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㉟] 지리산 ‘화대(華大) 종주’를 꿈꾸며18...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9.27 13:38
  • 수정 2023.09.27 13: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대를 통음(痛飮)하는 그의 목소리가 대바람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듯하다.
그와 더불어 평상(平床) 위에 앉아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세월이다.
시절은 더욱 하, 수상하고 언로(言路)는 숨 막혀가며, 국민의 소리는 반영되지 않는 시국이다.

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촬영=윤재훈 기자
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곧은 성격의 고운 최치원은 41세에 속세를 등지면서 ‘청산맹약시(靑山盟約詩)'를 남긴다. ‘산에 사는 중에게’는 자신의 심경을 말하는 것이다.

스님이여, 청산이 좋다 말씀 마오.
산이 좋다면서 왜 다시 산을 나오시오.
뒷날에 내 자취 시험해 보시구려!
한 번 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니.

僧乎莫道靑山好(승호막도청산호)
山好何事更出山(산호하사갱출산)
試看他日吾踪跡(시간타일오종적)
入靑山更不還(일입청산갱불환)

-‘ 산속에 들어가며’(入山詩), 최치원

이 시를 읊은 뒤 고운은 가야산에 들어간 뒤로 다시는 속세간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십여 년 조정에 참여하여 사회 모순을 개혁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 지식인의 좌절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신라를 부정한 채 왕건이나 견훤 등의 세력에 동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최치원에게 어쩌면 은거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행여 어느 산수간을 거닐며 한가하게 이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산을 들어가는 마음. 촬영=윤재훈 기자
산을 들어가는 마음. 촬영=윤재훈 기자

가도는 말을 타고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초(草)를 잡았다.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
새는 못 가의 나무에 깃들고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그런데 그만 결구(結句)에서 걸렸다. 문을 민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러다 그만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 768~824)였다.

가도는 길을 피하지 못한 그 연유를 말하고 사과했다. 대문장가인 한유는 뜻밖에 만난 시인이 반가웠던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 하면서 지나갔고, 이후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

노고 할미가 거(居)하시는 곳. 촬영=윤재훈 기자
노고 할미가 거(居)하시는 곳. 촬영=윤재훈 기자

추강은 단속사와 쌍계사에 산재한 최치원(崔致遠)의 사적(事蹟)들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그 옛 자취를 탐방하려 하였다. 이러한 기행들은 당시 세상일에 뜻을 잃고 방황하던 자신의 처지와도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월 5일, 설근과 작별한 추강은 연령(淵嶺 임걸령)과 고모당(노고단)을 지나, 오른쪽으로 우번대를 끼고 남쪽으로 내려서서 봉천사(奉天寺)에 이르렀다. 오늘날 주능선에서 화엄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걸었던 것 같다.

봉천사 도착한 다음 날 비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머물다, 아래의 시를 지어 누각 창에 적었다.

이 늙은이 서른에 선비들을 떠나오니
구월의 두류산은 비단 숲이 되었구나
비바람 비껴쳐서 누각 밖이 요란하고
시냇물 대밭 뚫어 난간 앞이 졸졸대네
서리가 온 숲 잎사귀 떨어지게 하지만
가을도 나무의 생기는 시들게 못 하네
메말랐던 회포가 다시 살아 움직이니
차 마신 뒤 새벽 창엔 온 산이 어둑하네

- 봉천사 누각 창에 적다. 한국고전번역원

1연을 보면 서른에 벌써 늙은이가 되었단 말일까, 여하튼 추강은 천왕봉에 올라 자괴감에 빠져들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리산을 거닐면서 그는 많은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덜어낼 것은 또한 덜어냈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을 알아주는 벗들과의 만남에서 자존감을 많이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보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리산 술(酒)시가 다가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 술(酒)시가 다가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동봉산인(東峯山人) 김시습(金時習)의 제자이기도 한 추강은 스승과는 절친한 술친구였던 모양이다. 세상에 대해 포효하고 때로는 절망하던 남효온는 술 때문에 몸이 상하고 주위에서 걱정도 하였는 모양이다. 술을 끊겠다고 선언하며, 스승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는 젊어서부터 술을 몹시 좋아하여 중년에, 구설(口舌)에 오른 적이 많았기에, 제멋대로 주정뱅이 짓을 하여 세상에 영영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 것을 제 분수로 여겼습니다.

몸은 외물(外物)에 끌려가고 마음은 육체에 부려져서 정신력은 예전에 비해 절로 줄었고 도덕은 처음 마음을 날로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점점 부덕(不德)한 사람이 되어 집안에서 마구 주정을 부려 어머님께 수치를 크게 끼치고 말았습니다. 맹자는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 좋아하여 부모님의 봉양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불효라 하였거늘, 하물며 술주정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술이 깨고서 스스로 생각건대 그 죄가 삼천 가지 중의 으뜸에 해당하니, 무슨 마음으로 다시 술을 들겠습니까. 이에 천지(天地)에 물어보고 신명(神明)께 절하고 제 마음에 맹세한 뒤에 어머님께 아뢰기를,

“지금 이후로는 군부(君父)의 명이 아니면 감히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은 술에 취하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제사 지내고 제육(祭肉)을 받으면 음복(飮福)이 있고, 축수(祝壽)를 올리고 술잔을 돌려받으면 맛 좋은 술이 뱃속을 적셔도 정신이 어지럽지 않은 경우는, 제가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아아! 술 깬 굴원(屈原)과 술에 취한 백륜(伯倫)이 본래 둘이 아니고, 맑은 백이(伯夷)와 너그러운 유하혜(柳下惠)는 결국 하나의 도입니다. 선생께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저를 억지로 허물하지 마시고 제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 가부(可否)를 한 글자로 분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남효온(南孝溫) 〈동봉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東峯山人書)〉《추강집(秋江集)》

그러자 김시습은 아주 끊지는 말고 적당히 마시라고 간곡히 권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친구가 술을 끓었다고 하면 서운할 것인데, 두 사람 다 세상을 등지고 사는 처지에 함께 잔을 기울이던 벗마저 잔을 놓겠다고 하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두류산에 은거(隱居)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두류산에 은거(隱居)하여. 촬영=윤재훈 기자

세상을 등지고 산 추강은 신영희(辛永禧), 홍유손(洪裕孫) 등과 더불어 죽림거사(竹林居士)를 맺어 술과 시로써 마음의 울분을 달랬다.

시대를 통음(痛飮)하는 그의 목소리가 대바람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듯하다.
그와 더불어 평상(平床) 위에 앉아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세월이다.
시절은 더욱 하, 수상하고 언로는 막혀가며 국민의 소리는 반영되지 않는 시국이다.

그런 답답한 시국이니 이 조선 땅 위에 그가 마땅하게 갈 만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산수 간을 떠돌며 이 땅의 명승지에는 그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어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 ‘오백 년 도읍지를’, 야은 길재

지리산의 솔바람 소리. 촬영=윤재훈 기자
지리산의 솔바람 소리. 촬영=윤재훈 기자

그리고 당시의 금기에 속한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등 6인이 단종 복위를 꾀하며 사절(死節)한 사실을, '육신전(六臣傳)'이라는 이름으로 저술하였다. 다른 문인들이 장차 큰 화를 당할까 두려워 말렸지만, 죽는 것이 두려워 충신의 명성을 소멸시킬 수 없다 하여 끝내 세상에 펴냈다.

병조판서를 지낸 남이 장군과 영의정을 지낸 남곤과는 한 집안이었던 조선의 푸른 정신 추강, 그는 지리산 유람을 끝내고 5년 뒤인 41살에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떠났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