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 ⑲] 산악인의 로망,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 2, 구례 화엄사에서 노고단 돌탑까지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6.14 15:05
  • 수정 2023.06.2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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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히 그 먼 길을 걸어가는가?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 주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은 무연히 그 산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한 번쯤은 지리산 종주를 염원한다.

노고단 오르는 길. 촬영=윤재훈 기자
노고단 오르는 길. 촬영=윤재훈 기자

드디어 지리산을 오른다. 이제 4시간 정도를 꾸준하게 오르면 노고단 대피소에 다다를 것이다. 전날 비가 내려 여기저기 흙탕물이 길 위로 넘치면서 등산객들의 발길을 막는다. 비가 온 뒤의 공기는 더욱 청량하다. 광합성 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중인 숲속에서는 피톤치드 향이 넘치게 흘러 다니고, 물소리에서는 음이온이 둥, 둥, 떠다니며, 몸은 정신까지 정갈하게 해준다.

현대인들은 매일 ‘양이온’ 속에서 산다. 양이온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전자제품들에서 많이 나온다. 특히 전자레인지 등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오랜 시간이 양이온 속에 노출되다 보니 쉽게 짜증을 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매일 인면수심의 범죄가 일어나 인류의 미래를 더욱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더구나 땅덩어리가 좁아 아파트가 모두의 주거환경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의 생활은 ‘병든집 증후군’ 속에서 어린 자녀들이 아토피와 비염 등으로 심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인이 하루 종일 머무는 공간은 그야말로 인간에게 병을 유발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벽지를 비롯한 집 안에 있는 모든 플래스틱 제품이 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이중 창으로 방음이 잘되는 집들은 완전히 밖과 차단된 병든 집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 우리 한옥은 ‘숨쉬는 집’이었다. 집 안과 밖이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공기 순환이 되었다. 인간은 자연과 괴리되면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지나친 편리로만 치닫고 있는 현대인들은 묘한 괴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시누대 길. 촬영=윤재훈 기자
시누대 길. 촬영=윤재훈 기자

울퉁불퉁한 너덜 길을 따라 길게 시누대 밭이 펼쳐져 있다. 이 시누대들은 인근에 여수 오동도(梧桐島)에 가도 많다. 섬은 멀리서 보면 한 장의 오동잎처럼 보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유난히 오동나무가 많아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섬에 동백나무와 조릿대 종류인 이대(시누대, 신이대)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시누대는 특별히 임진왜란 때 큰 활약을 하는데,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최초의 수군 연병장을 짓고 화살로 만들어 나라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면서 ‘동백섬’으로 이름이 높아 오래전부터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요즘은 ‘여수 밤바다’와 여수시의 숙원 사업으로 ‘섬섬100리길’까지 조성 중이어서 한 해 제주도와 버금가는 1,3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숨이 턱, 턱 막힐 때쯤 능선으로 오르며 하늘을 보니 낮달이 떠있고, 멀리 노고단 산장이 보인다. 성삼재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오는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왁자하다. 발아래로 아스라하게 섬진강의 물굽이가 보이고 구례읍도 보인다.

지리산 능선들.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능선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부터는 거의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그렇게 힘든 코스는 없을 것이다. 지리산 종주산행를 하다보면 꼭 포함되어야 할 곳은 천왕봉에서 노고단의 주능선 45km이다. 이 주능선만 포함된다면 등산로와 하산로를 어느 루트로 선택해도 지리산 종주를 한 셈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긴 코스인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경남 산청 대원사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1,507m의 노고단에서 1,915m의 천왕봉까지 가는 길에는 1,500m가 넘은 준봉(峻峯)들은 15개가량 있는데, 주능선들의 평균 고도도 1,500m 안팎이다. 주요 봉우리들로는 1,732m의 반야봉을 시작으로, 삼도봉 1,501m, 토끼봉 1,534m, 명선봉 1,586m, 형제봉 1,452m, 덕평봉 1,521m, 칠선봉 1,576m, 영신봉 1,652m, 촛대봉 1,703m, 연하봉1,730m, 제석봉 1,808m 등이 있으며, 촛대봉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하동에 속하는 삼신봉은 1,289m이다.

이외에도 천왕봉에서 치발목산장으로 내려가는 데 있는 중봉은 1,874m이며, 지리산 서쪽 구례쪽에 1,005m의 차일봉과 1,361m의 종석대 그 뒤로 1,434m의 만복대 일렬로 서있다. 여기에 남원에 속해있으며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은 1,165m이다.

