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시니어여행기] 석유탱크에 문화를 채우다...‘문화 비축기지' 메타세쿼이아 길’ ‘하늘 공원’

김수연 여행작가
  • 입력 2023.10.10 11:31
  • 수정 2023.10.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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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이 아니라 함께 숨 쉬며 동화되는 것.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의 기쁨이리라.

마포 문화비축기지. 촬영=김수연 작가
마포 문화비축기지. 촬영=김수연 작가

[여행작가 김수연] 백로가 한참 지났는데도 낮에는 여전히 햇살이 뜨거운 9월의 어느 맑은 날, 서울 역사 여행 두 번째 코스 탐방차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여행강좌 수강생들과 만났다. 강의실에서 볼 때보다 야외에서 만나게 되니 오래된 친구들과 수학여행 가는 듯이 반갑고 설레는 느낌이다. 오늘 탐방할 장소는 ‘문화 비축기지, 난지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하늘 공원’이다. 우리는 오늘의 출발지인 매봉산 산책로를 들어섰다.

야트막한 오솔길을 걸어가니, 울창한 나무 그늘이 땀을 식혀주어 너무나 고맙고, 살며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덤이다.

​매봉산 숲길에서 수강생들과. 촬영=윤재훈 기자
​매봉산 숲길에서 수강생들과. 촬영=윤재훈 기자

오르막길을 조금씩 숨차하며 걷다 보니, 발아래 펼쳐지는 붉은 흙의 오솔길이 참 곱다.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와 새소리가 듣기 좋은 이중창으로 퍼진다.

붉은 흙이 고운 매봉산 숲길. 촬영=김수연 작가
붉은 흙이 고운 매봉산 숲길. 촬영=김수연 작가

새소리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맑은 숲 내음에 취할 즈음, 드디어 오늘 탐방의 첫 주인공인 '마포 문화 비축기지'가 커다랗고 둥근 자태를 드러낸다. 사실 이번 탐방 이전에는 전혀 생소하고 알지 못했던 곳이다.

이곳은 일반인의 접근과 이용이 철저히 통제됐던 산업화 시대의 유산인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도시재생을 통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문화 공원이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5개의 탱크를 건설해, 당시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소비할 수 있는 양의 석유를 보관했던 곳이다. 이후 이곳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다. 

그 후 10년 넘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다가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문화 비축기지로 변신하였다. 당시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들이 매일 색다른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 탱크가 된 것이다.

재탄생된 커뮤니티 공간 T6. 촬영=김수연 작가
재탄생된 커뮤니티 공간 T6. 촬영=김수연 작가

기존 5개의 탱크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해체된 탱크의 철판을 활용해 만들어진 T6는 시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다.

비어있던 야외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고, 부지에 남아있던 수림은 최대한 보존하여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들을 심어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석유와 건설 중심의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던 공간이 매봉산에 둘러싸인 친환경과 재생, 문화가 중심이 되는 생태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현재 T1~T5 탱크들이 사면 공사로 인해 폐쇄되어 아쉽지만, 10월 오픈을 기대하기로 하고 개방된 T6를 돌아본다. 밖에서 보기와 달리 안은 높고 거대했다. 특히 이곳은 T1과 T2를 해체한 철판을 활용하여 새롭게 건축한 탱크인데, 카페테리아, 원형 회의실, 창의 랩 등 커뮤니티 공간과 작은 생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 초입의 에코라운지 안내소. 촬영=김수연 작가
도서관 초입의 에코라운지 안내소. 촬영=김수연 작가

초입부터 웅장하고 높은 층고가 시선을 압도한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양쪽에 회색의 묵직한 벽으로 이루어진 길과 중간에 하이라이트 조명도 훌륭하다. 선생님은 인생샷 찍기 아주 좋은 공간이란 말에, 모두 선생님의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멋진 포즈들을 취해본다.

T6의 진입로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여인들. 촬영=오신영 작가
T6의 진입로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여인들. 촬영=오신영 작가

모퉁이를 돌아서니 생태 도서관 '에코 라운지'가 고요한 나뭇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을 주민이 몇몇 여유롭게 앉아 책과 마주하고 있다. 야트막한 책꽂이와 나무 의자가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독서에 몰입할 만한 곳이라 가까이 거주하는 분들이 부럽기만 하다.

T6 탱크에서 바라본 하늘. 촬영=김수연 작가
T6 탱크에서 바라본 하늘. 촬영=김수연 작가

유리문을 열고 나가서 탱크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이 탱크를 가둔 것인지 탱크가 구름을 가둔 것인지, 잠시 황홀경에 빠져든다. 새로운 모습으로 곧 탈바꿈하여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문화 비축기지'의 다른 공간들을 기대하면서 아쉽지만 하늘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촬영 중 윤재훈 작가. 촬영=김수연 작가
촬영 중 윤재훈 작가. 촬영=김수연 작가

매봉산을 내려와 내리쬐는 햇살이 버거울 즈음 하늘 끝을 찌를 듯한 자태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나타난다. 가을 색으로 물들을 즈음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평일 오전의 여유로움에 맘껏 호흡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가로수길을 거닐었다. 사진 찍는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진하다.

하늘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촬영=김수연 작가
하늘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 촬영=김수연 작가

하늘 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공사를 하고, 지름길을 막아놓아 빙 돌아가는 아스팔트가 너무 길고 더웠다. 자신들의 편의 위주로만 특별한 안내도 없이, 막은 것 같아 약간 화가 나기도 하고, 뙤약볕 아래에서 너무 힘들었다.

야트막한 길을 오르니 마침내 정상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의 파노라마 뷰와 너른 억새밭의 일렁거림은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몇 분의 라이더들이 엄지척한다. 두 부부인 것 같은데 인천에서 여기까지 왔단다.

정복이 아니라 함께 숨 쉬며 동화되는 것.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의 기쁨이리라.

하늘 공원의 억새. 촬영= 김수연 작가
하늘 공원의 억새. 촬영= 김수연 작가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와 나무 솟대가 닮은 듯 어우러진 하늘 공원의 여유로운 풍광이 참 멋지다. 코로나 유행 전에 친구들과 핑크뮬리 축제에 왔을 때는 사람으로 북적여서 이런 고즈넉함을 즐길 수가 없었는데, 오늘의 한적한 분위기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한강의 찬란한 윤슬과 먹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간헐적 햇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도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갈색 바람 일렁이는 억새 바다.

오늘 이 시간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만나지 못했을, 경험하지 못했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같이 갔던 친구와 10월의 마지막 날 즈음, 단풍과 낙엽이 거리와 가슴에 물들어 갈 때 꼭 다시 오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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