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마포문화비축기지

송정자 여행작가
  • 입력 2023.07.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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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좌충우돌 여행기는 '노원50+ 여행작가교실' 시니어 여행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한다.

2002년 그날의 환희, 대, 한, 민, 국, 짝짜~짜~짝짝, 월드컵경기장 전경. 촬영=윤재훈 기자
2002년 그날의 환희, 대, 한, 민, 국, 짝짜~짜~짝짝, 월드컵경기장 전경. 촬영=윤재훈 기자

[송정자 여행작가] 여름 더위가 스멀스멀 팔잔등를 타고 오른다. 이른 시간인데도 뜨거운 아침 햇살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역 출구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노원 50+ 여행작가반에서 오늘 여행할 장소는 매봉산 기슭에 위치한 ‘마포문화비축기지’이다.

처음 접하는 생소한 장소였다. 난지천공원 표지석 주변을 돌아 여름풀들이 비집고 올라오는 벽돌길을 걸어가면 문화비축기지 설명이 있는 안내판이 서 있다. 1973년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시에서 1차 석유파동 이후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2년 후 마포구 매봉산자락에 ‘마포석유기지’를 조성하였다

마포문화비축기지 야외공원 달토끼 모형. 촬영=송정자 
마포문화비축기지 야외공원 달토끼 모형. 촬영=송정자 

야외공원에는, 계묘년을 맞아 달토끼 모형의 크고 작은 하얀 토끼 열 마리가 초록의 풀 위에 옹기종기 뛰어놀고 있다. 마침 낮은 언덕배기에서 물병을 어깨에 메고 나들이 온 유치원 어린이 열댓 명이 모여 있다.

선생님의 주의사항 당부에 목을 젖히고 큰소리로 합창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햇살처럼 빛난다. 열 마리의 달토끼와 어찌나 예쁜 조합이던지 한참 동안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야말로 소중한 자산이 아니겠는가.

마포문화비축기지 안내 표지나무. 사진=송정자
마포문화비축기지 안내 표지나무. 촬영=송정자 

비스듬히 오르는 오솔길이 정겹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부드러운 흙길이다. 언덕배기를 어느 정도 올라가자,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잘 어우러진 길 사이로, 베일에 싸여 있던 ‘마포석유비축기지’가 수림 속에서 반쯤 몸을 드러낸다. 아파트 5층 높이는 될 것 같은 탱크 5기에 들어있는 석유의 양은 당시 서울 시민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고, 자동차 400만대가 주유할 수 있는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했다.

그 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위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인근 500m 미터 이내의 위험시설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탱크에 저장된 석유를 옮기고 폐쇄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동안 마포석유기지는 1급 보안 시설로서 40여 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숲에 가린 원형건축물 마포문화비축기지 T6.. 촬영=송정자 
숲에 가린 원형건축물 마포문화비축기지 T6.. 촬영=송정자 

이후 십여 년 동안 매봉산 숲속에서 숨죽이며 폐산업 시설로 잠자다가 서울시에서 도시재생정책에 따라 석유비축기지의 부지를 활용하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 시절에, 시민, 전문가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국제 현상 설계로 공모를 했는데 그때 당선작이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이 채택되었다. 그래서 석유를 빼낸 그 공간이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되면서, 각종 건축상을 휩쓸게 된다.

이곳에는 6개의 탱크가 있는데, 그중 T1은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를 해체하고 유리로 된 벽체와 지붕을 얹어 유리 파빌리온(Glass Pavilion)으로 조성했다. 계절 따라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며 매봉산의 암반까지 감상할 수 있다.

마포문화비축기지 T2 공연장. 촬영=윤재훈 기자
마포문화비축기지 T2 공연장. 촬영=윤재훈 기자

T2(Stage)는 경유를 보관하던 장소였는데, 야외무대와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이곳은 탱크를 해체하여 하늘을 향해 외형 없이 활짝 열어두었다. 매봉산 암벽과 콘크리트의 옹벽이 만나 자연의 소리를 고스란히 실어다 주지 않을까.

T3(탱크원형)은 석유비축 당시의 탱크 원형을 온전히 보존했다. 탱크 시설에 오르는 돌계단의 언덕까지 잘 보존되어 당시의 역사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T5 이야기관(Story Hall)은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시절에 직원들이 사용하던 헬멧과 작업복까지 전시되어 있어 생동감을 전해준다.

그때의 직원들은 난지도 쓰레기장의 악취에 시달리며, 1급 보안시설에 발화점이 높은 휘발유 탱크의 점검 및 정전기까지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 휘발유는 아주 작은 정전기에도 화재가 나기 쉬우니, 직원들이 얼마나 긴장했을까.

 마포문화비축기지 중앙홀 T6. 촬영=윤재훈 기자
마포문화비축기지 중앙홀 T6.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규모가 가장 큰 중앙 홀로 향한다. T6 커뮤니티센터는 T1과 T2를 해체할 때 나온 철판을 활용해 새로운 건축물을 세웠다. 이곳은 여러 강의실과 카페테리아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들로 이뤄져 있다. 한국건축 문화대상과 서울시 건축상 대상까지 안은 건축물답게, 중후한 천장과 회색 톤의 경사진 바닥길이 더욱 멋스럽다.

비스듬히 올라가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생태도서관 ‘에코라운지’가 여행팀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높은 천장을 장식한 나뭇결무늬의 설치 조명과 주황색 백팩을 멘 키 큰 강사님이 그림 액자처럼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마포문화비축기지 에코라운지 안내소. 촬영=송정자 
마포문화비축기지 에코라운지 안내소. 촬영=송정자 

둥그스름한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면 동그란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옥상 마루를 만난다. 탱크 안에서 고개를 젖혀 동그랗게 몸을 가둔 파랗고도 하얀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있던 석유저장소가 이렇게 문화단지로 바뀌어 국민의 볼거리로 돌아와 주었다니,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고개를 드니 동그랗게 툭, 터진 파란 하늘이 마음마저 시원하게 해준다.

 마포문화비축기지 탱크기지에서 바라 본 하늘. 촬영=송정자 
마포문화비축기지 탱크기지에서 바라 본 하늘. 촬영=송정자 

문화비축기지는 서울 둘레길 7코스 구간이기도 하다. 석유를 보관하던 탱크는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탱크로 탈바꿈했다. 여러 개의 탱크가 보수공사 중이라 약간은 아쉬웠으나, 도심 속 생태문화공원의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았다.

월드컵공원 구름다리. 촬영=윤재훈 기자
월드컵공원 구름다리. 촬영=윤재훈 기자

일행들과 여행을 끝내고 돌아 나오는 다리 위로는 온갖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고 있었다. 하루 코스를 잡아 인접한 거리의 하늘공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역사의 한 축에 서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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