이러한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주는 주능선길을 따라가는 것은 체력소모도 격심하지만, 산행에서 오는 감동이나 풍경의 아름다움도 그에 못지않다. 이 45km의 지리산 종주의 전통적인 코스 양쪽으로 있는 노고단과 천왕봉에서는, 각각 10km의 거리에 화엄사와 중산리가 있으며, 이것이 지리산의 가장 긴 코스인 ‘화대종주’이다.

옆에 아주머니가 뭐라, 했을까? 파안대소(破顔大笑)가 터졌다. 촬영=윤재훈 기자
옆에 아주머니가 뭐라, 했을까? 파안대소(破顔大笑)가 터졌다. 촬영=윤재훈 기자

천왕봉을 최단 코스로 오르고 싶다면 중산리에서 깎아지르는 칼바위를 지나 계속해서 급경사를 오르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화대종주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일반적으로 산행 첫날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는 것을 감안한다면 화엄사에서 오르거나, 버스로 성삼재까지 올라가는 길이 제일 무리는 없을 것이지만 뭔가 약간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 이제 약 4시간이 지나면 버스는 우리를 1,102m의 성삼재 휴게소 꼭대기에 새벽 3시쯤에 내려줄 것이다. 역시 비가 약간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대로 안개가 끼고 실비가 온다. 주위는 캄캄하다. 집에서 나오면서 단단한 비옷을 나누고 일회용 비옷을 입고 온 것에 약간 후회가 일려고 한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올 것 같지 않다고 하여 가장 좋다는 잠바라야 등산화까지 벗어두고 와 더 애스럽다. 대강의 비설거지를 하고 어둠 속에 출발한다.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태고 때부터 수많은 신비함과 영험함을 갖춘 산, 

해방공간에서 뼈아픈 민족 간의 슬픔이 배어있는 산, 

지금도 그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 능선 저 봉우리의 아픔.”

2008년의 노고단 산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2008년의 노고단 산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왜, 공연히 그 먼 길을 걸어가는가?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 주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은 무연히 그 산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한 번쯤은 지리산 종주를 염원한다.”

이제 이 능선을 따라 2박 3일을 한정 없이 걸어가면 천왕봉이 나올 것이다. 그 길을 따라 한 시간여 걸었을까, 어둠 속에 노고단 산장이 보인다. 직원들도 다 단잠에 들었는지 고요하다. 지리산을 닮았던 옛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그냥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지어지고 있었다.

언제 왔다 갔을까? 20여 년은 족히 되었을 것도 같은데 산과 닮아있던 그 모습은 이제 사진 속에서나 추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공사 중이었다. 콘크리트가 다 마른 것 같은데 지름길도 공사 중이라고 막아놓고, 여기저기 건설 자재들만 쌓여있다. 임시 가건물로 주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단지 탁자 몇 개만 놓여있을 뿐,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간이수도에서는 간신히 계곡물이 나오고 있다.

아침 식사는 누룽지탕이다. 두세 가지 반찬에 모두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데 도무지 배가 차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둘러 출발한다. 착한 산행인들은 약간 먼 길을 돌아 여명이 터오는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할미가 거(居)하시는 곳. 촬영=윤재훈 기자
노고할미가 거(居)하시는 곳. 촬영=윤재훈 기자

20여 분 걸었을까, 노고단 돌탑이 보인다. 노고단 할미가 거(居)하신다는 곳, 천왕봉의 영험함이 산줄기를 타고 서쪽으로 내려와 머무는 곳, 안개가 짙게 끼어 있고 인적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산행을 포기했는가 보다. 호젓한 지리산길을 덤으로 얻은 호사 같다. 산 아래에서는 듣기 힘든 온갖 새들의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안개가 더욱 짙게 끼어 있는 노고단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곳곳에 지리산의 자랑인 연한 빛의 철쭉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 있다. 누군가는 연달래라고 한다.

대피소에서 보지 못한 젊은 직원이 잠 덜 깬 모습으로 퉁명스럽게 우리를 맞이한다. 그 옛날 개인들이 대피소를 운영할 때는 산을 닮은 산악인들이 반갑게 맞아들였는데, 지금은 직장인들이 앉아 아직 산에 푸른 물이 심성에 덜 체득된 듯하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다.”
곳곳에 예수나 부처가 있고, 하는 일마다 기도를 드리듯이 하면, 세상은 참 원만(圓滿)한 일원상(一圓像)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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