네가 만일 높은 언덕과 깊은 계곡에만 살았다면, 누가 자네를 보고 천하를 맡아 달라고 하겠는가? 
자네가 일부러 떠돌아다니며 세상을 기웃거리니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며, 황소를 몰고 거슬러 올라가 상류의 물을 먹였다.

미진(微塵)은 어디에 있는냐!. 촬영=윤재훈 기자
미진(微塵)은 어디에 있는냐!. 촬영=윤재훈 기자

조선 중기 학자 배용길의 금역당집(琴易堂集)에서도 보면, 
”군자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소인은 기뻐하고, 군자는 명성을 부끄럽게 여기는데, 소인은 오히려 기뻐한다.“

君子之所恥, 小人之喜也(군자지소치 소인지희야)
君子恥名, 小人喜名(군자치명 소인희명)

불교경전 유교경(佛敎, 遺敎經)에도 보면,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不知足者, 雖富而貧(부지족자 수부이빈)
知足之人, 雖貧而富(지족지인 수빈이부)

그런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한 번도 세상은 이렇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양은 도시락이 더욱 요란하듯이, 세상은 허세와 아집으로 점철(點綴)된다.

"아귀는 배는 수미산만 한 데,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여, 항상 아귀다툼한다. 세상의 권력을 잡고자 하는 정치인과 관리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에 신물이 난다. 국민은 항상 당하기만 하고 뒷전이다"

다시 공자(孔子)의 말씀이 죽비(竹篦)를 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
獲罪於天 無所禱也(획죄어천 무소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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